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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터의 고뇌

草霧 2013. 12. 4. 13:07

 

 

 

인문학 산책

베르터의 사랑과 고뇌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

괴테가 자신과 친구의 체험을 바탕으로 4주 만에 탈고한 소설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지금도 고전소설의 명불허전으로 손꼽힌다. 나폴레옹도 일곱 번이나 읽었을 정도의 애독자로 만든 이 소설의 감동은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

임홍배 서울대 독문과 교수

젊은 베르터의 고뇌

 

괴테(1749~1832)가 스물다섯 살에 발표한 소설 ‘젊은 베르터의 고뇌’(1774)는 이중의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대학 졸업 후 법관 시보로 근무하던 청년 괴테는 약혼자가 있는 여성을 사모하다가 쓰라린 실연을 맛보았고, 그 직후 예루잘렘이라는 직장 동료가 같은 이유로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이에 충격을 받은 괴테는 자신과 친구의 체험을 바탕으로 불과 4주 만에 이 소설을 탈고하였다.

베르터와 로테의 운명적인 만남

베르터가 로테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로테는 두 살부터 열한 살까지 여섯 명의 동생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모습으로 포착된다. 어머니를 여의고 처녀의 몸으로 어린 동생들을 손수 키우는 지극한 모성의 이미지에 베르터가 매료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로테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외톨이로 자란 베르터의 운명적 고독을 포근히 감싸줄 구원의 여인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맺어질 수 없는 운명이다.
로테에겐 이미 약혼자가 있기 때문이다.
약혼자 알베르트와 로테는 그녀의 어머니가 숨을 거두는 임종의 자리에서 평생을 기약한 사이인 것이다. 따라서 로테의 입장에서 알베르트와의 결혼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을 이행하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넘어설 수 없는 현실의 장벽에 부닥친 베르터는 한동안 로테의 곁을 떠나 궁정의 일에 전념함으로써 감정을 추스르고자 애쓴다.
그러나 어떤 구속에도 얽매이기 싫어하는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인 베르터는 경직된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궁정사회에서 숨이 막힐 듯한 갑갑함을 느낄 뿐이다. 더구나 평민 출신인 그는 귀족들의 사교모임에서 ‘왕따’를 당하는 치욕적인 수모를 겪는다. 궁정 관료조직에서 업무상으로는 귀족들과 상종할 수 있지만, 업무를 떠나 인간적인 관계에서는 감히 귀족들 틈에 끼어들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신분차별의 질곡 때문에 베르터는 궁정 관료사회를 ‘노예선’에 빗대며 이 감옥 같은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 즉 자살충동에 빠져든다.

괴테에겐 고해성사 같은 작품

궁정에 사직서를 제출한 베르터는 다시 로테의 곁으로 돌아오지만 그 사이에 로테는 결혼한 처지이다. 베르터는 다시 뜨거운 연정이 달아오르지만 더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로테를 신성한 존재로 여기면서 숭고한 사랑의 감정을 불태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로테와 뜨거운 포옹을 나눈 다음 날 베르터는 로테에게 유언으로 남긴 편지에서 죽음의 결심을 밝히면서, 그 결심은 절망 탓이 아니라 로테를 위해 자신을 바칠 수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베르터는 결국 로테의 집에서 빌려온 권총으로 자살하기에 이른다.
그의 죽음은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정사(情死)일 뿐 아니라, 신분차별과 편견이 지배하는 당대 사회를 향해 온몸을 내던진 희생과 저항의 죽음이기도 하다.
훗날 괴테는 이 소설의 창작과정을 통해 마치 고해성사를 한 것처럼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괴테에게 창작은 자신의 고통을 토로함으로써 치명적인 격정에서 벗어나는 치유의 과정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독일 전역에서 모방자살이 속출하자 성직자들은 자살과 불륜을 부추기는 책이라며 비난하였고, 그런 연유로 이 책은 도처에서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괴테보다 스무 살 아래였던 나폴레옹은 이 작품을 일곱 번이나 읽은 애독자였다.
작품 발표 후 50년이 지난 뒤에 이 소설을 다시 펴내면서 괴테는 ‘베르터에게’라는 조시(弔詩)를 써서 마치 자식을 먼저 보낸 어버이의 심정으로 베르터가 다시 소생한 듯한 재회의 감회를 토로한 바 있다.

임홍배 역 '젊은 베르터의 고뇌' (창비 2012)

✽ 이 작품은 흔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번역되어왔으나, ‘베르터’가 독일어 발음에 가깝고 복수명사 Leiden은 극한의 고통, 고난 등의 복합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고뇌’로 번역하였다. icon

임홍배 서울대 독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