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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32

草霧 2014. 2. 12. 12:05

 

 

 

3040 그녀들이 열광하는 `겨울왕국`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32

하재근(문화평론가) | 2014.02.11

 

주인공 엘사

[서울톡톡] 가히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인 <겨울왕국> 열풍이다. 한국영화 전성기 속에서 큰 기대없이 개봉했지만 개봉 4일 만에 100만, 11일 만에 300만, 17일 만에 500만, 24일 만에 700만 관객을 차례로 돌파했다.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기록은 <쿵푸팬더2>의 506만 명이었는데 <겨울왕국>이 그 기록을 훌쩍 뛰어넘어 역대 애니메이션 최대 흥행작에 등극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역대 외화 흥행 5위인 740만 명의 <트랜스포머>, 4위인 750만 명의 <미션 임파서블:고스트 프로토콜> 등의 기록도 곧 깨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겨울왕국> 열풍은 애니메이션 영화의 신기원이면서 동시에 디즈니의 극적인 부활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된다.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의 명가인 디즈니는 2000년대 이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국시장 애니메이션 10대 흥행작을 보면, 1위가 <쿵푸팬더2> 506만 명, 2위 <쿵푸팬더> 467만 명, 3위 <슈렉2> 330만 명, 4위 <하울의 움직이는 성> 301만 명, 5위 <슈렉3> 284만 명, 6위 <드래곤 길들이기> 256만 명, 7위 <슈렉> 234만 명, 8위 <슈렉 포에버> 223만 명, 9위 <마당을 나온 암탉> 220만 명, 10위 <장화신은 고양이> 208만 명, 이중에 디즈니 작품은 단 한 편도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기존 1위 기록을 훌쩍 뛰어넘는 <겨울왕국> 열풍으로 디즈니가 귀환한 것이다.

디즈니 대신 애니메이션 시장을 주도한 것은 <슈렉> 시리즈와 <쿵푸팬더> 시리즈를 만든 드림웍스인데, 드림웍스는 전통적인 디즈니 동화 애니메이션 세계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은 드림웍스 대표작 <슈렉> 시리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세계를 비틀고 희화화해서 화제가 됐었다.

황홀한 화면과 아름다운 노래~

그런 애니메이션들이 주도하던 차에 <겨울왕국>은 정말 오랜만에 나타난 정통 디즈니 90년대식 뮤지컬 애니메이션이었다. 안데르센 동화를 원작으로 공주님과 왕자님과 노래가 등장한다. 정통 스타일이 워낙 오랜만에 등장했기 때문에 이것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90년대에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열광했던 3040세대 여성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일종의 신선한 복고였던 셈이다.

그런데 단순한 과거의 재생에서 그치지는 않는다. 디즈니는 전통적인 동화의 세계를 복원하는 듯하면서도 살짝 비틀어 새로운 세계를 펼쳐보였다. 과거 디즈니 동화 애니메이션 속 여성주인공은 사랑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주도적으로 하는 일이 없었다. 여성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왕자님이 백마 타고 나타나 모든 일을 해결했다. 여성은 왕자님과의 키스를 통해서만 성장과 행복을 이룰 수 있었다. 이것이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신데렐라> 등에 나타난 디즈니의 고전적 세계관인데 수많은 비평가들의 비난을 받았었다.

그랬던 분위기가 90년대에 조금 달라진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등에 나온 여주인공은 자신의 꿈을 찾는 주도적인 캐릭터였다. 심지어 <뮬란>에 이르러선 왕자와 키스도 하지 않고 스스로 나라를 지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디즈니 동화세계의 주류인 정통 백인 공주님은 결국 남성을 통해서만 행복을 찾았다.

이번 <겨울왕국>에선 백인 공주님들의 자매애가 부각된다. 문제를 만들고 해결하는 것이 모두 여성들의 몫이다. 디즈니 동화세계 여성상의 극적인 변화라 할 만하다. 여주인공이 주제가인 '렛잇고'를 부르며 사회의 인습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외칠 때 관객은 통쾌감을 느낀다. 디즈니 역사상 최초로 요염한 여주인공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디즈니 여주인공은 언제나 순수했고 요염함은 악녀의 몫이었다. 이번에 디즈니는 마침내 여주인공의 욕망을 긍정했다. <겨울왕국>에서 전통과 혁신이 만난 셈이다. 이런 내용에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화면과 노래가 어우러진 것이 열풍을 일으킨 원인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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