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과학자, 그는 `기적`을 믿었다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
인생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기적은 없다고 믿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게 기적이라고 믿는 것이다. -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
[서울톡톡] 물론, 아인슈타인은 과학자이므로 신비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비를 존중했다. '진정한 예술'과 '진정한 과학'을 낳아 기르는 신비로움의 너른 품을 인정했다. 그리하여, 그는 기적을 믿었다. 지극히 합리적인 방식으로, 어쩌면 종교를 앞세우는 사람들보다 더 신실하게.
여기서 말하는 '기적'은 사전에 기록된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혹은 종교적으로 신에 의해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과 다르다. 눈앞의 바다가 쩍 갈라지거나, 죽은 사람이 관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거나, 불치병이 단번에 씻은 듯이 낫거나, 미래 혹은 먼 곳의 일을 손바닥 안의 손금처럼 그려내는 일 따위가 기적이라면, 살아생전 기적 비슷한 것이라도 한 번 보는 것이 기적이다. 그렇게 빛나는 기적을 비루한 일상과 분리해 떠올리면 기적은 좀처럼 믿을 수 없는 신비가 된다.
하지만 그 시시풍덩하게만 느껴지던 일상을 한순간에 잃어버릴 위기에 빠졌던 사람들은 안다. 기적이라는 것이 첨탑 위에 높이 걸린 아득한 무엇이 아니라 무심히 흘려보내는 일상 속에 나지막이 깔려있었던 바로 그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무심코 "별일 없으신가요?"라는 인사말을 건넨다. '별일'이 없어야 좋은 것이다. '별일'이 없다는 것이 기적이다. 위암에 걸려 위장 전부를 적출한 사람은 소금엣밥이나마 배부르게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시절을 간절히 그리워한다.
폐암으로 호흡이 곤란하여 앉아서 잠들어야 하는 사람은 거친 잠자리에서나마 누워 잠들 수 있었던 때를 안타까이 떠올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서야 그에게 했던 부질없는 닦달과 덧없는 원망을 반성하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음을 몰랐던 일에 통탄한다.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라서 그토록 도저한 불행에 맞닥뜨렸을 때에야 비로소 평범하게 먹고, 자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음을 깨닫는다.
애당초 우리는 기적으로 세상에 났다. 1억 마리의 정자 중 단 하나가 기적적으로 난자를 만나 수정되었고, 세상의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인간으로 탄생했다.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70억 인구가 모두 낱낱이 다른 존재라는 사실도 기적이며, 그 중의 하나인 내가 지금 여기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도 기적이다.
이처럼 우리 곁에 바싹 붙어 있는, 우리 안에 이미 자리한 기적을 인정하고 이해하면 하루하루의 삶이 신비해진다. 끊임없이 새로운 신비를 발견하며 놀라움으로 설레게 된다. 그리하여 그 가깝고 평범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기적에 감사하게 된다. '감사한다'의 반대말은 '감사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당연하게 여긴다'이다. 무언가를 누리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면 뻔뻔해진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더 많이 누리지 못함을 불평한다. 삶이 당연해지면 이윽고 지루해진다.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보다 더 자극적인 오락을 찾아 헤맨다. 기적을 믿지 못하기에 기적을 모사한 '한탕'을 꿈꾼다. 기적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이것은 종교적 믿음과 다르다. 믿을 것이냐, 믿지 않을 것이냐. 그것은 다만 삶의 태도에 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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