[나를 구한 한마디]
“꿈꿀 수 있다면, 할 수 있다 (If you can dream it, you can do it).”– @[169178266472474:274:월트 디즈니]
미키마우스, 도날드 덕 등 수많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누구도 상상 못한 거대한 규모의 테마 파크 ‘디즈니랜드’를 만든 월트 디즈니. 하지만 그가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캔자스시티 스타지(紙)에서 잘렸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1901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디즈니는 폭력적이고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아버지의 신문판매업을 돕느라 제대로 학교에도 다닐 수 없었던 그는 어머니에게 글을 배웠다. 용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신문을 배달해야만 했다. 그에게 가장 좋은 기억은 4살 무렵 미주리 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며, 그림의 재미를 발견한 시절이었다.
애니메이션 세계를 만나고 나서도 그의 삶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19세에 처음 설립한 스튜디오는 좁은 시장과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파산신고를 하기 이르렀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는 좌절하지 않았다. 다행히 워너브라더스 사의 지원을 받아 그의 작품들이 다시 세상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한번 위기가 찾아왔다. 투자자 찰스 민츠에게 사기를 당해 저작권과 판권을 빼앗겨 버렸고, 재정적으로도 궁핍하여 법적 소송을 할 여력도 없었다.
월트 디즈니는 분노에 찼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쥐”를 주인공으로 한 <미친 비행기(Plane Crazy)>라는 시나리오를 썼고, 그것이 바로 현재 “미키마우스”의 원형이 됐다. 미키마우스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공을 거뒀고, 연이어 디즈니의 명작 애니메이션 <아기돼지 삼형제><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환타지아><아기코끼리 덤보> 등이 히트를 쳤다. 디즈니는 찰스 민츠에게 당당히 실력으로 복수를 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1955년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 디즈니의 모든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는 “디즈니랜드”를 건설했다. 디즈니랜드는 현재까지 입장객 수가 2억 명이 넘었고, 연간 입장객이 1천만 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어린이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월트 디즈니. 그는 오늘날까지도 환상과 꿈의 세계를 선사하는 진정한 드림메이커(Dream-maker)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