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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서울 1960-1990 (2) 1970년대

草霧 2013. 12. 20. 10:49

 

 

검정 교복과 얼룩무늬 교련복 입던 시절엔 말이지

응답하라 서울 1960-1990 (2) 1970년대

 

서울톡톡 시민기자 | 2013.12.19

 

응답하라 서울 1970년대, 창경궁에서 낚시를 할 수 있었다? , 1971년 정신여고 연지동 교정에서, 얼룩무늬 교련복을 아시나요?, 다 함께 춤을 춰봐요 이렇게~

[서울톡톡]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인기를 끌고 있다. 치솟는 드라마 인기에 숟가락 살짝 얹어 1960년부터 1990년까지, 그 때 그 시절 추억을 꺼내볼 수 있는 <응답하라 서울, 1960-1990>를 준비했다. 특히 이번 <응답하라 서울, 1960-1990> 기사는 서울톡톡 시민기자들의 뜨거운 '응답' 덕분에 기사를 시대별로 정리할 수 있었다.

많은 사진과 사연을 정리하며, 우리가 <응답하라>에 이토록 '응답'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응답'에 가장 큰 힘은 역시나 '추억'. 희미해진 추억을 곱씹으며 또 다른 기억을 만드는 시간은 행복했고 즐거웠다. 그동안 우리는 추억하나 추억하며 살 수 없는 팍팍한 삶을 살았나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응답하라 서울, 1960-1990>는 추억에 대한 깊은 그리움이라 할 수 있겠다.

1970년대 서울, 새까만 교복을 입어도 파릇한 청춘은 숨길 수가 없고, 흑백과 칼라사진이 뒤섞임 속에서 빠른 산업화·도시화의 모습이 드러난다. "응답하라 서울 1970", 그 두 번째 추억의 앨범을 지금부터 한 장씩 넘겨보자.

1971년 정신여고 연지동 교정에서 | 시민기자 박미령

정신여고 연지동 교정에서 찍은 사진(좌), 단발, 묶기, 땋기 머리를 한 세친구들(우)

1971년 정신여고 연지동 교정에서 찍은 사진이다. 앞에 앉은 친구가 떨어질 것 같다는 말에 바로 뒤 친구가 순간 잡으며 찰칵~ 친구들과 한바탕 웃으며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머리모양은 단발, 묶기, 땋기 딱 3종류만 허용됐다. 사진 속 친구들 머리 모양이 이 3가지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역시 정신여고 종로구 연지동 교정(현재는 종합운동장 맞은편으로 이사를 갔다) 모습, 뒤에 보이는 교회가 연동교회다.

수학여행 단체사진(좌), 첨성대 앞에서(우)

불국사 앞마당에서 찍은 남편의 수학여행 단체사진이다. 현재 이곳 소나무는 옮겨졌지만 당시 대웅전 앞에는 이렇게 구불구불한 소나무가 많이 있었다. 한창 멋을 내고 싶은 나이, 불편한 것도 모르고 구두에 흰 양말까지 갖춰 신고 첨성대에서 멋지게 포즈를 취했다.

대학신문 기자들이 4·19 의거 15주년 추념식을 마친 후 기념사진

대학신문 기자들이 4·19 의거 15주년 추념식을 마친 후 기념사진을 찍었다. 당시에는 칼라가 큰 와이셔츠를 재킷 밖으로 꺼내 입고 나팔바지가 유행이었다.

얼룩무늬 교련복을 아시나요? | 시민기자 송규명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

학교(종로구 경신중·고등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 '뭉쳐서 헌정유신 힘모아 평화통일' 슬로건과 군대 입대하듯 등교하는 학생들을 볼 수 있다.

1972년 교련검열 시 검열단장에게 단체 경례하는 모습(좌), 칼 같이 줄 맞춰 서 있는 학생들(우)

1972년 교련검열 시 검열단장에게 단체 경례하는 모습으로 자로 잰 듯 칼 같이 줄 맞춰 서 있는 학생들이다. 오른쪽 사진은 교련 훈련 시 기수단 모습으로 교기, 태극기, M1소총을 우로 어깨총 하고 서 있다.

국민학교 입학기념 사진 | 시민기자 김영옥

입학기념사진

1971년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다. 색동저고리에 색동댕기머리로 단장시키고, 부모님도 제일 멋지고 예쁜 옷을 입으셨다. 지금 내 나이보다 젊으신 모습으로 사진 안에 계시는 부모님, 이리 고운 시절도 있으셨네...

수동 물펌프가 있는 서울집 | 시민기자 이명선

처음으로 장만한 집에서 촬영한 사진

1970년 어느 겨울날, 처음으로 장만한 집(수유동)에서 촬영한 사진, 사진 오른쪽에 수동 물펌프가 보인다.

다 함께 춤을 춰봐요 이렇게~ | 시민기자 김문배

춤추는 학생들

1974년 8월 고등학교 소풍날, 장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야외 전축을 놓고 음악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학교 규율이 엄격했으나 이날만큼은 선생님들도 거의 규제를 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놀이공원이 없었으니, 이렇게 서울 인근 야외로 나가 신나게 놀았다.

디지털 학생증과 바꿀 수 없는 추억의 학생증 | 시민기자 김성수

1972년 중학교 학생증(좌), 대학입학예비고사 수험표(우)

(왼쪽 사진) 1972년 중학교 학생증이다. 갑자기 어린이에서 학생 신분으로 변신을 한 것 같아 학생증을 받고 얼마나 감격스러워했는지... 요즘 스마트한 디지털 학생증에 비할 수 없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추억의 학생증이다.

(오른쪽 사진) 지금은 대학수학능력이지만 1976년에는 대학입학예비고사가 있었다. 대학입학을 위한 예비시험으로 시험을 봐서 합격을 해야 입학시험(본고사)를 볼 수 있었다. 이 제도는 1981년 사라졌다.

구령에 맞춰 하나! 둘! | 시민기자 강애수

교련수업 모습

70년대에는 남학생은 보병기초교육, 여행생은 의무병교육을 받는 '교련'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여학교라 얼룩무늬 교련복 대신 체육복을 입었고, 응급처치, 화생방대치법, 심폐소생술 등 구급요령을 배웠다. '교련검열'이라는 큰 행사 때에는 '받들어 총!', '충성!'을 외치며 발맞추는 소리가 척척 나야했고 그렇지 않으면 불합격으로 재검열을 받아야 했다. '왼발! 오른발!' 똑바로 맞춰 로봇처럼 걷지 않으면 기합을 받았다. 기합을 받고 저녁에 힘들다고 부모님께 투덜거리면 위로는 커녕 전시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하는 것이라 당연하다고 말씀하셨다. 군대 연병장 이상의 구령 소리가 들리는 듯한 사진 한 장을 소개한다.

창경궁에서 낚시를 할 수 있었다? | 시민기자 김소나

창경궁에서 낚시

1970년대 창경궁 모습이다. 당시에는 궁이 아닌 놀이공원 같은 곳이었다. 놀이기구에 동물원까지 있었으니... 게다가 연못에서는 낚시까지 할 수 있었다. 고궁에서 낚시라니,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용감한' 낚시 사진이다.

용인자연농원에서 찍은 사진

1976년 용인자연농원(지금 에버랜드)에서 찍은 사진, 곱게 하얀 한복을 차려 입고 나들이에 나선 어르신 모습이 보인다.

우이동 계곡으로 피서가던 날 | 시민기자 임영근

우이동 계곡에서

아내와 약혼 후 처제 둘(당시 중학생)과 함께 서울 우이동 계곡에 놀러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우이동 계곡 물이 차기로 유명해 피서 장소로 선택했던 것 같다. 처제들은 어느 덧 50대 중년이 되었고 우리 부부도 60대가 됐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추억의 시간 여행을 하듯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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