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세상 쳐다보기

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9

草霧 2014. 1. 27. 11:54

 

 

나의 고삐를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9

 

김별아(소설가) | 2014.01.24

 

 

연꽃(사진 뉴시스)

 

나는 나를 주인으로 하니
나 외에 따로 주인이 없네
그러므로 마땅히 나를 다루어야 하나니
말을 다루는 장수처럼

-《법구경》 중에서

 

[서울톡톡] 《법구경》은 시(詩)이다. 그래서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가슴으로 느껴진다. 그렇다. 나의 주인은 오직 나뿐일지니, 나 외에 어떤 주인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내 몸이 내 것임이 자명하고 내 정신 또한 내 것이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 시구가 가슴을 뻐근하고도 쓰라리게 하는 것은 때때로 그 사실을 잊고, 진실을 잃고 무언가의 노예처럼 살아가기 때문이다.

과거의 노예나 노비나 농노는 몸의 자유를 빼앗긴 계급이었다. 그래서 그 소유주에게 정신마저도 저당 잡혔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오직 명령에 순연히 복종하는 태도를 우리는 지금도 '노예근성'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근대 이후 땅과 신분제로부터 해방되어 어쨌거나 '자유'를 보장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돈과 욕망에 얽히고설킨 채, 관계와 습속에 꽁꽁 얽매인 채, 진정한 나의 주인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언젠가 캐나다에 이민 간 여고 동창이 잠시 귀국하여 만나러 나갔다. 어느덧 흘러버린 시간 속에서 늘어난 것은 친구의 낯선 흰머리만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늦둥이 딸따니를 낳아 식구가 늘었고, 전화로 옹알이를 들려주던 고 녀석의 말까지 부쩍 늘었다. 그뿐이랴. 이제는 아이들이 모두 조숙해져 미운 일곱 살이 아니라 미운 서너 살이라더니,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리는 일도 만만찮았다. 그런데 요 녀석이 악지를 쓰며 외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미(me), 미(me), 미(me)!"

집에서는 식구들끼리 한국말을 쓴다지만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소통하는 영어가 더 편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아이는 다른 언어와 문화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지만, 고맘때 아이들이 뭐든 자기 것이라고, 자기가 하겠다고 주장하며 나서는 것은 동서양이 똑같았다. 그처럼 천진한 이기심, 거침없는 자기중심주의의 시간을 거치며 아이는 남과 다른 자신을 확인하고, 부딪히고, 화해한다. 사랑이란 이름의 구속, 교육이란 이름의 속박,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길들여져 상처받고 타협하여 비겁해지기 전까지, 나 외에 다른 주인은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오직 스스로의 주인인 어린 아이들만이 진정으로 자유롭게 울고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말(馬)은 상당히 예민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말을 모는 사람의 마음과 말의 힘이 일치하지 않으면 말이 아예 걸음을 내딛지 않거나 거꾸러지고, 그 와중에 사람은 낙마하게 된다. 그리하여 옛사람들은 말 타는 방도에 있어 일신(一神)이요, 이기(二氣)에 삼태(三態)이고, 사술(四術)이라 하였다. 기술은 스스로 힘껏 배워야 하리라. 태도는 애써 지어야 마땅하다. 기력은 꾸준히 길러야 하며, 신령스러움은 배우거나 짓거나 길러서 될 수 없는 만큼 천생이 있지마는 많이 배우고 오래 짓고 힘써 기르면 나중에 절로 생긴다고 하였다. 사납게 날뛰는 나를 달래어 마침내 힘차게 온몸으로 달려 나가기 위해, 나는 나의 고삐를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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