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 자유의 조건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2
서울시 홍보대사이기도 한 <미실>의 작가 김별아가 보물처럼 간직한 책 속 구절이나 격언에 자신의 경험과 에피소드를 녹여 쓴 에세이로 매주 월요일 시민과 만난다.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그 느낌을 차곡차곡 쌓으면 살면서 긁히거나 다쳤던 상처가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만 같다. |
무항산자무항심(無恒産者無恒心)
-맹자
[서울톡톡] 젊은 날 부르던 노래 중에 '돈타령'이란 것이 있었다. 판소리 <춘향가>와 <흥보가> 가운데 돈에 얽힌 이야기를 노래한 대목인 본래의 돈타령과는 상관없이, "돈, 돈, 돈, 돈에 돈돈, 악마의 금전......."으로 시작되는 구슬픈 가사의 구전 민요였다. 노래 속에서 서로 사랑하던 갑돌이와 갑순이는 아마도 돈 때문에 못 살 지경에 이르렀는지 맑고 푸른 한강수에 그만 몸을 던지고 만다. 너는 죽어서 화초가 되고 나는 죽어서 벌 나비가 되어 내년 춘삼월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지만, 죽어 꽃이 되고 나비가 되어도 살아 개똥밭에서 뒹구느니만 못한 것은 자명하니 참으로 가련한 일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등록금이며 용돈을 부모님께 받아쓰던 철부지였던지라 무심히 읊조렸던 '악마의 금전'이라는 말이 얼마나 흉악한 뜻인지 몰랐다. 그 당시만 해도 의대나 한의대보다는 '순수한' 열망으로 물리학과를 선택하는 수재들이 많았고, 국문과를 '굶는 과'라고 자조적으로 부르기는 했지만 학창 시절부터 취업을 걱정하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던 나름 '낭만적'인 시절이기도 했다.
하지만 IMF 경제위기를 분수령으로 세상이 바뀌었다.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듯 '금전'이 한국사회 부동의 제1가치가 되어버렸다. 기실 돈이 세상을 지배하고 돈 싫어하는 사람 없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의 위력은 항시 막강했다. 다만 예전에 돈을 대하는 태도가 '위선적'이었다면 이제는 지극히 '노골적'이라는 사실이 다르다. "부자 되세요!"가 최고의 덕담이 되었고, 도박판에서 주로 쓰이던 '대박'이라는 단어가 대단한 일과 황당한 일을 동시에 뜻하는 신조어로 등장했다.
웃기고도 슬픈 시대의 농담으로 한국의 이념은 좌나 우가 아니라 '먹고사니즘'이라고 말한다. 마침내 돈이 권력을 넘어 인격이 되고 가난은 동정받기보다 혐오스럽게 여겨지는 지경에 이르러, 다시금 '돈'의 정체를 짚어 봐야 마땅할 터이다. 사랑을 속이고 삶을 파괴하는 악마인지, 그것만 있으면 모든 황홀이 펼쳐지리라는 천국의 열쇠인지.
돈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돈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과연 돈은 얼마나,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 등나라의 문공이 맹자에게 나라 다스리는 것에 대해 묻자 맹자는 백성들의 농사일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며 '금전'을 중시하는 중국인답게 대답을 한다.
"항산(恒産)이 있는 자는 항심이 있을 것이요, 항산이 없는 자는 항심이 없을 것입니다." 항산이란 항상적인 재산, 살아갈 수 있는 일정한 재산이나 생업이다. 스스로 항산을 일구지 못하면 돈벌이에 혈안이 된 속물과 마찬가지로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실주의자인 맹자는 가차 없이 묻는다. "내 자신이 몸 둘 곳이 없는데 어떻게 뒷사람들을 근심할 틈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 항산을 일구어 지은 항심은 천한 탐욕과 다르다. 좋은 밭 천만 이랑이 있어도 하루에 쌀 두 되를 먹고, 큰 집이 천 칸 있어도 밤에는 여덟 자 방에 눕는 이치를 잊지 않는다면, 돈은 진정한 힘이 된다. '악마의 금전'에 삼켜질 수 없는 자존을 지키는 힘이. 돈은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 자유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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