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의 정신병자/한국미술

한국화그룹 유연지의 채색화

草霧 2013. 12. 27. 10:40

 

 

 

 

한국화그룹 유연지의 채색화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전시명 : 유연지 그룹전
전시장소 : 공평갤러리
전시일정 : 2013.12.25 - 2013.12.31

현대미술은 미술이란 개념을 질문하고 그 개념을 문제시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통상 한국현대미술의 기원을 1950년대 후반, 60년대 초반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비로소 현대미술에 대한 이념, 담론을 내세우는 그룹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 동양화의 등장을 알리기 시작했던 묵림회의 등장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그 이후 수많은 그룹, 단체 등이 명멸하면서 한국 현대미술사를 수놓아왔다.

그러나 근자에 와서는 그룹과 단체를 대신해 개인적인 활동이 보다 활성화되고 있다. 한때 그룹 활동에서 이루어진 미술운동이 이제는 개별적인 차원의 일로 전이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경기대학교 한국화가 출신의 동문이 모여 이룬 ‘유연지’ 역시 그런 그룹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제목 자체가 상당히 전통적이고 의고적인 뉘앙스를 풍겨주지만 기실 구성원들이 작업은 전통적인 동양화의 관습적인 그림에서 벗어나 있다. 5명의 구성원만이 모여 전시(공평갤러리. 12.25-31)를 하는데 이들 작업의 외형적인 특징은 화려한 채색화작업이며 꽃, 달 항아리와 목가구, 비근한 도심의 건물외관, 일상의 오브제, 그리고 조선시대 궁권도의 차용과 전치 등으로 형성 되어있다. 그만큼 다양한 관심과 미술에 대한 각자의 생각들이 광범위하게 편재해있지만 한편으로는 채색화의 쓰임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그림의 주제(소재)에 대한 고민이 교집합처럼 걸쳐져있다.

우선 채색화로부터 출발해서 그 재료와 기법으로 유의미한 것을 그리고자 하는 고민의 흔적이 현재의 작업으로 가시화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한 축은 한국의 전통이미지와 연관된 것들이자 채색화의 전통 속에서 담아왔던 것의 선택과 변형이며 또 다른 한 축은 현재 자신의 관심권 안에 걸려든 풍경이나 사물에 대한 것들이다. 생각해보면 이들이 다루는 소재들은 채색으로 재현되기에 적합한 대상, 오브제에 기생하는 작업이 되며 그로부터 연유하는 전통의 프레임과 현재를 바라보는 자신의 심리를 매개하는 알리바이로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바로 이점이 이들 구성원들이 고민하는 지점일 것이다.


한수민_Confusion-Y201311-05 90x90 장지에분채.거울 2013



한수민의 작업의 경우, 장지에 분채로 그려진 꽃과 화면에 부착된 거울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다. 아름답고 화려한 꽃과 여백처럼, 구멍처럼 자리한 거울이 공존하고 있는데 특히 거울에는 그림 바깥의 것들이 수시로 담기고 사라지고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현란하게 안겨준다.

반면 꽃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실제의 꽃이자 동시에 그로부터 벗어나 작가에 의해 새롭게 연출된 꽃이고 미적 대상이다. 꽃의 형태묘사는 사실적인데 반해 내부를 채우는 색채의 비현실성과 외형을 감싸고 있는 점, 선의 규칙적인 배열 등은 구체적인 꽃의 존재를 탈각시키면서 그것을 또 다른 존재로 바라보게 한다. 뚜렷하고 강렬한 형태와 색채를 통해 보는 이의 시선을 자극하는 꽃그림이다. 더구나 꽃을 보는 우리의 시선은 꽃과 함께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틈과 같은 거울을 통해 순간 보여 지는 존재가 된다.

그림과 그림 보는 이가 은연중 연결되고 소통의 계기를 부단히 마련하게 된다. 보는 일과 보여 지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한편 꽃이 그려진 그림 안에 실은 외부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역설이 자리한다. 그것은 현실계이자 그림이고 기이한 시공이 겹쳐지는 초현실적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이 그림에 <혼돈>이란 제목을 달았다. 거울을 부착한 이유는 꽃의 마음을 보라는 또 다른 시선의 요구의 반영인 듯 하다. 그러니 그것은 단순한 꽃의 찬미에서 벗어나 작가의 잠재의식을 반영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