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지혜가 담긴 109가지 이야기
지은이: 김방이
세상의 지혜가 담긴 동서양의 고전 이야기
동서양의 고전을 읽다 보면 감성과 지성에 탄력이 붙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
로운 눈이 열린다. 지역적, 문화적, 차이와 더불어 시대가 다른 삶 속에서 옛 성
현들이 겪었던 풍부한 인생경험이 오늘날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훌륭한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여자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만 가득하고 꽃처럼 잠시 피었다
가 시들어지고, 빠르게 지나가는 그림자 같아서 이 세상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고 성경은 전한다. 이렇듯 짧은 인생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으려면
선현들의 지혜가 담겨진 고전을 읽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사이 우리는 이러한 지혜의 보고인 고전을 읽지 않는다. 정말 안타
까운 일이다. 우리는 모두 눈에 보이는 형식에만 매달려 인간의 본질을 저버리
고 인간성을 상실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 중병은 몸 속깊이 숨어 갖가지 합병증
을 드러내 보인다. 따라서 겉에 나타나는 병을 그때마다 치료하기보다는 깊이
감추어진 병을 찾아내 메스를 가하는 작업이 중요해진다.
고전을 읽는 일은 이와 같다. 고전은 우리 삶의 근본에 대해 생각게 하고, 삶
을 풍부하고 윤택하게 해 준다. 걱정과 근심으로 뒤범벅이 된 우리의 나날을 새
롭게 하면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필자의 구체적인 삶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이 책에서는 관념적이
거나 추상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다. 독자를 의식하면서도 또한 의식하지 않으려
고 노력하였다. 가까운 친구에게, 후배에게 이야기하듯 솔직하고 알기 쉽게 쓰려
하였다. 가까운 친구에게, 후배에게 이야기하듯 솔직하고 알기 쉽게 쓰려 하였
다.
동서양의 고전들이 우리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메시지’를 필자가 겪은 인생
경험의 여러 가지 조각과 맞추어 보려고 하였다. 이 책이 ‘고전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입문서’ 역할을 한다면 그보다 더한 영광이 없겠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걱정과 근심 때문에 숨이
막힐 것 같은 사람들이여!
선현들이 고전 속에 숨겨 놓은 보물을 찾아서 여행을 떠나보자.
1997년 10월 김방이
1.사물을 바로 보는 눈
부자들의 농담은 항상 우습다
예기는 ‘소인은 가난하며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여 나쁜 짓을 하고, 부자
가 되면 교만하고 방자하게된다'고 이르고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기 어렵지만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기는쉽다‘고 하였지만 말이다.
빈 수레가 요란한 소리를 내듯, 실력 없는 사람은 큰소리로 자기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떠들다가 아무런 결과를 못 내고 만다. 짖어대는 개는 물지 않
듯, 말이 많은 사람은 그의 에너지가 모두 입으로 나와 버리기 때문인지 실천력
이 별로 없다.
하지만 무서운 실력을 갖춘 사람일수록 말이 없다. ‘물어 뜯는 개는 짖지 않
는다’는 말이나, ‘조용히 눈만 껌벅거리는 두꺼비가 나는 파리를 잡아 먹는다
’는 속담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말이 많은 사람도 조심하여야 하지만 말이 전혀 없는 사람도 조심하여야 한
다. ‘뒷구멍으로 호박씨를 잘 까는 사람‘도 앞에서는 모두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입후보자가 선거운동을 하러 유권자집을 들렀는데 그 집 개가 맹렬히 짖어
댔다. 집주인이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잖아요? 그러니 걱정말고
들어오세요.”하고 말했다.
그러자, 입후보자는 “예, 그러지요.”하고 대답하면서 “그 속담, 당신과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저 개도 그걸 알고 있는지 그것이 걱정되네요.”라고
말했다 한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피와 물
장자의 산목편의 일화 한 편을 보자.
임회라는 사람이 있었다. 전쟁이 나서 적군이 침범해 오자 그는 많은 보물을
내버려 두고 갓난아이 하나만 들쳐 업고 도망을 갔다. 그러자 옆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돈으로 따지면 갓난아이는 보물보다 훨씬 못하지 않습니까? 그런
데 왜 보물은 보리고 귀찮은 갓난아이만 업고 도망을 갑니까?“하고 그에게
물었다. 이에 임회는 “보물은 나와 이익으로 맺어져 있지만 이 아이는 나와 운
명으로 맺어져 있소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익으로 맺어진 것은 위급을 당했을 경우 쉽게 벗어버리지만, 혈육은 위급한
경우 더욱 보전이 된다는 말이다. 세상의 모든 관계 중에서 가장 우선하는 것이
혈연이다.
공자는 “재주가 있건 없건 부모는 항상 제 자식이 잘났다고 생각한다”고 했
으나, 자기 자식이라고 해서 제자보다 더 가까이 하지는 않았다. 공자에게 있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제 자식이 잘났다고 생각하더라도 자식의 능력
을 냉정히 판단하여 자식의 능력에 맞는 삶의 방법을 강구하여 주라는 말이었
지, 능력 없는 자식을 그 능력에 맞지 않게 대우하여 감싸안으라는 말은 아니었
던 것이다.
예수를 만나러 예수의 어머니와 친동생들이 왔다. 하지만 예수는 “내 어머니
와 형제가 누구입니까?”고 묻고는 제자들을 가리키면서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입니다“라고 말했다. 예수는 ”누구든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다 내형제자매요 어머니이다“라고 말했던 것이
다.
“ 온 세상사람들이 모두 형제자매들이다”라고 한 공자와 다를 바 없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혈연 관계를 다른 관계보다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팔
이 안으로 굽는다’라든가,‘하느님은 우리에게 피붙이를 허락하였다. 반면에 우
리는 친구를 인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라는 말들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혈연
으로 맺어진 딸에게는 죽먹은 그릇을 설거지시키고, 인위적으로 선택한 며느리
에게는 기룸 묻은 그릇을 닦게 해서는 안된다.
피로 맺어진 형제 자매와 똑같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예수나 공자의
성품을 보통 사람들에게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우리들은 그러한 성품을
갖추려고 노력은 하여야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부자들의 농담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대할 때 갖청하듯이 말을 하지만 부자는 거만하게 대답
한다. 아무래도 부자가 되면 거들먹거리게 되고, 가난한 사람을 ‘똥치운 막대기
’같이 함부로 대하게 되기 싶다. 그래서 예기는 ‘소인은 가난하면 그 괴로움
을 이기지 못하여 나쁜 짓을 하고, 부자가 되면 교만하고 방자하게 된다’고 이
르고 있다. 비록 공자가 논어에서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기는 어렵지만 부유
하면서 교만하지 않기는쉽다‘고 하였지만 말이다.
부자의 선행
부자는 이렇게 가난한 사람을 ‘심심풀이 땅콩’과 같이 아무렇지 않게 생각
하지만, 그들에게 베푸는 큰 선행(?)이 하나 있다. 먹을 것을 주어 입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농담을 통해 그들의 ‘귀’만을 즐겁게 하여 주는 것이 그
것이다.
1960년대말, 한 신문사는 박정희 대통령과 주위에 있는 사람이 함께 웃고 있
는 사진을 실은 적이 있다.
‘대통령의 미소’란 제목의 이 사진은 박 대통령이 한마디하고 멋쩍게 미소를
지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에 주위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박장대소하는 모습
을 담고 있었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 떼들이 모여들 듯이, 부자나 권력자 주위에는 그들
의 눈에 들어 ‘한 건’잡아 보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갖은 기상천외한 방
법을 동원하여 부자나 권력자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
성경 시편은 ‘권력있는 사람들을 의지하지 말고 도울 힘이 없는 인간을 의지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오직 하느님만 의지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
는 하느님보다 눈에 보이는 인간에게 더 큰 기대를 하게 되는가 보다.
가난한 사람의 고통
맹자는 ‘몸을 굽실거려 웃는 것을 억지로 하면서 남에게 아첨하는 수고로움
은 여름날 땡볕에 밭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고되다‘고 하였다.
정말 그렇다. 몸을 굽실거려 웃는 것을 식은 죽 먹듯이 하여야 하는 사람의
고충을 이루 말할 수 없을정도다.
필자도 사업을 한답시고 ‘불난 산의 토끼같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이
마를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사람’과 상대해야 했던 적이 있다. 그가
하는 농담은 정말 밥맛나지 않는 수준의 것이었지만‘한 건을 잡으려고’ 아첨
의 웃음을 지어야 했는데, 그 고통은 땡볕에 밭에 나가 일하는 것이 훨씬 쉽다
는맹자 어른의 말씀을 확실히 기억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이 아무리 재미있고 배꼽 잡고 포복 졸도할 농담을 하더라
도 그 말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은 없다. ‘지혜를 얻는 것은 금
을 얻는 것보다 낫고 지식을 얻는 것은 은을 얻는 것보다 낫다’는 옛말도 있긴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인 듯하다. 아무리 지혜가 많고 현명한 사람이라도
돈이 없으면 ‘비단 옷 입고 밤길 가기’와 같이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소진의 친척
동주 사람 소진은 고향을 떠나 유학하면서 돈을 벌지 못해 어렵고 힘든 생활
을 하였다. 이 때 형제, 형수, 누이 등은 그의 무능함을 비웃으며 그를 ‘과천나
무장수 나무라듯이’ 박대하였다.
그는 그럴수록 마음을 가다듬고 학문에 정진하였다. 후에 그는 천하를 돌면서
여섯 나라의 합종의 맹약을 성사시켜 이들 연합국의 수상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고향인 주나라로 돌아왔고, 자신의 명망과 위세에 눌린 주나라 임금으로
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금의환향한 그가 자신의 가족들을 초대하여 화려한 만찬 식사를 할 때의 일이
었다.
소진의 형제와 형수들은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는 척하면서 곁눈으로 서로 볼
뿐, 감히 그를 쳐다보지 못하였다.
소진은 웃으면서 “전에는 그토록 나를 ‘쥘 데 없는 똥바가지’같이 대하시
다가, 지금은 이토록 공손히 조아리시니 웬일들이십니까?“하고 물었다.
소진의 형수가 지난날 잘못을 크게 뉘우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조아린 채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솔직히 말했다. “계자의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기 때문입
니다.” 계자는 소진의 자였다.
소진은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사람인데 부귀하면 상감마마 모시듯
하고 빈천하면 발꿈치의 때만도 여기지 않으니, 일반 사람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겠구나....“라며 장탄식을 하였다. 그러면서 발분하지 않았더라면 오늘과 같은
날이 있지 못할 것이다!”하고는 가족들에게 많은 돈을 나누어 주었다.
부자들의 농담은 항상 웃음꽃을 피운다
변함없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친구이며 위급할 때 서로 돕는 것이 형제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이 가난하면 피를 나눈 형제에게도 업신여깁을 받는데 어찌
부자인들 멀리하지 않겠는가? 가난한 자가 그들에게 가까이 가서 이야기하고 싶
어도 그들을 만나주지 않을 것이다. 시인 토마스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읊었다.
‘애송이들아, 돈은 꿀보다 달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 그래서 돈 많은 사람의
농담은 항상 웃음꽃을 피우지!’
부자들의 농담은 항상 웃음꽃을 피운다.
혁명에 대하여
혁명은 장미향수 같은 감상적이고 미적지근한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혁명은 이상이나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The French Revolution)
1789년 프랑스 외회는 국왕 루이 16세에게 의회에 출두하여 서정쇄신에 대한
공약을 하라고 촉구하였으나 그는 그 제안을 거절하였다. 그는 1791년 9월 의회
의 끈질긴 요구에 굴복하여, 봉건제를 철폐하고 새로운 헌법을 공포하였으나, 실
질적인 개혁에 비협조적이고 오히려 의회 내의 왕정 반대 세력을 제거하려 하였
다.
당시 프랑스 국민들은 누적된 사회문제, 부정부패, 국제적 전쟁 떼문에 도탄에
빠져 있었다.
마침내 1793년 의회는 이러한 혼란과 무질서를 수습하기 위하여 공화정을 선
포하고 루이 16세와 왕비 앙투아네트를 길로틴이라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였고, 이로써 프랑스 혁명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길로틴과 로베스피에르 단두대인 길로틴은 프랑스 사람 길로틴이 사람의 목을
빠른 시간 내에 자를 수 있게 고안한 것으로, 그는 기계를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었으나, 자신도 길로틴에 의해 목이 잘리는 운명에 처했다고 한다.
하여간 누적된 부정과 부패는 과격하고 혁명적인 방법에 의해 처리되어야 한
다는 자코뱅당 지도자 로베스피에르는 권력을 잡자 서정쇄신이라는 명목으로 수
천 명을 단두애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는 무시무시한 공포정치의 철권을 휘둘렀
다. 그러나 그의 극단적인 정치행위는 더욱 큰 혼란과 무질서를 가져와 민심의
이반을 일으켰고, 그 역시 1794년에 길로틴에 목이 잘렸다.
길로틴에 목을 대고 사형이 집행되기를 기다리는 순간, 그는 무슨 생각을 했
을까? 수천명의 생명을 무참하게 죽인 자신의 잘못을 신에게 용서를 구하였을
까? 아니면 자신의 행동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었고 지금 죽는 것이 억울하
다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되새겼을까?
프랑스는 그가 처형되고 난 후 일종의 회복기에 들어갔지만 그가 남긴 악의
씨앗은 향후 25년간 치료할수 없는 깊은 상처를 안겨 주었다.
그가 죽고 난 후 프랑스 정치는 음모와 중상모략이 판을 치며 더욱 부패되어
갔고 날마다 팽창하는 통화는 누구도 억제하지 못했다.
나폴레옹
프랑스 남부 코르시카섬 태생의 포병 지휘관 나폴레옹 보나파트는 이러한 혼
란한 시기를 적절하게 이용하였고 1799년 쿠테타를 일으켰다.
나폴레옹은 강력한 지도력을 원하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여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의 질서를 회복시켰다. 하지만 조세핀을 부인으로 맞아들이고, 1804
년에는 스스로 자기 머리에 황제 왕관을 올려, 프랑스에는 다시 왕정이 부활되
었다.
혁명은 장밋빛 이상향 건설에 목표를 두기 때문에 이루어지기 힘들다. 혁명
공약도 혁명이 실패했을 때,
‘그래도 그 뜻이난 동기가 좋았다’는 한마디를 남기기 위한 의미 밖에는 없
다.
세계 어느 나라 혁명을 보든 간에 ‘공약대로 된 혁명’은 하나도 없다. 혁명
주동자들은 구악을 없앤다고 혁명을 일으켜 구악보다 더한 신악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경의 마태복음은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 있다.
“더러운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와 쉴 곳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그래
서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와 쉴 곳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귀신은
‘내가 나온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하고 가보니 그 집이 비고 깨끗이 소
제되고 정돈되어 있었다. 그 귀신이 자기보다 악한 귀신 일곱을 더 데리고 그곳
에 들어가 살자 그 사람의 상태가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되었다.
일모도원
중국 초나라 평왕은 오자서의 아버지와 형을 대역죄인으로 몰아 죽였다. 오자
서는 평왕의 체포명령을 피하여 도망을 갔고 우여곡절 끝에 오 나라에 갔다. 그
곳에서 그는 이를 갈면서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으로
세월을 보냈다. 15년의 세월이 흐른 후 오자서는 전략가 손무의 도움으로 초나
라에 쳐들어가 수도를 점령하였다. 복수심에 불탄 그는 이미 10년 전에 죽은 평
왕의 묘를 파헤쳐 그 시체에 매질을 하였다. ‘시체에 매질하기 300대. 그 때서
야 멈추다’라고 사마천은 사기에 적었다.
이에 오자서의 친구인 신포서는 이 말을 듣고 “아무리 부형의 원수라고 하지
만 너도 한때 평왕의 신하였는데 시체에까지 매질한 것은 너무하지 않았느ㅑ?“
고 따져 물었다.
오자서는 “해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그래서 내가 천방지축 거꾸로 다니면
서 이치에 어긋난 행동을 하였을 따름이다“고 말했다.
결론
혁명이란 순리에 따라 침착하게 진행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해야 할 일은
많고 남아있는 시간은 짧은 것이다. 짧은 시간 내에 큰 업적을 만들어내려 하니
무리가 따르고 과격한 행동이 일어난다.
역사는 항상 교훈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혁명을 주동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제대로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 혁명도 일어나는 모양
이다.
혁명은 부드러운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쭈그렁 밤송이
건강에 대해 관심이 높아가는 시대이다. 건강에 스트레스는 악이고 즐거움은
선이라고 한다. 과연 꼭 그런 것일까? 이런 의문이 드는 까닭은 건강하게 활동
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는 일이 많은 반면, 잔병치레를 자주하는 사람이 오래 사
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노자의 사상을 더욱 발전시킨 장자의 이야기를 보자.
우산에 아름답고 곧게 자란 나무가 많았다. 그 나무가 곧고 아름다우므로 사
람들이 재목으로 쓰려고 마구 도끼질을 해댔다. 나무가 없어지자 풀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소나 양을 방목하여 마구 뜯어먹게 하였다. 우산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버리고 벌거숭이의 추한 산이 되었다.
쭈그렁 밤송이 삼년 가듯 완전치 못한 것, 보기 싫은 것은 그대로 놔두기 때
문에 오래 간다. 곧게 자란 나무는 그럴 염려 없이 제 수명을 다한다. 도덕경의
‘곡즉전’이란 말은 이런 경우를 가리킨다.
건강관리에 이 이야기를 도입해 보자. 건강하다고 몸을 마구 써보라. 우산과
같이 쉽게 망가진다. 그러나 아름답지 못한 산도 자꾸 관리를 하다 보면 아름다
워지듯이 우리 몸도 마찬가지이다.
잔병치레 많이 하는 사람은 건강에 조심하기 때문에 오래 사는 데 비하여 건
강한 사람은 건강을 과신하여 몸을 함부로 하기 때문에 갑자기 죽는 일이 많다.
항상 적절한 긴장과 자극, 건전한 위기의식이 있어야만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
이 생기고 살아남을 수 있다.
논에 미꾸라지를 키울 때 한쪽 논에는 미꾸라지만 넣고, 다른 쪽에는 미꾸라
지와 함께 메기를 키우면 메기를 넣어 키운 미꾸라지가 훨씬 더 통통하게 살이
쪄 있다고 한다. 미꾸라지들이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항상 활발히 움직
였기 때문에 더 많이 먹어야 했고 그 결과 더 튼튼해졌던 것이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우환에 살고 안락에 죽는다
’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쭈그렁 밤송이 삼년 간다.
열고 닫을 때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문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열지 않고 오
랫동안 놔둔다. 소동파는 ‘자고로 아름다운 여자는 박명하다’고 하였다. 아름
다운 미인이니 이 남자 저 남자가 자꾸 귀찮게 하니 빨리 죽을 수 밖에...
손해와 이익
아들을 둘 둔 어머니가 있었다. 큰아들은 소금 장수였고 작은 아들은 우산 장
수였다. 이 어머니는 항상 웃고 울었다. 비가 오면 우산 파는 아들이 잘 되어 좋
으나 소금 장수 아들이 걱정이었고 날이 개면 그 반대였다.
한 사람이 손해를 보면 다른 사람이 이익을 본다는 뜻의 이야기다.
춘추전국시대 중국의 한 이야기를 하나 더 살펴보자.
초나라 왕이 사냥을 갔다가 아끼던 활을 잃어버렸다. 활은 명품이었다. 신하들
이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자 왕은 “초나라에서 잃어버린 것이니, 초나라 사람이
얻을 것이다. 내가 꼭 찾아서 무엇하랴.”고 말했다.
공자는 이 말을 전해 듣고, “왕의 생각이 왜 그렇게 크지 못한가? 왜 사람이
잃은 것을 사람이 얻을 거라고 말하지 않는가?“고 했다. 자칭 ‘국문학의 국보
적 존재’였던 고 양주동 박사는 ”아깝다! 공자의 생각이 왜 그리 크지 못하냐.
왜 자연에서 잃은 것, 자연이 얻는다고 말하지 않느냐“며 공자보다 한 술 더
떴다.
다이어트
뚱뚱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살찐 몸매가 싫었다. 어느날 의사를 찾
아간 그녀는 몸매가 날씬해 질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의사는 그녀에게 아름다
운 누드 모델의 사진을 주며 말했다.
“냉장고 안에 이 사진을 붙이세요. 무엇이 먹고 싶어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사진을 볼 것 아닙니까?
그때마다 정신이 바짝 들어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것입니다.”
의사의 처방은 정말 효험이 있었다. 그녀는 냉장고를 열 적마다 아름답고 멋
진 몸매의 사진을 보고 식욕을 억제하였고, 마침내 아무개 대통령 후보의 아들
처럼 한 달만에 몸무게를 10kg이나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일어났다. 거꾸로 그녀 남편의 몸무게가 10kg이나 불어난
것이다. 우연히 냉장고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나체 사진을 본 남편은 그 사진을
보기 위해서 자주 냉장고 문을 열었고 그때마다 음식을 먹었던 것이다.
이익보는 사람이 있으면 손해 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한 사람의 손해는 다른 사람의 이익이다.
생일잔치 기다리다 굶어 죽는다
‘풀이 자라는 동안에 말들은 굶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꿈이나 기대
가 이루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그 사이를 이겨내기 힘이 든다는 뜻이
다.
솔 심어 정자 만든다는 말도 그러하다. 어린 소나무를 심어 뒷날에 정자를 만
들 제목으로 쓴다 함이니 그 결과를 보기가 아득하다는 말이다.
조니 버나드 쇼(1856~1950)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런던에서 활동한 극작가이며
비평가였다. 그는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전에 상당히 어려운 생활을 하였는데,
후에 당시의 고통을 이런 말로 나타내었다.
“원맨쇼 후에 내년의 공연표도 빠른 시간 내에 팔 수 있는 자신이 생겼다.
그러나 생일날 잘 먹으려다 굶어 죽게 생겼다.
철부지급
어느날 굶주림을 참다 참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장자가 마침내 자존심을 버
리고 벼슬하는 친구에게 곡식을 빌리러 갔다. 장자의 초췌한 몰골을 본 친구는
딱 잡아 거절하고 싶었으나 차마 냉정하게 뿌리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
빌려주지, 그런데 지금은 없고 한달 후에 세금을 걷으니 그때 가서 빌려 주겠네
”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장자가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어제 내가 여기로 오는 길에 나를 부르는 소리가 있어 돌아보니 수레바퀴로
파인 곳에 고인 물 속에 붕어 한 마리가 있었네. 내가 그 붕어에게 ‘그 곳에서
무엇을 하느냐?’고 묻자 붕어가 말하길, ‘나는 동해 용궁의 왕이다. 그런데 지
금 곤경에 처해 있다. 나를 도와 주시오‘하고 애원하질 않겠나. 그래서 나는
또 말했네. ‘좋다. 나는 지금 남쪽의 물나라에 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그 곳에
가서 큰 강물을 그대에게 돌려 대주겠다. 그때까지 기다려라’고 말일세. 그러자
붕어가 나에게 또 말하는 것이었네. ‘나는 있어야 할 곳을 잃어 위급한 지경에
있다. 그러나 지금 한 되나 한 말쯤의 물만 있으면 산다. 그대가 갖고 있는 것
조금만 나누어주면 될 터인데 왜 그렇게 삶은 호박에 이도 들어가지 않을 헛소
리를 하는가‘라고 말하면서‘그대가 나를 다시 찾으려면 시장 건어물전에 가서
찾으시오’라고 말하더란 말씀이네.“
철부란 수레바퀴로 패인 곳에 고인 물속의 붕어를 뜻한다. 사람이 다급하고
곤궁한 처지에 이른 경우를 두고 이런 말을 쓴다.
생일날 잘 먹으려고 굶다가 장자양반 제삿날 젯밥 공양 받을라!
솔로몬은 <지혜의 글>에서 “선을 베풀 능력이 있거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주저 하지 말고, 너에게 가진 것이 있으면, ‘네 이웃에게
갔다가 다시 오면 내일 주겠다’라고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고통에 쌓인 사람에게 위로하는 말이라도 하여 주자.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
마저 깨려 해서는 곤란하다.
생일날 잘 먹으려고 기다리다 굶어 죽는다.
죄와 법
법의 정신은 과실이나 무지로 지은 죄는 크더라도 너그럽게 대하고 고의성이
짙은 죄는 작더라도 엄하게 벌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또 죄가 있다는 심증이
가더라도 확증이 없으면 처벌하지 않는다.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혐의가 있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생각하여 준다는 말이다.
몇년 전, 경찰관이었던 사람이 살인죄로 형이 확정되어 1년 반 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진범이 붙잡혀 풀려난 사건이 있었다. 조사를 한 경찰, 기소한 검찰, 선
고한 법원 모두가 마구잡이 수사와 선고를 한 셈이됐다.
‘심증이 가더라도 확증이 없으면 죄를 주지 않는’원칙에서 벗어난 경찰, 검찰,
법원은 신뢰성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법 집행자들이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말이 있다. ‘형벌을 주는 것은 죄를 없
애는 데 있지 사람을 처벌하는 데 있지 않다‘는 서경의 말이 그것이다. 옥사를
다스리는 목적은 죄인을 선도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논어는 ‘
법 집행을 하는 사람은 죄인을 문초할 때 그의 죄상이 밝혀진 것을 기뻐할
것이 아니라 범인이 죄를 범한 이유와 원인을 따져 그의 처지를 이해하도록 노
력해야 한다‘고 하였다. 새겨들어야 할 말임에 틀림없다.
법을 몰라서 저지른 죄도 죄다. (ignorance of the law is no excuse for
breaking it) 법에 대한 무지로 저지른 죄 역시 죄에 해당된다. 법에 관한 격언
즉 법언으로,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이다.
위선자의 상술
악마는 자신의 본체를 속이기 위해 성경의 말씀을 그의 행위에 합당하도록 인
용한다. 그래서인지 사기꾼이나 위선자들은 감언이설로써 사람들을 꼬드긴다. 그
래서 예수는 ‘아무에게나 속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고 말하며, ‘많은 사람이 ’내가 그리스도이다‘라고 말하며 속일 것이다.’라
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이에 덧붙여 ‘너희는 뱀과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따뜻한 마음을 가지라’고 하면서 사기꾼들에게 ‘속지 말 것’을 충고하고 있
다.
위선자들은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고, 무거운 짐은 남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
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잔치자리의 상석이나 연단에 앉아 사람들을 내려다 보기
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이 ‘선생’이라 불러주기를 원하고, 하는 일마다 남에게
자랑하려고 큰 소리를 친다고 한다. 호주에서는 정치인과 중고자동차 판매상이
이에 해당되는데 한국에서는 어떤 부류가 해당될까?
양두구육은 겉으로는 훌륭하게 내세우나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 위선자의 행위
를 일컫는 말이다. 이제 보신탕(일명 멍멍탕) 때문에 이 말 자체가 변화를 강요
당하고 있다. 개고기가 양고기보다 훨씬 비싸므로 구두양육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말이란 시세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닌가?
악마는 양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 (The devil can quote Scripture for
his own ends.)
위선자를 나무랄 때 사용하는데 위선자들은 양가죽을 뒤집어쓴 이리와 같이,
자신을 미화하기 위하여 양의 머리인 성경을 인용한다는 뜻이다.
선물과 성의
선물을 받고나선 선물에 대한 투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남이 생각하고 준 선
물이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면 그만이다. 선물이 비싸니, 싸니, 좋으니, 나쁘
니 하면 선물한 사람에 대한 고마움은 줄어들고 오히려 결점만 눈에 들어오는
결과를 낳는다.
가난한 자가 밝힌 등불 하나
석가모니가 사위국의 어느 정사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난타란 여자는 의지할
곳이 없고 가난했기 때문에 거지 생활을 하면서 살았다. 그녀는 석가모니를 공
양하기 위해 하루종일 쉬지 않고 걸어다니며 자비를 받아 겨우 10원을 얻어냈
다. 10원을 가지고 기름을 사려고 하다가 기름집 주인은 10원으로는 기름을 살
수 없다고 말하면서 무엇에 쓰려 하느냐고 물었다.
난타는 가슴속의 이야기를 했다. 주인은 그녀를 불쌍히 여겨 충분한 기름을
주었다. 난타는 등에 불을 붙여 정사의 석가모니에게 바쳤다. 난타의 성심으로
바친 등불 하나는 한밤중까지 계속 빛나고 다른 등불이다 꺼진 뒤에도 계속 빛
났다.
과부의 동전 두 닢
예수 역시 부자의 큰 돈 헌금보다 과부의 동전 두 닢을 더 크게 보았다. 예수
는 부자들이 헌금궤에 돈을 넣는 것을 보고 있던 중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작
은 동전 두 닢을 넣는 것을 보고는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이 가난한 과부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헌금을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넉넉한 가운데 일부
를 헌금하였지만 이 과부는 가난 속에서도 가진 것 모두를 바쳤다.“고 하였다.
가난한 사람에게 받은 선물의 경우 금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예와 비례를 따
지면 안 된다고 기록하고 있는 예기처럼, 주는 사람의 진심을 보아야지 성심으
로 주는 선물에 대하여 값을 따져서는 안된다.
선물보다는 주는 사람의 성의를 중요시하라. (Never look a gift horse in the
mouth.)
말은 이빨의 상태에 따라 나이와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 선물로 받은 말의
입 안을 살펴보는 것은 선물의 값어치를 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교회에서
도 현금의 액수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심을 저울질한다고 한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다 깨끗한 것 같아 보여도, 마음을 살피는 하느님의 앞에서는 그
렇지 않다. 하느님은 현굼 액수를 보지 않고 헌금한 사람의 마음을 본다.
군인과 명령
군대는 일정한 조직과 질서에 따라 편제된 장병의 집단이다. 하는 일은 국토
방위다. 군대는 위계 질서를 생명으로 하고 상명하복의 원칙에 따라 명령에 따
라 움직이는 조직 사회이다.
하극상
1961년 5월 16일 육군 소장 박정희는 용기만 있지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
젊은 영관급 장교’를 모아,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구성된 정권으로
부터 권력을 빼앗는 쿠테타를 일으켰다. 그는 」혼자서 진급하여 대장까지 오른
후 전역하면서 ‘자기와 같은 불행한 군인이 다시는 나와서는 안된다’고 눈물
을 흘리며 강조했다. 그의 쿠테타는 상명하복과 위계질서를 생명으로 하는 군에
하극상이라는 치명적인 전통을 세웠다. 그가 18년간 권력을 독점한 후 비명에
가자, 역사는 속성대로 되풀이 되었다. 옛날 박정희 소장의 전통을 이어받은 전
두환 소장은 실권을 장악하자 대통령, 국방장관, 대장, 중장 등 자신의 직속 상
관들로부터 차례로 경례를 받았다.
‘정치를 함에 어찌 사람을 죽이리오’란 말이 논어에 있다. ‘세상을 다스리
기 위해서는 악의 무리를 모조리 죽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계강자의 질
문에 공자가 타이르며 이른 말이다. 공자는 아무리 악한 백성이라도 살리는 데
의의가 있으므로 죽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전두환 소장은 민주주의를 원하는 수백명의 무고한 양민의 시체 위에
서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공과는 역사가에 의해 굴절없이 판단되어야 할 것이
나 하극상이라는 치명적인 전통을 거듭 세운 것은 대한민국 군대에 저지른 큰
죄악이었다. ‘군인이 용기만 있고 정의가 없으면 반란을 일으킨다’고 논어는
가르치고 있다. 아울러 춘추는 ‘옳지 못하면서 강한 군대는 바로 쓰러지기 마
련이다’고 전한다.
군인은 확고한 국가관과 상명하복의 원칙에 따라 국가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제1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춘추에 나오는 무인의 일곱가지 덕을 보자. 군인이 지켜야 할 수칙이다.
첫째, 난폭한 자를 제압시켜야 한다. 둘째, 무기를 거두어 싸움을 중지시킨다.
셋째, 나라와 국가 원수를 보전한다. 넷째, 공을 세워야 한다. 다섯째, 국민을 편
안하게 하여야 한다.여섯째, 모든 사람을 화합하게 한다. 일곱째, 제물을 풍족히
하여 생활을 안정시킨다.
이러한 일곱가지 덕을 갖춘 군대는 정의의 군대로 젊고 씩씩하다. 참된 군인
은 의를 바탕으로 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군인은 명령에 죽고 살아야 한다.(The first duty of solder is obedience.)
용기만 있지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의 집단은 ‘깡패의 집단’이지 참
다운 군대는 될 수 없다.
우는 아이
예수는 말했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한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판에 놔두고 그 한마리를 찾으러 가지 않겠
는가?“
의로운 사람 아흔아홉보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더 중하게 여긴다는 성
경의 말씀이다.
우리는 잘 사는 이웃보다 못 사는 이웃을 위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
므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밉더라도 ‘떡 하나 더 주는 셈’ 치고 신경을
써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눈을 뜬 두 장님
예수와 제자들이 여리고(얼마 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국에 넘겨준 도
시로 예리고 또는 제리코라고 부른다)로 갈 때 많은 군중이 그를 따랐다.
두 장님이 예수가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외쳤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따라가던 군중들이 그들을 보고 조용히 하라고 윽박질렀으나 그들은 더 큰소
리로 악을 썼다.
“주여, 우리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예수가 그들을 불쌍히 여겨 눈을 만지자 그들이 눈을 뜨고 기뻐 날뛰면서 예
수를 따라갔다.
그들의 절규가 없었으면 예수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삐꺽거리는 바퀴
에만 기름을 치듯, 적극적으로 뒤어들고 외치는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벙
어리 속마음은 그 어미도 모른다’고 한다.
원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표현하자.
우는아이에게 젖준다.(The squeaking wheel gets the grease.)
삐꺽거리는 바퀴에 기름을 치듯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나 물건에 더 관심
이 간다는 말이다. 고기는 씹어야 제 맛이 나고 말은 해야 맛이 나는 법이다. 원
하는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크게 말을 해야 한다.
큰 고기와 송사리
사람들은 금고를 열고 돈을 훔쳐가는 도적을 막기 위해 자물쇠로 단단히 채운
다. 그러나 큰 도둑은 그 금고를 통째로 가져가 버린다. 범행의 흔적이 없어서
쉽게 잡을 수가 없다.
예수는 “눈 먼 자들아! 너희는 하루살이는 잡아내고 낙타는 통째로 빠지게
하는구나.”라며 작은 일만 신경쓰고 큰 일은 소홀히 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나무랐다.
발호. 대나무로 만든 통발을 뛰어 넘는다는 뜻이다. 송사리는 통발에 남지만
큰 고기는 통발을 뛰어넘어 도망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어쩌면 거미줄 같
은 세상이다.파리나 조그만 곤충은 거미줄에 걸려 거미의 밥이 되지만 큰 새는
그 거미줄을 뚫고 다닌다. 크게 나쁜 짓 하는 사람은 교묘히 빠져 나가는데, 작
은 도둑은 붙잡혀서 경을 치른다. 좀도둑은 교수형을 당하고, 큰 도둑은 잘 먹고
잘 산다.
몇천만원이나 몇억원을 먹은 국회의원 ‘나리’들은 ‘떡값’이라고 법망을
피해가는데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몇천 원’ 받으면 붙잡혀서 경을 치른다. “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큰 도적을 위해 재물을 모아주는 사람이고,
성현은 큰 도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다.’라는 장자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게
된다.
큰 고기는 빠지고 송사리만 잡힌다. (Little thieves are hanged, but great
ones escape.)
작은 냄비
“참새가 숲속에 둥지를 튼다 한들 나무 한 가지면 족하고, 생쥐가 큰 강의
물을 마신다고 해도 작으 배 하나 채우는데 불과하다.“ 장자가 한 말이다. 그런
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없이 욕심을 내고 또 제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촉
새’와 같이 화를 낸다. 그래서 공자는 ‘그릇이 작은 사람들을 어찌 다 셀 수
있을 것인가’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은 편협하고 못난이들이다. 작은 냄비가 빨리 뜨거워지듯 이런 자
들은 당장 분노를 터뜨리며 쉽게 다툼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이 좁
은 자를 상대할 때는 살얼음 밟듯 조심해야 한다. 이들의 비위를 건드리면 불에
기름을 붓는 것마냥 길길이 더 뛰기 때문이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것은 불을 끄는 방법이 아니지 않는가?
견문발검
지혜로운 사람은 좀처럼 화를 내지 않지만 성미가 급한 사람은 자기의 어리석
음을 쉽게 나타낸다. 견문발검이란 앵앵거리는 모기에 노하여 칼을 휘두른다는
뜻이다. 새 대가리 같이 생각이 좁고 쓸데없는 일에 화를 잘 내는 사람을 풍자
한 말이다. 속이 좁은 사람은 사람을 후하게 대할 때 박하게 대하고, 인정을
베풀어야 할 때 베풀지 못하고, 자신의 형제나 부모까지 박하게 대한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 하지 않는다.
세익스피어는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아량이 적지도 않고 조그만 일에 불꽃같이 성질을 내지 않는다. 나의 이
빨은 나의 입술로 꼭 덮여 있기 때문이다.
작은 냄비가 빨리 뜨거워진다. (A little pot is soon hot.)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한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 수 있듯이, 무슨 일이나 그 일을 시행해 봐야 결과
를 알 수 있다.
무슨 일이나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하면 일이 이루어지나, 쉬운 일이라도 부
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안 될 거라는 약한 마음을 갖지 말아
야 한다.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해보면 자신의 능력에 놀라게 될 것이다.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자신감’을 높이 산다. 한국 사람은 ‘못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자체가 체면이 깎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단점이기도 하지만 장점으로 더 크게 작용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맨손에서 오늘과 같은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된 원동력이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이 산을
향해 ‘여기 저기로 옮겨 가라‘해도 그렇게 될 것이다. 너희에게 못 할 일이라
고는 하나도 없다“고 하여 우리에게 자신감을 갖고 행동하라고 하였다. 그러므
로 무슨 일이나 해보기도 전에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자신감을 잃지 말고, 목표
를 세워 하나 둘 실천하여 보자. 마라톤 선수는 전 코스를 달릴 때 처음부터 최
종 목표 지점까지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고 한다. 너무 힘이 들어 중간에 포기하
기가 쉽기 때문이다. 저기 저 지점까지 10km, 저기 큰 다리까지 20km, 저기 빌
딩까지 30km 등의 단계별 목표로 ‘거기까지만’하는 주법으로 달린다.
이렇듯 목표를 설정하되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을 정하고 나면 구체적으로 실
질적인 목표가 설정되어 일이 쉽게 이루어진다.
서경에는 ‘할 수 없다고 하지 말고 오직 마음을 다하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자신을 갖고 임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종교는 기적이 있어 난치병을 고치기도 하고 물 위로 걷기도 하고 폭풍우를
잠재울 수 있으며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내는 일은 기적이 없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일은 모두
진취적인 생각, 개척 정신, 열정적인 노력을 계속해서 쏟아부어야 이루어진다.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 안다. (You never know whatyou can do till you
try.)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부딪쳐 보자. 놀라운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경주와 싸움에서 이기는 법
세상 일을 보면 힘이 세다고 항상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고 잘 달린다고
해서 달리기 경주에서 항상 1등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역발산 기개세
힘과 기개가 세상에서 당할 사람이 없던 초나라 왕 항우, 그는 자기보다 힘이
강하지 못한 유방에게 해하 싸움에서 져서 오구란 곳까지 쫓겨가게 되었다. 강
건너는 자신의 고향인 강동 땅이었다. 향우는 자신의 애첩 우미인을 위해 마지
막 연회를 베풀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불렀다.
힘은 산을 뽑아낼 정도로 세고, 용기는 이 세상을 덮고도 남는데 때는 불리하
고 추는 달릴 일이 없구나. 추가 달릴 일이 없으니 너를 어이할거나. 내 사랑 우
야 우야 너를 또한 어찌 할거나. 추는 항우가 타던 얼룩빛 명마이다. 항우가 자
신의 죽음을 앞두고 자작시를 읊조리자. 우미인은 그의 노래에 맞추어 이 세상
마지막 춤을 추었다. 그녀는 항우의 노래가 끝나자 “천한 계집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하고는 항우의 보검으로 스스로 자신의 목을 찔러 죽었다.
항우는 고향에 돌아가서 재기의 기회를 노리라는 오구 면장의 간곡한 권유에
도 불구하고, “내가 이 강을 건너서 서정길에 올랐을 때 강동 출신의 귀여운
자제 8천명과 같이 왔는데 지금은 한 사람도 없다. 내가 강동에 무슨 낯으로 그
들의 부모를 볼 수 있겠는가? 하늘이 나를 버리시니 강 건너는 것을 그만 두겠
다“ 하였다. 그는 추격해 온 한나라 군대를 향해 쳐들어가 옥쇄 작전을 펴다
큰 부상을 입자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다윗과 골리앗
힘이 형편 없이 모자라서 질 게 뻔하다고 생각되던 사람이 상대를 거꾸러 뜨
린 경우, 으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견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영어권의
나라에서는 이 말이 지금 숙어화되어 ‘서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
a David and Goliath situation'을 사용하고 있다.
가드(Gath) 사람 골리앗은 키가 3미터나 되는 거인으로 놋으로 된 투구를 쓰
고, 57kg에 달하는 놋 갑옷을 입고, 다리에는 놋으로 만든 각반을 찼으며, 놋창
까지 들고 다녔다. ‘역발산 기개세’의 항우보다 힘이 더 세었던 모양이다.
그와 대항하는 다윗을 보자. 그는 혈색이 좋고 눈에 총기가 흐르며 하프를 잘
연주하던 소년으로, 전쟁이나 싸움을 모르는 양치기 목동이었을 뿐이었다.
이스라엘의 용맹한 장수 여럿이 골리앗에 의해 차례로 죽임을 당하자 사람들
은 누구나 그를 두려워 하였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다. 골리앗을 처치하겠다고
공언한 후, 그는 시냇가로 가서 매끄러운 돌 다섯개를 골라 담고, 양을 칠 때 사
용하는 지팡이와 물매만 기지고 골리앗을 향해 나갔다.
골리앗은 다윗을 보더니 “녜가 나를 개로 알고 막대기를 가지고 나왔느냐?”
하고 비웃었다. 골리앗이 다가오자 다윗은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집어 물매에
넣어 골리앗을 향해 날렸다. 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아꽂혔고 골리앗
은 땅에 쓰러졌다. 다윗은 넘어진 골리앗에게 뛰어가서 골리앗의 칼로 그의
목을 베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자만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며 사는 것이 좋다. 항
우와 골리앗처럼, 강하다고 해서 항상 싸움에 이기란 법 없고, 머리 좋다고 해서
시험에 항상 1등으로 합격하란 철칙은 없다.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고 새가 덫에
걸리듯 언제 불행을 당할지 우리는 그때를 알지 못한다. 우리를 기다리는 운명
이 사랑인지 미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빨리 달린다고 경주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며, 강하다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The race is not to the swift; nor the battle to the strong.)
아들과 딸
전통적인 남아선호 사상으로 인해 지금 우리나라의 초·중등학교에서는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의 성비불균형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여자 아이가 없이 남자
아이들만 있는 ‘홀아비 반’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이들이 자라서 결혼 적령기
에 이르면 사회생태학적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하다. 여자들이 턱없이 부족하므
로 짝을 찾지 못한 ‘홀아비’들이 터져나오는 욕구를 해결하려면 홀아비 여럿
이 한 여자를 공유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홀아비’를 ‘고
아수출’ 하듯이 외국에 수출하거나, 외국에서 ‘신부들’을 수입하는 방법 밖
에 없다.
일부일처가 아니라 다부일처의 사회가 될까 두렵다. 몽고 어느 지방에서는 형
제들이 한 여자를 마누라로 삼는 다부일처제가 있다고 하니까 말이다. ‘적은
것과 모자라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고르지 못한 것을 근심하라‘는 공자의 말씀
은 이런 사태를 우려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자. 딸 집에 간 부모는 비행기를 타고 오는데 아들 집에
간 부모는 버스비도 어렵게 타서 집에 온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서양에서도 아
들은 결혼 전까지만 아들 노릇하는 데 비해 딸은 일생동안 딸 노릇을 한다 하여
딸을 더 선호한다.
시드니 교민 사회의 소식에 따르면 장인과 장모를 초청한 집안은 오손도손 잘
사는데 비하여, 시부모를 초청한 집안은 서로 싸워 갈라서는 집안이 약 80% 이
상이라고 한다. 이렇게 ‘딸’이 아들보다 부모에게 잘해주고 부모 생각을 많이
해주는데 ‘아들 아들’ 타령을 하고, 병아리 성감별하듯 딸이면 낙태 수술을
한다니, 그런 사람의 머리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사회생
태학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남녀 차별이 바람직하지 않음은 분명하다.
아들 집에 가면 버스비 타기 힘들지만, 딸 집에 가면 비행기 타고 온다. (My
son is my son till he gets him a wife, but my daughter is my daughter all
the days of her life.)
훌륭한 사람 흠집내기
‘햇빛이 더러운 기름더미를 비추어도, 햇빛은 더러워지지 않는다.’
그리스 철인 디오게네스가 한 말이다. 그는 바르고 정직한 사람은 누구에게
중상모략을 당해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그
는 햇빛과 인연이 많은 사이었다.
알렉산더 대왕
그리스 철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기도 하였던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의
서양에 알려졌던 세계를 모두 다 정복한 임금이다. 그는 마케도니아의 임금으로
재임한 기간(336~323) 중에 벌인 전쟁마다 모두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20세에
즉위하여 선왕 필립의 유지를 받들어 기원전 333년 페르시아를 무너뜨렸고
332년에는 타이어를 정복하여 그 이름을 떨쳤다. 여세를 몰아 그는 이집트와 바
벨론을 정복하였고 인도원정(327~325 B.C)을 하여, 인더스강을 건너가 지금의 푼
잡 지방까지 정복하였다.
그는 오랜 전쟁으로 지친 군대의 건의에 따라 귀국하다가 바빌론에서 그 일생
을 마감하였는데, 그 때 그의 나이 33세였다. 그는 용기와 학식을 두루 갖춘 사
람으로 학문에 깊은 조예를 갖고 많은 철학자들과 교유하였다.
그가 어느날 시내를 행차하다가 길거리 모퉁이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디오
게네스를 보자 그의 앞에 가서 “디오게네스여, 소원이 있으면 무엇이나 다 들
어줄 터이니 말해주시오”하고 물었다. 자기가 정복한 나라의 반이라도 떼어달
라면 줄 생각으로 말이다.
디오게네스는 “현명한 대왕이시여. 현재 대왕께서는 따뜻한 햇빛을 가로막고
계십니다. 나의 소원은 제가 햇빛을 쬘 수 있도록 대왕께서 비켜주시는 것입니
다.“라고 말했다 한다.
로마의 시인 터틀리언은 ‘햇빛은 하수구까지 고르게 비추어 주어도 햇빛 자
신은 더러워지지 않는다’고하였다. 훌륭한 사람은 진흙 속에 있는 진주와 같아
서 주위 환경에도 오염되지 않으며, '군계일학‘처럼 금방 알아낼 수 있다는 뜻
이다.
훌륭한 사람은 언제나 자기 행위의 순수성과 동기에 대하여 떳떳하게 밝힌다.
따라서 꾸며대거나 거짓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또 어쩌다 저지른 실수
는 바로 시인한다. 그만큼 그릇이 커서 그의 권위는 훼손되지 않는다.
'사람이 비록 해와 달과 인연을 끊으려 해도 그것이 해와 달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공자는 말하였다. 우리가 해와 달을 보지 않으려 해도 불가능한
일인 것처럼 훌륭한 사람을 중상비방하여도 훌륭한 사람은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는다.
훌륭한 사람을 욕해봐야 그들은 아무론 해도 입지 않는다. (The sun loses
nothing by shining into a puddle.)
여자와 배
로마의 극작가 프라우투스(251~184 B.C)는 “누구든지 많은 걱정과 근심을 하
고 싶은 사람은 배나 여자를 소유하라”고 하였다. 그는 여자를 물건으로 취급
할 정도의 남성우월주의자였던 것 같다. 그는 여자와 배는 항상 문제를 일으키
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
그의 생각과 비슷한 동양의 옛말로는 ‘여자와 소인은 기르기 힘이 든다. 가
까이 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는 말이 서경에 있다. 그래서 여자와
소인은 너무 가까이도 또 너무 멀리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여자의 유래를 밝히는 성경 이야기를 보자.
하느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후 갈빗대 하나를 뽑아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든 후 아담에게 데려왔다. 아담은 그녀를 보자 이렇게 외쳤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여자
라 부르리라. 남자로부터 왔으니!”
이리하여 남자는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합쳐지고, 그 둘은 한 몸이 되었다고
한다.
프라우스트에게 충고하여 주고 싶은 말이다. 소가 없으면 외양간은 깨끗할지
모른다. 그러나 소의 힘이 아니면 어떻게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여자와 배가 없으면 걱정과 근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자와 배가 없으면 인류의 종족번식은 어떻게 하고, 바다는 무엇을 타
고 건너갈 것인가?
여자와 배는 항상 문제를 일으킨다. (A woman and a ship ever want
mending.)
그러므로 여자와 배는 항상 관심을 갖고 잘 다독거려 주고 고쳐 주어야 한다.
제비 한 마리와 여름
그리스 철학자이며 사상가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한마리 제비가 오거나, 하루
날씨가 화창하다 해서 봄이 온 것이 아니다“고 하면서 “제비 한 마리 봤다 해
서 겨울이 다 지나갔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다.
좋은 징조가 한 번 나타났다 해서 모든 일이 잘 됐다고 판단하지 말고 여러 주
위 증거를 종합하여 판단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푸라기를 하늘에 던져보면 바람부는 방향을 알 수 있고 서리가 오고
나면 얼음이 어는 겨울이 오듯이 세상일에는 조짐이 있게 마련이다.
예수는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씨가 좋겠다고 말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날씨가 좋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렇게 우리는 날씨를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는 알지 못한다.“고 마태복음에서 말했다.
우리는 빙산의 일각을 보고 빙산 전체를 알아내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서울의 카바레의 제비는 한마리가 나타나도 적색경보를 올려야 한다. 특히 무
도장에서 스텝을 밟아 밑바닥이 뜨거워져야 밥맛이 나고 살맛이 나면서 잠이 잘
오는 춤꾼 여자들은 호랑이 꼬리를 밟듯, 봄철 살얼음을 걷듯 조심하여야 한다.
그런데 ‘춤꾼’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다. 이러한 위험부담까지 감수
하면서 꼭 춤을 춰야 직성이 풀리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이러한 ‘스릴’ 때문
에 죽기 아니면 살기로 달려들겠지만 말이다. 요사이 이러한 ‘제비’에 대항하
기 위해서 ‘꽃뱀’이 카바레에서 ‘먹이감’을 찾고 있다 한다. 특히 춤
좋아하는 ‘남자 제비’들이여, ‘통째’로 먹히지 않으려면 조심하기 바란다.
뱀은 먹이를 뜯어먹지 않고 ‘통째’로 삼키기 때문이다.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여름이 된 것이 아니다. (One swallow does not make
a summer.) 제비는 철새로서 4월인 봄에 영국에 왔다가 9월인 가을에는 남쪽
으로 간다. 그러므로 여름보다 봄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2. 행동의 방향을 밝히는 충고
밤새도록 곡하고 나서 누가 죽었냐고 물어본다
한국에 대형사고가 나면 관련부서나 장관이 실무자에게 책임을 묻고 새 사람
으로 바꾸어 버린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책임이 있는 현직 장관이 사고 뒷처리
를 하여 수습하게 하고 일이 정상화가 된 후 장관을 바꾼다.
복수하는 방법
사람들은 남에게서 은혜를 입으면 곧 갚으려 하지 않지만 피해는 아무리 사소
한 것이라도 바로 복수를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작가 호머는 일리어드에서 ‘복수는 달다’고 하였다.
그는 그 당시 ‘깨소금’은 없고 꿀만 있어서인지 ‘복수를 하면 사람 마음 속
에 꿀샘이 넘쳐 흐르는 것 같다’고 하였다.
하지만 ‘복수는 음식을 식혀서 먹듯이 시간이 지난 후에 하는 것이 현명하다
’는 말도 있다. 천천히 생각해 보란 이야기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격한 감정은
가라앉고 이성이 지배하므로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옛날 우리 선조들
은 자식이나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자식이나
학생에게 체벌을 가할 때 반드시 자식이나 학생 자신에게 회초리를 갖고 오도록
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이다.
존 밀튼(1608~1674)은 <실락원>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복수는 처음에는 깨소금같이 고소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쓴 물로 다시 되돌
려 받는다.
피는 피를 부르듯이 복수는 복수를 부르므로 이러한 악순환을 방지하는 방법
은 용서밖에 없다.
‘네 원수가 굶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
러면 너의 원수는 머리에 숯불을 올려 놓는 것같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을 것이
고 너는 하느님에게 상을 받을 것이다‘고 하였고, 네 자신이 직접 복수하겠다
’는 생각을 버리고, 하느님이 그 일을 처리할 때까지 기다려라‘고 성경은
말하였다. 원한은 올바름과 덕으로 갚으라고 하였다. 노여움이 크더라도 남에게
그것을 풀지 않는 사람이 되자.
복수는 천천히 하는 것이 좋다. (Revenge is a dish that can be eaten cold.)
도망가기
누구나 싸워서 이기는 것을 좋아한다. 겁쟁이라는 말을 듣기보다 용감한 사이
라는 말을 더 듣고 싶어한다. 하지만 싸우다 힘이 부치면 ‘겁쟁이’ 소리를 듣
더라도 줄행랑을 놓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스 작가 메난더가 “도망치는 사람만이 훗날 다시 싸움을 도모할 수 있
다.’라고 말한 것은, 용감한 것이 비겁한 것보다 훨씬 좋지만 신중함이 무모하
고 경솔한 것보다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분하고 억울하더라도 이
성을 잃지 말고 냉정히 행동하여야 한다.
싸우다 질 것 같으면 무조건 삼십육계 줄행랑을 쳐라. 버마제비가 제 분수도
모르고 수레바퀴와 대결하다 죽는 ‘당랑거철’의 만용을 부리다가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와신상담
중국 오나라 왕 합려는 월나라를 공격하다가 부상을 당하여 죽게 되었다. 그
는 아들 부차를 불러 복수할 것을 명령하고 죽었다.
와신이란 말은 부차가 오나라로 돌아와 월나라를 쳐서 없앨 때까지 섶나무 위
에 누어잤다 해서 생겨난 말이다. 부차는 절치부심 힘을 길러 월나라 구천의 군
대를 대파하고 구천의 항복을 받아냈다.
오왕 부차로부터 갖은 수모를 당한 구천도 가만 있지 않았다. 그는 ‘쓸개’
를 옆에 두고 쓸개를 핥으면서 12년 동안 절치부심하였고, 마침내 힘을 길러 오
왕 부차에게 복수를 하였다. 상담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오왕 부차난 월왕
구천이 패배 당시 무모하게 맞부딪쳤더라면 ‘와신상담’이라는 말도
생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아무것도 이루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한신 장군
한신은 소년 시절 의지할 데 없는 고아로 가난 때문에 불우한 세월을 보냈다.
그가 어려울 때 마을의 건달 하나가 시장 바닥에서 한신에게 싸움을 걸었다.
건달은 “야 이놈아 몸뚱이만 커가지고, 칼을 차고 있으면 다냐, 속은 겁쟁이
면서”하며 모욕을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이놈아 용기가 있으면 나를 찔러봐. 그럴 용기가 없으면
내 가랑이 아래로 기어가라.”고 놀려댔다. 한신이 그를 한참 쳐다보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엎드려 그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갔다. 온 시장 사람들은 그를 겁쟁
이라고 비웃었다.
후에 한신은 한고조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한나라 최고 장군이 되어 고향에 금의환향하였다.
옛날에 그에게 모욕을 주었던 건달은 한신이 온다는 소식을 듣자 ‘겨울 삭풍
에 사시나무 떨듯’떨면서 목만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가 한신 장군 앞에 끌려
왔다.
한신은 “내가 그때 너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너를 죽이면 내가 살인자가 되
어 도망다녀야 하므로 내가 이루려는 꿈을 못 이루기 때문에 참았다“고 말하며
”수치를 안고 치욕을 참아야만이 큰 일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신
은 벌을 받을까봐 떨고 있는 그를 안심시킨 후 동네 치안을 담당하는 직책에
임명하였다.
손자병법에 이르길 ‘적의 실력을 알아낸 후에 진격하고, 이길 자신이 확실
할 때 회전한다. 이기지 못할 상대에게는 이길 것 같이 대들면서 즉각 물러나야
만이 후일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맹자 역시“적의힘을 헤아려 본 후에
싸운다“고 하였다.
싸우다 힘이 모자라면 젖 먹던 힘을 다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날쌔게
도망가라. 지지부진한 사업도 안 될 것 같으면 빨리 정리하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물귀신 작전에 글려들어 수렁에 점점 더 깊이 빠질
이유가 없다.
싸우다 힘이 딸리면 도망가라. 그래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He who figths
and runs away, may live to fight another day.)
사람을 따를까, 진리를 따를까
의법불의인이란 말이 있다. 사이비 목사의 허황된 사기 행각을 보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예수의 구원의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다든지, 스님들이 사찰에서 각
목으로 난장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그들이 설법하는 대자대비한 부처님
의 진리까지 버리지는 말라는 말이다.
진리를 전하는 사람의 인간적인 약점이나 잘못을 보고 이에 실망하였다고 해
서 그 사람이 전하는 진리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말이겠다.
신흥 종교나 유사 종교가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가장 큰 까닭은 종교 진리 체
를 믿고 따르기보다 전하는 사람(교주)에 대한 광신적인 믿음 때문이다.
예수는 유태의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유태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나 따르고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본
받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하지 실천하지 않는다.“ 전하는 진리 자체에 의존해야
지 전하는 사람의 위선적인 행위에 큰 의미를 두지 말라는 말이다.
자식에게 아침 일찍 일어나라고 하면서 자신은 자식보다 더 늦게 일어나면 자
식이 그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듣는 대로 행하라’는 뜻으로
“아비 행동은 따르지 말고 아비가 하는 말은 진리이니 따르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낫다. 솔선수범보다는 못하지만 말이다.
사람을 따르지 말고 진리를 따르라. (Do as I say, not as I do.)
말을 바꿔 타기
1864년 미국의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의 일이다. 링컨 대통령의 전쟁 수행 방
법에 불만이 많던 인사들이 그의 퇴진을 요구하였다.
링컨은 스스로도 자신이 대통령직에 적합한 인사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하
지만 그는 공객석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여 반대파의 입을 막았다고 한다.
“저는 여러분께 어느 네덜란드인 농부가 그의 동료에게 충고해준 대로, ‘강
을 건너는 도중에는 말을 바꾸어 나는 것이 현명하지 못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대형사고가 나면 관련 부서의 장관이나 실무자에게 책임을 묻고 새
사람으로 바꾸어 버린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책임이 있는 현직 장관이 사고 뒷
처리를 하여 수습하게 하고 일이 정상화된 후 장관을 바꾼다. 강 가운데서 말을
바꾸어 타는 것이 불리하다.
강 가운데서는 말을 바꾸어 타지 말라. (Don't change horses in midstream.)
말을 타고 가다 다른 말로 바꿔 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람과 말이 조화
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 가운데서 타고 가던 말을 버리고 다른 말로 갈아탄다는 것은 더욱 어
렵다. 그러므로 변화가 필요할 때 조금 힘이 들더라도 일을 그대로 진행시킨 후
적당한 시간을 택해 그 일을 시행하는 것이 좋다.
목수의 변명
‘훌륭한 일꾼은 그가 맡은 일을 잘 해내기 위하여 먼저 사용할 연장을 잘 손
질하는 사람이다’라고 논어는 말한다. 성경 전 도서에도 ‘도끼 날을 갈지 않
아 날이 무디면 그만큼 힘이 더 든다’고 하였다.
도끼날을 날카롭게 갈 듯이 연장을 잘 준비하여 두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
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하여 앞길을 망치고도 하느님을 탓한다
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서투른 기술자는 자신의 능력은 생각치 않고 연장 탓만 하고, 또 무능하고 게
으른 사람들이 주위 환경만 탓하는 법이다. 무당이 장구탓만 해서는 영험이 늘
지 않듯, 기술이 부족한 자가 자기 기술의 미숙함을 반성하지 않고 도구만 나쁘
다고 해서는 아무런 진전이 없다.
훌륭한 기술자는 일이 잘못되면 그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사람이다. 그래야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다. 그래서 논어는 ‘훌륭한 기술자는 자신의 잘
못은 따지지만 남의 잘못에는 관대하다’고 한다.
무엇이 안되면 ‘조상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 탓’으로 돌리자.
서투른 목수 연장 탓만 한다. (A bad workman always blames his tools.)
참고 기다리는 사람
불가의 고해라는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인생은 험난하다. 세상살이는 험
한 산길을 가고 위험한 계곡을 건너는 것 같아 참고 견디는 인내심이 없으면 이
겨내기 힘이 든다고 채근담은 말한다. 아울러 성경에 이르길, 인생은 전쟁을 하
는 것과 같아 어수선하고, 사는 날이 품팔이꾼의 생활과 같고, 종살이하는
사람이 해가 져서 쉬기만을 기다리며 일하는 것과 같고, 품팔이꾼이 품삯을 기
다리듯이 고통을 받으면서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다.
인생살이가 이러하니,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들더라도 참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맹자는 ‘장차 큰 일을 맡기려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먼저 그 마음을 괴롭히고
곤궁하게 하고 육신을 괴롭혀서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게 한다‘고 하였다.
그는 사람의 덕행이나 재지는 언제나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 단련된다고 하였
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사람은 결국 그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어려움
이 닥쳐 왔을 때 쉽게 절망하여 자포자기하지 말고 반드시 이루어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 시인 롱팰로우(1807~1882)는 ‘참
고 기다리는 사람만이 큰 일을 이루어낼 수 있나니’라고 읊었다.
참고 기다리는 자만이 큰 일을 할 수 있다. (All things come to those who
wait.)
위선
슬픈 일을 당했다고 동네가 떠나갈 듯이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가슴을 치는
사람들도 정작 그 슬픔이 깊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밤새도록 슬프게 울고 나서
누가 죽었냐고 물어보는 식으로, 남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진실
성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몸가짐은 예를 갖추나 마음
가짐은 다를 때 위선이 나온다. 조선시대의 곡쟁이같이 남을 대신하여 곡하는
위선적인 행동을 하지 말고, 진심을 보여야 한다.
그래서 ‘너희는 금식할 때 위선자처럼 슬픈 표정을 짓지 말라. 그들은 금식
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일부러 슬픈 표정을 짓는다.‘고 마태복음은
말한다.
진실한 것은 있는 그대로 보이면 된다. 또 솔직하고 정직하면 된다. 곤란한 일
에 부딪쳤을 때 구차스럽게 변명하거나 속이지 말자. 개구리같이 헛배를 불리다
가 배가 터져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위대한 기독교인이 있었다. 그는 매일 4시에 일어나 네다섯 시간 동안 기도하
면서 찬송을 했다. 수십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하였기 때문에 사람들
은 누구나 그를 기독교인의 모범이 된다고 하였다.
마침내 하느님도 그의 성심성의에 감화 감동을 했다. 어느날 하느님이 그 위
대한 기독교인의 뒤로 가서 기도하고 있는 그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축
복해주기 위해서였다. 기도를 하고 있던 그가 번쩍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당신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이요. 내가 성심성의로 기도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소. 지금 이 신성한 시간에 꼭 나를 방해해야겠소?”
하느님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자주 일어나고 있다.
밤이 새도록 곡하고 누가 죽었냐고 물어본다. (Abellowing cow soon forgets
her calf.)
진실과 회개
진실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끝내 밝혀지는 완고함을 지녔다. 남은 속일 수 있
어도 자신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영원히 숨길 수 없다. 그래서 성경
의 마태복음에는 ‘감추어진 일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겨진 일이 알려지
지 않을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진실은 하나다. 허위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은
완고하다. 절대로 허위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다.
중용은 ‘숨겨진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작은 것보다 더 잘 나타
나는 것이 없다’고 하여 은밀히 숨기려는 비밀도 곧 알려지게 된다고 하였다.
솔로몬도 진실은 영원히 살아 있지만 거짓은 그 수명이 매우 짧다고 하였다.
한국의 정치상황을 보자. 많은 거짓말들이 진실을 왜곡하고, 정의를 파괴하고,
민중을 유린하고, 역사를 훼손하였지만 거짓말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고 진
실이 다시 나타나지 않았는가?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진실은 곧 밝혀지기 마련이다. 살인자
도 곧 밝혀진다.”고 하였다.
‘너희가 진리를 알게 되면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요한
복음의 말처럼, 모른다고 거짓을 말하지 말고 진실을 말하면 마음에 평화가 찾
아온다.
회개하고 용서를 받자
자신의 죄와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면 반 이상이나 고쳐진 것이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뉘우치면 바로 그 순간이 선한 순간이 된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다.
예수 앞에 유태인들이 간음한 여자를 데리고 왔다. 유태법으로 간음하는 여자
는 돌로 쳐서 죽이는 형벌을 받는다. 예수는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 가운데 죄없는 자가 먼저 이 여자를 돌로 쳐라.”
몰려든 군중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남의 죄만 떠들어대는 자신의 잘못을 뉘
우쳤다. 사람들이 다 가버리자 여자와 예수만 남았다.
예수는 “가서 다시 죄를 짓지 말라.” 하였다.
죄는 뉘우치기만 하면 죄업이 사라진다. 마음속의 걱정과 근심도 고백하면 마
음의 평안을 얻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가 ‘여자’에게 말했듯이
다시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Facts are stuborn things.)
정직
논어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정직하다고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를 지키지 못하고, 지나친 욕망에 따라 그릇된 일을 저지른다. 정당하고 올바
른 방법으로 하는 것이 일을 이루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정직은 도덕적 만족을 줄 뿐 아니라 돈이 적게 들기 때문에 경제적이다. 부정
직한 방법을 쓰면 잠시 동안은 이익이 되는 것 같아도, 장기적 입장에서 보면
정직만이 큰 이익을 준다.
클리브랜드 대통령
1884년 미국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일 때의 일이다. 민주당 클리브랜드 후보에
게 열살난 사생아가 있다는비밀이 드러났다. 그의 선거 참모들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라고 권고했다. ‘깨끗한 정치’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그에게 그런
스캔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클리브랜드 후보
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면서, 자신은 지난날 어떤 과부와 관계를 가져 그 사이에
아이가 하나 있으며 그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아이의 양육비 등을 대어왔다고
하나도 숨김 없이 말했다.
공화당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공격거리가 없었다. 그에 대한 각종 소문을
만들어내면서 그를 공격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유권자들은 거짓말하지 않은 정직한 지도자를 택한 것이다.
‘정직한 대답은 감미로운 입맞춤과 같다’고 성경은 전한다. 그러나 이 세상
에는 잘못된 것이 너무 많다. 법정에서도 거짓이 통하고 반드시 정의가 실현되
어야 하는 곳에 불의가 있다. 또 악인이 잘 되고 잘 사는 경우도 있다.
‘하느님은 죄인을 즉시 벌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담대
하다’고 전도서는 전한다.
하지만 ‘하느님은 흠 없고 정직한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또 악한 자도 도와주
지 않는다’고 성경 욥기는 전하고 있다. 악한 자, 거짓이 많은 자는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고 새가 덫에 걸리듯 걸려들기 마련이지만, 정직한 사람은 모든 환
란에서 벗어난다고 하였다.
정직은 인생을 살아가는 최상의 방법이다. 곤란한 일에 부딪치면 구차스럽게
변명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말고 당당하게 사실을 말하고 대처해야 한다.
정직이 제일이다. (Honesty is the best policy.)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이롭다고 여길 때만 정직을 지킨다. 그렇지 않을
때는 거침없이 정직의 탈을 벗는다고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자신을 알기
‘너 자신을 알라.’
그리스 델파이의 아폴로 신전에 새겨져 있던 말이다.
‘인간이여 너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아라. 모든 지혜는 그곳에서 나온다’에
서 연원한 이 말은 아테네에 민주주의 기초를 세운 정치가 사론(B.C 6세기)이
처음 사용한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사용하여,“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외에는 없다.”고도 하였다. 영국 소설가 로렌스는 <마지막 시>에서 ‘우리는
우리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에야‘너 자신을 알라’란 격언
의 굴레를 벗어났다‘고 하였다.
무본지학
유학은 인간의 근본을 파악해가는 학문이다. ‘근본이 서게 되면 나아갈 길이
저절로 생긴다’라는 논어의 말은 겉모양이나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근본을 파
악하라는 가르침이 담겼다.
논어에 의하면 인간의 근본을 파악하여 가는 방법으로 ‘마음을 경건히 하여
자기를 갈고 닦고’, ‘나를 다스려 사람을 편하게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나를 닦는 것은 자신의 근본을 알고 자기를 다스리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파
악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가족을 사랑할 수 있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고 국가를
사랑할 수 있고 세계를 사랑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너 자신을 갈고 닦아라’는 말과 같다.
너 자신을 알라. (Know yourself.)
심판
마태복음 제7장에 나오는 말이다.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라. 너희가 남을 판단하는
만큼 너희도 판단을 받을 것이며 저울질하는 것만큼 너도 저울질을 받을 것이
다. 너는 왜 형제의 눈 속의 니튼 보면서 네 눈 속의 기둥은 보지 못하느냐?’
대부분의 한국 성서번역은 ‘심판(판단)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판단)하
지 말라는 말이다.
하느님은 불완전한 인간이 다른 불완전한 인간을 판단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금하고 있다. 왜냐하면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만져본 부위만 진실이라고 믿
는 군맹평상의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직 나를 판단하는 이는 주님이다. 그러므로 최후 심
판 날까지 판단하지 말고 주님이 오기를 기다리자“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
이제부터 서로 비판하지 맙시다“라고 하였다.
공자는 논어에서 ‘어진 이를 보면 그와 같아지도록 노력하고 어질지 못한 사
람을 보면 자신을 그 사람에 비추어 반성하여라‘로 하면서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사람을 탓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는 ’오직 자신을 꾸짖기를 엄하게 하
라‘고 하며 자신을 냉철하게 반성하고 판단하라고 하였다.
현명한 성인의 생각은 시공을 뛰어넘어 한결같고, 지혜로운 사람은 보는 바가
대체로 같다.
하느님께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라. (Judge not, that you
be not judged.)
일이 꼬이고 꼬여 가더라도...
랍비 한 사람이 당나귀와 개를 데리고 작은 램프만을 지닌 채 여행을 떠났다.
날이 어두워지자 그는 외딴 오두막을 한 채 발견하여 그곳에 머무르기도 하였
다. 아직 잠잘 시간이 되지 않아 랍비는 램프에 불을 켜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 기름이 떨어져 불이 꺼지자 할 수 없이 잠을 청했다.
캄캄해지자, 이때다 싶었는지 이리떼들이 몰려와서 마당에 있던 개를 물려 죽
였다. 마음이 상해 있는 랍비에게 이번에는 사자가 나타나서 당나귀마저 물고
어디론가 가져가 버렸다. 겁먹고 흥분한 랍비는 당장에라도 이웃 마을로 내달려
가서 도움을 청할까도 생각했으나, 날도 어둡고 타고 갈 당나귀도 없고해서
정신을 가다듬은 후 그냥 잠을 자기로 했다.
아침이 되자 그는 빈 램프만 가지고 터벅터벅 마을로 향했다. 마을은 아수라
장이 되어 있었다. 전날 밤 흉악한 도적떼들이 쳐들어와 마을을 파괴하고 사람
들까지 죽였던 것이다. 만약 램프가 꺼지지 않았다면 그도 도적떼에게 발견되어
황천에 갔을 것이다. 개가 살아있었다면 개짖는 소리에 도적에게 발견되었을
것이다. 당나귀가 사자에게 물려죽지 않았다면 당나귀를 타고 마을에 갔을 것이
고, 그러면 그도 도적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가지고 있던 것들을 모두 잃은
덕택에 우주보다 소중한 생명을 보전할 수 있었다.
인간은 최악의 상태에서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항
상 연결되어 있다. ‘불행은 성공의 전단계‘이며 위기는 기회인 것이다. 그러므
로, 무슨 일이든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성심성의껏 해보자. 절대로 손해나는
일이 없다. 비록 그일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얻은 것이 있게 마련이다.
‘마음으로 정성껏 구하고 열심히 하면 비록 과녁은 맞추지 못하더라도 그곳
에 더 가깝게 이르게 된다’고 대학에서 이르듯이, 성심성의로 하는 일에는 손
해가 없다.
맹자가 ‘성실은 하늘의 도리이고, 성실해지려는 생각은 사람의 도리이다’고
하였듯이 성심성의로 하는 일은 실패가 되더라도 전화위복이 된다.
성심성의로 하는 일에 손해가 없다. (There is no great without some gain.)
구더기와 장
시험에 떨어질 것이 두려워 시험을 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실패할 것이 두려
워 신중에 신중을 기하면서 머뭇거리는 사람은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다.
신중한 것도 좋지만, 과감하게 시행하면서 잘못이 있으면 고쳐가는 것이 훨씰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외국에 이민 간 사람들 중 서투른 영어를 하다 창피를 당하면 어떨까 하는 걱정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어린이들은 말 한마디 못해도 친구를 사귀고 빨리 배운다. 애들보다
더 나은 영어실력을 가진 부모들은 ‘집어던져도 개도 쳐다보지 않을 체면’ 때
문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지내다 십 년 아니 이십 년이 지나도 영어를 못
하고 더듬거린다. 혼자 있으면 그런대로 꾸려가는데 누가 옆에서 지켜보면 그만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남의 눈을 의식하여 잘못을 저지르면 어쩌나 하는 마음
때문이다.‘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어리석은 짓이다.
외국인이 유창하게 한국말을 할 수 없듯이 한국 사람이 영어를 유창히 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고 싶은 말을 당당히 하면 좀 실
수를 하더라도 빨리 영어룰 배우게 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준비는 신중히 하고 일은 과감히 처리하자. 일을
당해서 우물쭈물하지 않고바로 시행하는 것도 용기 있는 일이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하지 말라. (If you don't make mistakes, you
don't make anything.)
곶감 먹기
곶감은 맛이 달아서 입맛에 당기지만 많이 먹으면 변비 증세를 일으킨다. 대
장에서 수분을 많이 빨아들이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사가 나면 홍
시감이나 곶감을 먹기도 한다.
단 곶감 많이 먹다 변비 걸리고, ‘언 발에 오줌 누기’식으로 눈앞의 조그만
이익만을 즐기다가 큰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지각 없는 젊은이
한 젊은이가 길 모퉁이를 돌아가다가 예쁘게 차려 입은 여인과 마주쳤다. 여
인이 교태가 흐르는 몸놀림으로 다가와서는 입을 맞추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 정말 꼭 들어맞았네요. 간밤에 당신을 만나는 꿈을 꾸었거든요. 어서
제 집으로 들어가요. 남편은 먼 곳으로 여행가서 보름 후에 온답니다.“
청년은 잠시 망설였으나 달콤하고 짜릿한 쾌락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하
지만 그 결과, 일정을 당겨 돌아 온 여자 남편이 휘두른 칼에 맞아 비참히 죽고
말았다.
‘ 방탕한 여인의 입술은 꿀보다 달고 그 말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에
양날이 선 칼에 찔린 듯한 쓰라림과 고통만 남는다‘고 성경은 말한다. 불을 품
으면 옷을 태우고, 숯불을 밟으면 발을 데듯, 잠시의 쾌락은 큰 피해를 낳는 경
우가 많다.
추운 겨울날 땔감이 없다고 문짝을 뜯어 불태우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자.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 (Please your eye and plague your heart.)
중 머리깎기
중이 제 머리를 깎을 수 없고, 다른 사람 수술은 잘 하는 의사도 자기 몸 수
술은 못한다. 자신의 허물을 스스로 알아서 고치기는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
그 까닭은 이러하다. 사람들은 남의 잘못에는 한없이 엄격하나, 자신에게는 한
없이 관대하다. 주기도문에 ‘내가 지은 죄를 내가 용서해주듯이 용서하여 주사
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도 이런 연유이다.
하지만 남의 스승이 되고자 하고 남에게 충고를 하자면 자신의 수양이 앞서야
한다. 성경은 ‘사람이 망하려면 먼저 교만해지고, 존경받는 사람은 먼저 겸손해
진다.’고 하였고, 맹자는 ‘존경받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엄격히 하며 남에게는
관대하게 대해야 한다’고 하였다.
거듭 말하건대 중병에 걸린 자여! 자신의 병부터 고치고 나의 병에 대하여 이
야기하는 것이 좋다. 제 도끼 자루를 찍을 수 없는 도끼가 되지 말고, 자기 죽는
날도 모르면서 남 죽을 날을 말하는 점쟁이가 되지 말아야 한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 (Physician heal yourself.)
‘의사여, 너의 병이나 고쳐라.’ 예수가 한 말이다.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
기 전에 자신의 잘못이나 허물을 고치라는 뜻이다.
희생
달걀 껍질은 얇고 힘이 없다. 조금만 굴려도 금방 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알 속에서 자라난 생명에게는 그 껍질같이 두꺼운 것이 없다. 껍질을 깨고 나오
는 힘과 그때 느끼는 고통이 없으면, 병아리가 태어나지 못한다. 많은 시간과 노
력 그리고 고통이 따름은 물론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때 산모가 겪어야 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죽하면 산욕이나 산고라고 표현할까. 서양에서는 이를 노
고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산모가 아이를 낳을때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그런데 호주에서는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오도록 권장한다.
첫째 이유는 산모에게 정신적인 안정을 주기 위해서이고, 둘째로느 여자들이
겪는 고통이나 희생을 남편이 지켜봄으로써 아내의 고통을 분담한다는 측면도
있으며, 셋째로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게 한 남편이 분만 과정을 지켜보고 아
버지로서 책임감을 더 느끼게 되기 때문이라 한다.
한국에서도 남편이 입회할 수 있게 제도를 바꾸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아이를
낳을 때 입회한 남편의 대부분이 출산 후에 부인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더욱 크게 느낀다는 호주 학회의 조사 보고서가 나와 있기 때문
이다.
껍질을 깨고 나올 때의 아픔 없이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수 없듯, 무슨 일
이나 고통이나 희생이 따르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고없이 이루어지는
일이란 아무데도 없다.
희생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You can't make an omelette without breaking eggs.)
생각 두번 하기
그리스의 유리피데스는 “두 번째 생각이 첫 번 생각보다 더 현명하다”고 하
며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을 그대로 시행에 옮기느니보다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생각을 가다듬지 않고 감정이 내키는 대로 곧바로 행하는 것은 야만스러운
일이다’고 예기는 전한다. 또 길거리에서 들은 말을 길거리에서 이야기하면 덕
을 버린다고 한다. 무슨 일이나 깊이 생각할수록 실수가 적은 법이다. 그러나 너
무 깊이 생각만 하는 것도 좋지 않다. 사기는 ‘아무리 현명한 사람도 너무 깊
이 생각하면 실수할 수 있다‘고 하였고 천려일실이란 말이 여기서 연원하였다.
그러므로 두 번 정도면 좋다는 논어의 말에 따라 재고를 하여 보고 시행하는 것
이 좋다.
중국 당나라 시인 가도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새는 연못가지 위에서 졸고,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드려 연다.
그는 시를 짓고서 문을 두드린다로 하느냐, 만다로 하느냐를 골똘히 생각하며
가다 도읍장 한유의 행차길을 막아, 그 죄로 그 앞으로 끌려 갔다.
전후 사정을 들은 한유는 두번 생각하고는 민다보다 두드린다가 더 좋다고 조
언해 주었다. 원고를 다듬는다는 뜻의 퇴고란 말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필자도 새까지 잠든 산사가 너무 조용하므로 파격의 아름다움을 주기 위해 정
적을 깨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더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다.
가도처럼 여러번 깊게 생각하기보다 한유와 같이 두번만에 명쾌한 답을 내리
는 것이 좋다.
두번 생각하는 것이 좋다. (Second thoughts are best.)
스승과 제자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1595~1650)는 ‘담쟁이 넝쿨은 그 버팀대보다 높아지
지 못한다’는 표현으로‘비평가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들이 비평하는 작가의 능
력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하였다. ‘제자가 스승보다 높지 못하고, 종이 주인
보다 높지 못하다‘는 예수의 말씀처럼. 이와 달리 순자는 권학편에서‘푸름은
쪽에서 취하였지만 쪽보다 푸르고, 얼음은 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물보다 차다
‘고 하여 제자가 열심히 노력하면 오히려 스승보다 훌륭해 질 수 있다고 하였
다.
그래서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남을 ‘청출어람 이어람’이라고 표현한다.
공자의 제자 안연은 공자를 평하길 “우러러보면 더욱 높고, 들으려 하면 더
욱 좋으시다‘고 하여 자신이 스승의 뛰어남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공자는 ‘뒤따라오는 젊은이들이 두렵다’고 하면서 젊은이들이 열심히 하면 무
한한 가능성을 갖는다고 말했다.
스승이 훌륭하면 흘륭할수록 제자가 그를 능가하기가 힘이 든다. 그것은 시냇
물이 그 원천보다 높아질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그러나 예수는 ‘학생이 선생보
다 낫다고 할 수 없으나 완전히 다 배우고 나면 그때는 선생과 같이 될 것이다
‘고 하였다. 열심히 노력하여 스승과 같이 되도록 노력하자.
스승보다 나은 제자 없다. ( A stream cannot rise above its sources.)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므로 시냇물은 그 원천이 되는 샘물보다
높은 곳에 있을 수 없다. 비록 노자가 강과 바다가 모든 계곡의 왕자가 될 수
있는 것은 항상 낮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지만 말이다.
3. 제대로 된 가르침은 삶을 바꾼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반듯한 널판지에 휘어진 널판지를 얹으면 휘어진 널판지가 반듯해진다고 논어
는 말한다. 아이들의 버릇을 들일 때는 어른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아비만한 자식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의 자식치고 그 부모만큼 훌륭한 아들, 딸들은 많지
않다고 한다. 소나무나 잣나무 아래서는 풀이 번식하지 못하듯이 큰 부모의 그
늘에 가려 자식들이 기를 펴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훌륭한 지위와 사회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자식 중
에 부모의 인품이나 인격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하다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훌륭한 아버지가 불철주야 노력하여 만들어 준 재산을 ‘서로 더 많이 먹겠다
’고 형제간데 이전투구하는 사람이나, 또 아버지는 ‘칼국수’로만 식사를 하
는데 아들은 ‘룸살롱’을 헤매고 다니면서 하룻밤에 천만원을 쓴 사람이 그러
하다.
자식 겉 낳지 속은 못 낳는다고 한다. 특히 서양에서는 성직자의 자식 중에
‘망나니’들이 많이 나왔던 모양이다. 아마도 부모에게 너무나 많은 종교적 스
트레스를 받고 자랐기 때문인 것 같다.
동양에서는 자식이 부모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불초’라고 한다. 부모를 닮
지 않아 어리석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초들은 중국의 훌륭한 임금의 대
명사로 쓰이는 요나 순 임금에게도 있었다.
요 임금에게는 단주라는 어리석은 아들이 있었고 순 임금에겐 상균이라는 불
초가 있었다. 이들 단주나 상균은 자기 겸사를 위한 불초가 아니라 진짜 ‘망나
니’로서, 부모의 속을 태운 못난 자식들이었다.
공자의 아들 백어는 “당신은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가르침을 받았느냐?”는
물음에, “달리 배운 바가 없다“고 답하였다 한다.
‘재주가 있건 없건 부모는 항상 제 자식이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라고 말한 공자가 자기 자식에게 무관심했던 게 아니라, 그는 자식마저도 편
애하지 않는 엄격한 도덕주의였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아울러 아무리 훌륭한 성현이라도 자식을 올바로 키우기가 힘이 든다는 것을 반
증한다.
맹자는 ‘자식의 잘나고 못남은 다 하늘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자식에게 잘
되라고 강요하거나 호통만 치지 말고 부모가 솔선수범하여 자식이 자연히 따르
게 하라는 말이다.
호부견자
‘호랑이 아비에 개 아들’란 말이 있다. 아버지는 큰 인물인데 아들이 아버
지가 이루어놓은 업적을 받들어 계승하지 못 한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
데 대부분의 부모는 ‘개 아비라도 호랑이 자식’을원한다. 그래서 자식이 잘
되게 하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하지만 자식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자식은 부모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아비만한 자식이 없기 때문이다. 훌륭
한 자식을 키워내려면 부모의 끊임없는 솔선수범이 앞서야 한다.
아비만한 자식은 없다(Ciergymen's sons always turn out badly.)
맨손으로 시작하여 세계적인 대재벌을 이루고 죽은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
다 한다.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은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었지만 딱 두가지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골프공을 마음먹은 방향으로 쳐내는 것과 자식을 내
뜻대로 키우는 것’이 그것이다.”
세 살 버릇
어린아리 때 형성된 습관은 그 사람의 일생을 좌우한다. 그 때 버릇이 나쁘게
들면 어른이 되서도 고치기 힘이 들기 때문이다. <실락원>과 <복락원>의 작가
밀턴(1608~1674년)은 “아침에 그날의 날씨를 알아 볼 수 있듯이 어린 시절을
보면 그 사람의 장래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잘 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노자는 “하늘의 원기를 두텁게 받은 인간의 모습은 욕심없는 갓난아이와 같
다. 성인이란 알고 보면 갓난아이처럼 순수하고 소박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맹자도 “훌륭한 사람은 어릴 때의 순수한 마음을잃지 않는 사람이다.“ 라고
하였다. 어른이 되면 어릴 때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니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수 역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나니, 너희가 변화되어 어린아이와 같
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인격 형성은 어릴 때 하여야 한다. 그릇을 만들 때 초기에 모양을 잘 만들고
불로 충분히 구워내야 완전한 형태를 이루듯이 어릴 때에 좋은 성격을 형성하도
록 부모들이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1688~1744년)도 어렸을 적의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고 강조하였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백지에 글을 쓰는 것과 같고, 노인을
가르치는 것은 이미 쓰여진 종이의 여백에 글을 써 넣는 것과 같다. 어릴 때 교
육을 단단히 시키고 나쁜 버릇이 들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어린아이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라. 그러면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미련한 짓을 하기 일쑤이므로 징계의 채찍을 통해서 이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성경은 전한다.
반듯한 널판지에 휘어진 널판지를 얹으면 휘어진 널판지가 반듯해진다고 논어
는 말한다.
영국의 서정시인 워드워즈는 다으뫄 같이 읊었다.
무지개를 볼 적마다 나의 가슴은 생의 환희로 가득 차나니
내가 어릴 적에도 이와 똑같았고
어름이 된 지금도 그렇고, 늙어서도 그럴 것이니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느니라!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나니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원컨대 생애의 나날이
자연을 숭앙하는 이 마음으로 이어져 갔으면 하노라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고(The child is the father of the man)
원인 없는 결과 없다(As the twig is bent, so is the tree inclined.)
어린 나뭇가지가 휘어지면, 그 나무가 성장하여도 휘어진다. 어릴 때 버릇을
고쳐놓지 않으면 자라서도 그 버릇을 그대로 갖게 된다. 또 한번 굳어진 버릇은
고치기 힘이 든다.
버릇 길들이기
바늘 도둑이 소 도둑된다. 어릴 때 잘못된 일을 단단히 고쳐놓지 않으면 자라
서 큰 화근을 만들어 낸다.
불이 타오르기 시작할 때 끄지 않으면 마침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춘추에도‘풀이 무성하게 자라도록 버려두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찮은 풀
이라도 무성하게 자라 덩굴지면 뽑아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엄한아버지
아버지가 자식을 몹시 엄하게 다루고 있었다. 옆집 사람이 보다 못해 참견을
했다.
“애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리 엄하게 다스리는 게요?”
“아까 댁이 낮잠을 자고 있었을 때, 내 아들이 댁의 쌈지에서 만 냥을 흠쳤소.
그래서 혼내고 있소이다.”
옆집 사람이 자신의 쌈지를 열어보았다.
“내 쌈지에는 동전 한 냥밖에 없었고, 아닌 게 아니라 한 냥이 없어졌구려.”
“옛말에 바늘 도둑이 소 도둑된다고 하지 않았소. 이 녀석이 지금 한 냥을 훔
쳤으나 가만히 두면 만 냥 훔친 것과 같이 엄히 다스리고 있는 거요.”
성경의 잠언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네 자식을 엄하게 키워라. 그러면 그가 너의 마음에 평안을 줄 것이다.’
‘아이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라. 그러면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
‘꾸짖고 때려서라도 교육을 시키면 지혜를 얻게 되지만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
려두면 자식이 어머니를 욕되게 한다.’
자식은 어릴 때 엄하게 꾸짖어 버릇을 잡고 자란 뒤에는 꾸짖으면 안 된다. 아
울러, 엄하게 가르치되 자식이 부모를 두려워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좀도둑때 버릇을 단단히 가르치면 큰 도적이 되지 않는다.(Hang a thief he is
young, and he will not steal when he is old.) 우리는 아이들을 어릴 때‘놔 먹
이다’가 어른이 되면‘바짝 다그치는’교육을 하고 있다. 어릴때는 엄하게
가르치고 어른이 되면 놔 먹이는 교육을 하는 것이 훨씬 좋다.
부자와 마누라
부부가 잘 싸우는 집에는 드나들지 말라는 말이 잇다. 그런 집안 사람과 사귀
어봐야‘잘해야 본전’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잘 벌어다 주어도 부인이 이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시루에 물 붓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집과 재산
은 부모에게 물려 받지만 슬기로운 아내는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이다’고 성경
은 전하고 있다. 좋은 아내를 얻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얻은 사
람이며 하느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하였으니, 부자가 되려면 부인
의 내조가 필수적임은 두말할 나위없는 사실이다.
현숙한 아내
현숙한 아내는 집안 일을 열심히 하고 남편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항상 좋은
일만 하라고 충고한다. 또 먹을 양식을 준비하고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가족을
위한 식사준비를 하고, 집안 식솔들을 잘 다스리며, 모은 돈을 이익이 될 만한
곳에 투자하며, 강건하고 열심히 일한다.
그녀는 남에게 유익한 일을 밤 늦게까지 하여 주고, 가난한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을 도와준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입힐 따뜻한 옷을 준비하였으므로 겨울이
닥쳐와도 염려하지 않는다. 그녀는 침실을 아름답게 꾸미고 아름다운 옷을 항상
입어 남편을 즐겁게 한다. 집에서 시간시간 사이에 만든 물건을 내다 팔아 돈을
모으고 말은 지혜롭게 친절하게 하며, 집안에서 그냥 놀고 먹지 않는다. 집안
이야기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부부 사이에도 평소부터 삼가고 조심하여 공경
하는 마음을 갖는다.
이러한 주부가 있는 집안은‘잘 되지 말라고 정한수 떠놓고 고사를 지내도’잘
될 것이다.
솔로몬은 이러한 현숙한 아내가 이 세상에 있는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의문을
표시하였다.
‘도대체 누가 이러한 현숙한 아내를 얻겠는가?’
만약 이러한 아내가 있다면 남편의 입에서 다을과 같은 말이 날마다 나올 것이
다.
“세상에 훌륭한 여성들이 많이 있지만 당신을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여성이
요. 나는 당신 없이는 못 삽니다.”부자가 되려면 이러한 현숙한 아내의 내조가
필요하다. 부자가 되려면 마누라의 말을 잘 들어라.(He that will thrive must
first ask his wife)
요람을 흔드는 손
미국의 법률가이며 수필가인 윌레스(W. R. Wallace, 1819 ~ 1833)는 다음과
같이 읊었다.
남자는 강하다고 말을 하지만
그들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을 하지만
요람을 흔드는 어머니들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첨병들이다
They say`that man is might,
He governs land and sea,
For the hand that rocks the cradle
Is the hand that rules the world
어머니는 자식을 키우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뱃속에 있을 때부
터 아이를 교육을 시킨다고 하였다. 태교가 그것이다.
맹자의 어머니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가르치는 데 삼천지교와 단기지교로 가르쳤다.
‘삼천지교란 맹자 어머니가 맹자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세 번
이나 집을 옮긴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맹모삼천이라고도 한다.
단기지교에 대해 알아보자 하루는 유학가 있던 맹자가 공부를 견디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가 자고 있던 베틀의 베를 칼로 끊어 버렸다.
“어머니, 왜 베를 끊어 버리십니까?”하고 맹자가 놀라서 묻자,
“네가 학문을 그만두는 것을 내가 짜던 베를 끊는 것과 같다. 네가 학문을 그
만두면 다른 사람 밑에서 심부름이나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야 하듯이, 나 역시
베를 짜다 그만두면 남의 집 가정부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맹자는 어머니 말씀에 크게 깨달아 배움에 힘을 써 천하에 유명한 사람이 되었
다.
사인선사마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남자이지만 바로 그 남자를‘요리’하는 것은 여자이
다.‘베갯밑공사에 이겨낼 장사가 없다’고 하듯이 잠자리에서 아내가 속삭이는
말을 다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장수를 쏘아 맞추려면 그가 타고 있는 말을 먼저 쏘아야 한다고 하듯, 상대방
에게 청할 일이 있으면 우선 ‘사모님’을 집중 공략하여야 한다.
요람을 흔드는 손이 세계를 지배한 다.(The hand that rocks the cradle rules
the world) 요람을 흔드는 손이란 어머니를 뜻한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키울 때
좋은 영향을 미치면,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어 세계를 이끌어가는 역군으로
활약한다는 말이다.
연습
처음 자전거를 탈 때는 균형을 잡지 못해 자주 넘어지지만 반복하다 보면 어
느새 넘어지지 않고 탈 수 있다. 무슨 일이든지 숙달되기 전까지는 배우기가 힘
드는 법이다. 익혀서 안 될 일은 없다는 말처럼 같은 잘못이라도 되풀이 하다
보면 기술이나 능률이 오른다.
매미잡는 꼽추
공자가 숲길을 가다 물건을 줍듯이 산 매미를 잡고 있는 한 꼽추를 만났다.
공자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의 솜씨가 아주 좋으데 무슨 비법이라도 있나요?‘
그가 대답했다.
“방법이 있지요, 대여섯 달 동안 장대 끝에 공을 두 개 포개어 얹고 떨어뜨리
지 않게 되면 봇 잡는 일이 적지요. 공 세 개를 그렇게 얹어놓고, 떨어뜨리지 않
으면 이렇게 밤 알을 줍듯이 잡게 됩니다.”
그는 공자에게 “내 몸은 다른 사람보다 자유롭지 못하지만, 내 몸을 말뚝처럼
꼼짝하지 않고 나뭇가지같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매미의 날개만 봅니다. 이렇게
마음을 팔지 않으니 매미를 알밤줍듯이 잡습니다”라고 말했다.
한 우물을 파라
주리반특은 어리석기로 소문나고 스스로 어리석음을 자인하는 석가의 제자이
다.
석가는‘스스로 어리석음을 깨닫고 있는 어리석을은 어리석음이 아니다’고 그
에게 말하고‘먼지를 털고 때를 벗어라’는 진리를 가르쳤다.
그는 어리석었지만 이 말 한마디를 빗자루를 들고 정사 구석구석을 티끌없이 깨
끗이 하는 일을 오랜 세월동안 계속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석가가 한 말
의 오묘한 경지를 터득하여 인간 번뇌의 티끌까지 벗어버리는 해탈의 경지에 도
달, 석가의 큰 제자가 되었다.
사람이란 많은 것을 알고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눈 것보다 어리석지만 파고들
어 한 가지라도 이루어내는것이 중요하다.‘열두가지 재주에 저녁거리가 없다’
는 속담은 이런 점을 무시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익혀서 안 될 일 없다(Practice makes perfect.)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듯이 무슨 일이나 반복하여 열심히 하
면...
4.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법
참외밭에서 신발끈을 고쳐 매지 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인의 생활을 어렵다. 남의 앞에 서서 이끌어 가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 수 있겠는가?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도 잘 꾸려가지 못하는 사
람이 부지기수인데, 큰 조직과 많은 사람을 훌륭히 인도해 가는 사람이 어찌 많
겠는가.
장님의 길 안내
뱀의 꼬리는 언제나 머리 뒤에 붙어다녔다. 꼬리는 불만을 터뜨리면서 자신이
앞장서겠다고 하였다. 머리는
“너의 능력으론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고 행동을 결정할 두뇌도 없으므로 안
된다”고 하였으나 꼬리의 강청에 못 이겨 마침내 굴복하고 말았다. 꼬리는 기
뻐하면서 앞장을 섰다. 그러다가 구덩이에 빠졌다.
머리가 노력한 끝에 간신히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
번에도 머리의 도움으로 가시덤불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몸은 상처투성이었다.
꼬리는 그래도 우기고 앞장서서 가다 불 속으로 들어갔다. 다급해진 머리가 때
늦은 노력을 하였으나 뱀은 타죽고 말았다.
아무런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이 남을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보여주는 우화이다.
공자와 같이 지식과 학문이 뛰어난 사람도 제자 자로가“죽음이란 무었입니까?
”하고 묻자,“아직 삶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겠는가?”라고 했고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하여 묻자“아직 사람도 잘 섬
시지 못하면서 어떻게 귀신을 섬기겠느냐”라고 하였다. 공자는“아는 것을 안
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로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예수 역시 잘났다고 떠들고만 다니는 사람들을 어떤 방법으로 고치게 할 수 있
겠느냐는 물음에,“그대로 버려두어라. 그들은 눈먼 길잡이들이다. 장님이 장님
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라고 답하였다.
무지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인도하면 둘 다 파멸에 이른다고 경고하여 말한
것이다.
맹자에‘사람의 잘못된 행동의 하나는 남의 스승이 되고자 하는 데 있다’라
는 말이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앞장 서서 잘난 체하고 큰소리 치기를 좋아한
다는 말이다. 하지만 빈그릇이 요란한 소리를 낸다고, 실력이 없는 사람이 크게
떠들면서 자기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적격자라고 장담하다가 망하는 경우가
많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면 둘 다 파멸에 이르게 된다. 지도자를 선택할 때는 언
제나 머리되는 사람을 구해야지, 꼬리 같은 사람을 택해서는 안 된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When the blind leads the
dlind, both fall into ditch)
예쁜 여자 사로잡기
10여 년 전 미국에서 미스 유니버스에 당선된 미모의 아가씨가 자살을 기도한
사건이 있었다.
이유는 이렇다. 미스 유니버스에 당선되자 그녀는 각종 행사나 화려한 연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행사는 줄울 있고, 그녀는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치러냈건만,
시간이 흐르자 점차 이상한 허탈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 일은
그녀가 외로움에 사로잡힌 것이었다. 데이트를 신청하는 남자가 한 사람도 없었
던 것이다. 마침내 그녀의 고독감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넘어섰고, 그녀는 스스
로 자신의 목숨을 끊기로 결심하고 말았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녀 같은 미모와 명성을 가진 여자면 많은 남자들이 접근
하였다가‘시골간이역 급행열차 지나가듯’거절당했으리라 여긴다. 그래서 자기
같은 사람은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단정내린다. 그래서‘봅꿩이 자기 소
리에 놀라 소스라쳐 도망가듯이’그런 미녀에게는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요즘과 같은 시대에 자기
자신을 송충이로 비하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리고‘미스 유니버스’라
해서 머리에 금테 두른 천사도 아니고 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그냥 평범한 젊은
여자와 다를 것이 없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남자들은‘사느냐,죽느야,그것이 문제로다’라며 머뭇거린
나약한 햄릿처럼,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할까 말까? 그녀가 내 사랑을 받아들일까?라는 생각에
노심초사한다. 그러다 번번히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그녀의 옆자리를 빼앗기
고 만다.
영국 속담에‘선거에 입후보하여 당당히 자기의 정견을 발표한 후 낙선하는
것과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였다가 거절 당하는 일은 창피한 일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또, 전쟁터에서 적군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갖은 간사한
꾀를 써서라도 이겨야 하듯이,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방법
을 써도 된다고 하였다.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도 연적에게만은 중상비방도 허락
된다는 말이다.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방법을 써도 된다고
하였다.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도 연적에게 만은 중상비방도 허락된다는 말이다.
머뭇거리는 남자는 어여쁜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사랑도 그렇지만
행운도 용감한 자에게만 찾아간다고 한다.‘남자는 베짱, 여자는 절개’라는 시
골 장터 약장사 말과 같이 말하는 사람치고
‘저돌적’으로 사랑을 구하는‘베짱’은 없다는 말도 있을망정 말이다.
(전쟁과평화),(안나 카레니나)등의 주옥 같은 명작을 쓴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1828~1910)를 보자
그는 성을 죄악시하고 성욕을 만악의 근원이라고 극언한 성욕론까지 써서 많은
인세 수입을 올린 사람인데, 그는 그렇게 번 돈으로 82세로 죽기 얼마 전까지
여자 없이 하룻밤도 못 잘 정도의 생활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니 글로 쓰
는 것과 실행하는 것, 말로 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데는 큰 차이가 난다는
것도 알아두자. 소심한 남자는 예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Faint
heart never won fair lady.)
참외밭과 신발끈
시저(Julius Caesar, 100~11 B.C.)가 영국 원정(55~54 B.C.)을 성공시키자 그에
대한 로마 시민들의 인기는 날로 높아졌다. 로마 원로원은 시저의 세력이 커나
가자 이에 불안을 느낀 나머지 그에게 군대 통수권을 원로원에 이양할 것을 명
령하였다. 시저는 원로원의 명령을 거절하고‘주사위는 던져졌다’며
기원전 49년에 군대를 거느리고 루비콘 강을 건넜다. 이로써 로마는 내란에 들
어갔다.
그는‘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란 자신의 말에 맞게 반대세력인 폼페이를
격파하였다. 아울러 영웅호색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이듯,그해 겨울 알렉
산드리아에서 클레오파크라와 갖은 염문을 뿌렸다. 그는 차례로 폼페이의 잔당
과 반대파를 제거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로마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영구집권을 위한 황재자리에 오르려다 공화정을
원하는 세력에 의해 기원전 44년 3월15일 암살되고 말았다.
부루투스 너까지도...
시저 암살 음모의 주동 인물은 부르투스,캐시어스등이 있다. 시저가 자객의 칼
에 맞아 죽으면서 옆에 부르투스가 있자,“부르투스 너까지도.....(Brutus, you
too!)"라는 말을 남겼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토록 믿고 믿었던 부르투스도 시저에게 면종복배(面從腹背 : stabbed in the
back)한 것이다.
부르투스는 시저를 암살한 후,“내가 그를 죽인 것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
문이 아니라 그보다 로마를 더욱 사랑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 후로부터
약 2,000여 년이 지난 1979년 10월26일 서울의 궁정동. 황제가 되려했던 시저가
아니라 영구집권을 하려 했던 박정희 대통령, 부르투스가 아니라 김재규 중앙정
보부장, 칼로써가 아니라 총으로.....
확실히 역사는 되풀이 된다. 박 대통령은“김부장 당신이....”라고 말했고, 김
부장은 부르투스가 시저의 장례식에서 한 말과 같이 법정에서“내가 그를 죽인
것은 그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나라의 장래가 더 걱정되었기 때문이다”고 말했
다 한다.
시저의 이혼 사유
시저는 정치인 씬나의 딸인 코낼리아와 정략결혼했으나 그녀가 죽자, 기원전
62년에 폼페이아와 재혼하였다. 하지만 시저는 그녀에게 싫증을 느껴 적당한 이
혼 사유를 찾았다. 그러던 중 그의 정적인 클로디어스가 신성 모독죄로 재판을
받게 되었고, 그 재판에 아내 폼페이아가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나자, 시저는 이를 이유로 단행했다. 플루타크 영웅전에 의하면 시저는 확증없이
심증만 있었지만 그러한‘소문’때문에 최고직에 있는 자신의 명예와 위신이 실
추되었다고 생각하고, 갖은 루머가 나도는 가운데서도 이혼을 단행했다고 한다.
시저는 “나의 마누라가 아예 의심받을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었다”고 말했
다. 그는 그후 칼퍼니아와 다시 결혼하였다.
공인의 자세
이러한 시저의 고사에서 기원하여‘above suspicion'이란 말이 사용된다. 이
말은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장관(입헌군주제의 나라, 즉 영국이나 일본의 경우 행정부의 장관은 국회의원
만이 가능하다. 이들은 국민에 의해 장관에 임명되는 절차를 밟기 때문에 장관
을 Ministers of crown이라고 한다. Minister는 목사 또는 대사관의 공사란 뜻도
있다)은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아야 한다. 만약 그것이
개인적인 스캔들이라 할지라도 그는 그 직위에서 사임하여야 한다. 그래서 영국
이나 미국에서‘혐의’를 받는 고위 공직자는 일단 그 직책에서‘휴직’을 당한
다. 중국 고대 악부고사에,‘군자는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여야
하나니, 절대로 혐의를 받을 상황에 몸과 마음을 두지 말라. 참외밭에서 신을
고쳐 신으면 멀리서 보는 사람이 참외를 훔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고 오얏나
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쓰면 오얏을 훔치는 것으로 의심받게 되므로 삼가 조심
해야 한다‘고 하였다.
동서양을 박론하고 공인의 생활은 어렵다. 남의 앞에 서서 이끌어 가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 수 있겠는가?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도 잘 이끌어 가려면 대단
히 어렵다. 그러므로 공인은 아예 의심받은 짓을 하지 말아야 모든 뜻이 이루어
진다.
‘무슨 일이나 명분을 바르게 세워야 한다’고 논어는 말하고 있다. 명분이 서
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참외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마라.(Caesar's wife must be above
suspicion.)
물에 빠진 사람
물에 빠진 사람을 보라.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든다. 분초를 다투는 위급한 상
황이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도 구원의 손을 뻗치는 것이 사람의 심정이
다.
누구나 평소에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줄 것같이 말해도 실제 상황에서는 그
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자신이 어려울 때에는 남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요
청하지만 반대로 남아 어려울때에는 별반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공자
는‘군자는 곤궁한 사람이 도움을 청하면 도와주어야 한다’고 가르쳤고,
예수 역시‘네에게 요구하는 사람에게 주고,꿔달라는 사람에게 거절하지 말아라
’고 하였다.
영국 작가 스톱파드(STOPPARD)는 “우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살
아왔다. 그런데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에게 왜 벽돌을 던지는가?”라고 말했
다. 동냥은 못 주더라도 쪽박은 깨지말라는 말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자는다.(A drowning man clutch at a straw)
영어에서‘지푸라기를 잡다(to clutch at a straw)’란 말은 숙어로도 사용된다.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기대하지 않더라도‘한번 해본다’는 뜻이다. ‘바로 그
곳에 가서 만나봐야겠군’하고 필립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외쳤다.('I'll
shoot round and see him now!' cried philip, clutching at a straw.)
예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여러가지 방법을 다 동원했으나 실패하고 마지막
남은 방법 하나를 시도하여 본다는 뜻이다.
소크라테스
그리스 철인 이오게네스(Diogenes, 412~332 B.C.)는 소크라테스를 가리켜,“대
부분의 사람들은 먹기 위해서 살지만 소크라테스는 살기 위해 먹는 사람이다“
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혼란한 시기에 길거리, 시장 그리고 짐나
시아라고 부르는 토론자에서 재기가 뛰어난 청년, 정치인, 시인 등과 어울리며
지냈다.
남녀간의 성관계가 없는 사람을 ‘플라토니 러브(Platonic love)'라고 하는데,
이는 소크라테스가 재기발랄한 청년과 나눈 우정과 사랑을 그의 제자 플라톤
(Plato)이 표현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두가지 죄목으로 재판을
받았다. 첫째는‘젊은이 선동죄’,둘째는‘신에 대한 불경죄’였다. 그는 유죄
선고를 받아 독약을 먹거 일생을 마쳤다. 예수나 공자,석가모니 등과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기록하여 남긴 것이 없다. 그의 사상은 플라톤의 (대화록)
과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의 추억)에서 밖에 유추하여 볼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생각과 플라톤의 생각은 원리면에서 서로 불리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악처로 소문난 부인 크산티페와 아들 셋을 두었다. 남편이‘돈
이 생기지 않는 엉뚱한 소리’‘세계에서 가장 철학적인 소리’만 하면서 길거
리와 시장바닥을 쏘다닌다면‘악처’안될 여자가 있겠는가?
'곧은 낚시’의 강태공이 백수 건달로 있을때, 고생을 참지 못한 부인 마씨가
도망을 갔다. 세월이 흐른 후 강태공이 입신양명하여 큰 벼슬을 하자 그녀는 과
거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다시 결합할 것을 간청하였다. 하지만 강태공은‘지나
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엎지른 물은 퍼담을 수 없다’며 매정히 거절했다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티페가 강태공 부인보다 낫다. 못
살겠다고‘고무신 거꾸로 신고’도망은 가지 않았으니 말이다.
소크라테스를 두고 말한 디오게네스에게서 힌트를 얻었는지는 몰라도, 이후에
시세로(Ciecero,106~43 B.C.도‘사람은 먹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고 하였다. 공자가‘군자는 도를 찾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고 하
였다. 공자가‘군자는 도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지 먹는 것에 매달리지 않는다’
고 했듯 말이다.
살기 위해서 먹지 먹기 위해서 살지 않는다.(Eat to live, not live to eat.) 살
기 위해 먹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고,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은‘저질’의 사람
인가?
옷과 날개
깃털이 아름다운 새는 보기에 예쁘다. 사람 역시 옷이 날개이기 때문에 옷을
잘 입으면 인물이 훨씬 돋보이게 마련이다. 눈을 한 번 찡끗하여 웃으면 백 가
지 교태가 자지러지는 미녀나 옥 같은 얼굴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연분홍 배꽃
한 송이가 봄비를 머금은 듯한 양귀비 같은 절세미녀도 몸이 더럽고 불결한 누
더기를 쓰고 있으면 보는 사람마다 코를 막고 도망을 갈것이다.
진흙 속에서 진주를 알아내는 것은 현명한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옷차림이 남
루하더라도 진실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알아내는것은 성자의 눈빛으로만 가능하
지만, 일반 대중은 현자도 성자도 아닌 어중이 떠중이들인 장삼이사인바, 이들에
게 좋은 인상을 주려면 우선 옷차림을 깨끗이 하여야 한다.
“옷을 잘 차려 입으면 누구나 마음이 뿌듯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찰스 디
킨스가 말했다. 아름다운 옷은 입은 사람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누더기를 입거나 아름다운 옷을 입거나 입은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보는 사람
에 따라 달리 생각되어진다면 그것은 보는 사람의 미망이다.
그러나 남에게 호감을 주는 깨끗한 옷차림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중요하
다. 왜냐하면 개도 누더기를 입은 사람만 골라서 짖는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
니 우선 개에서라도 대접을 받으려면 옷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입어야 한다.
옷이 날개다.(Fine feathers make fine birds.)
불만족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과거에 대한 향수나 미련을 갖
고‘그때가 좋았었지’하며 아쉬워하거나, 다가올 미래의 장미빛 환상에 들떠있
기가 쉽다.‘가장 좋은 때는 결코 현재일 수 없다’는 말처럼, 현실에 만족하면
서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오늘은 오늘의 기존으로 보면 오늘이지만, 어제의
기준으로 보면 어제의 미래요, 내일의 입장에서는 과거이다. 그러므로 오늘 일어
나는 일, 과거에 일어난 일, 미래에 일어날 일 가운데서‘보라, 이것이 새 것이
다’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전에 있던 것이 현재에 디시 있고, 이미 했던 일도
다시 할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거와 미래만 좋은 것이 아니라 현재도 좋
은 때인 것이다.
재혜의 왕 솔로몬운‘어째서 지금이 옛날보다 못한가 하고 묻지를 말라, 그것
은 현명한 질문이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진실로 오늘 하루룰 새롭개 할 수 있다면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고 대학은 전한다. 날마다 마음에 기쁨을 채워 살아간다면 그림자같이 덧없
이 지나가는 인생이 짧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현실에 불만을 갖지 않는 사람은 없다.(Jam tomorrow and jam yesterday,but
never jam today).
중용의 길
로마의 극작가 플라우투스(Plautus,251~184 B.C.)는 “중용을 지키는 것이 가
장 좋다”고 하였다. 중이란 모자람이나 남음이 없고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천하의 정도를 말하고 용은 항상 변함없는 하늘과 땅의 정한 이치를 뜻한다. 그
래서 중용이란 모든 일에 모자람이나 남음이 없음을 말한다.
동양 철학에서 중용은 성선설에 바탕을 둔 천일합일(天一合一:하늘과 사람은
하나이다)사상을 주제로 삼고 있고, 우주나 인간의 모든 것을 성에 귀결시키고
있다.
중도의 길을 걸으면 허물이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너무
과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스의 철학자 헤시오
드는 “무슨 일이든지 자제하라. 중용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며,
남고 모자람이 없어야 한다고 하였다.
세익스피어 역시 중용지도를 강조한 사람이다. 그는 ‘만약 권력자를 잘 보필
하려면 그들에게 중용지도가 최고하고 충고하여야 한다’고〈태산 명동에 쥐꼬
리 하나(Much ado about nothing)〉에서 말했고 호레이스도‘모든 일에 중용이
핑요하다’고 하였다.
‘중용의 덕이야말로 극치의 것이다’고 한다. 그러므로‘너무 가까이도 하지
말고 너무 멀리도 하지 말라’는 말과 같이 항상 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
하다.
중용의 길이란 오른쪽에는 눈이 내리고 왼쪽에는 햇빛이 비추는 길이다. 따뜻
함과 시원함이 서로 적절하게 섞여진 길이다. 걷기에 편하고 안전한 길이다.
중용의 길을 지키자.(Moderation in all things.)
눈 가리고 아웅
중국의 진시황은 전국을 시찰하다가 사구(砂丘)라는 곳에서 죽었다. 때는 기원
전 209년이었다. 그는 큰아들인 부소에게‘급히 수도로 가서 나의 장례식을 행
하라’는 조서를 남겼으나 이를 환관 조고가 가로챘다. 그는 진시황을 수행한
아들 호해를 설복하고 승상인 이사를 협박하여, 진시황의 시신을 숨긴 채 수도
로 돌아와서 거짓 조서를 꾸며 시황의 장자인 부소에게 죽음을 내리고 호해를
황제에 즉위시켰다.
조고는 점차 호해를 정사에서 멀리하게 하고 승상 이사를 죄를 씌워 죽이고는
자신이 중승상이 되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하늘같이 높아진 조고는 자신이 황제를 대신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그는
모반을 일으키기 전에 대신들의 마음을 떠보기로 작정하였다.
그는 사슴을 데리고 황제인 호해에게 가서 “이것이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황제가 웃으면서 “승상이 잘못 본 것이요. 어떻게 사슴을 말이라고 하십니까?
”라고 말하면서 좌우에 있는 중신에게 물었다.
좌우에 있던 중신 중에 어던 사람들은 ‘말이다’하고 대답했다.
조고는 ‘사슴이다’고 말한 사람은 모두 죄를 씨워 가두어 버리자 모두 조고
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새들이 보는 앞에서 새 그물을 치는 사람이 바로 조고와 같은 사람이다. 이러
한 사람은 남에게 잘못을 강요하고 함정에 빠뜨리려는 사람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잣을 말아라.(In vain the net is spread is the sight of
the bird) 새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새 그물을 치느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다. 그러나 그러한 짓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사람은 스
스로 덫을 놓고 자기들이 빠져 죽을 함정을 파는 사람들이다.
신용
사업에 돈은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돈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돈
을 움직여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업하는 사람은 돈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신용이다.
무슨 사업이든 겉으로는 돈이 항상 문제다. 그러나 어떤 약속도 철저히 지키
는 사람은 신용의 폭이 넓어져 돈이 모이게 되고, 이를 이용해서 큰 사업을 일
으킬 수 있다. 영국 작가 사무엘 스마일스(S.Smiles, 1812 ~1904)는 “약속을 지
키는 것은 신사의 의무이며 사업 성공의 초석이다”고 하였다.
신용으로 맨손에서 세계적인 부자가 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그 자서전
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을 보자.
‘나는 삼창정미소의 요윤근 씨를 찾아갔다. 쌀가게 당시 외상을 제 때 제 때
갚았던 나의 신용을 담보로 그분은 선뜻 거금 삼천 원을 빌려주었다. 쌀 한 가
마에 5원 하던 때였다.
그런데 공장을 시작한 후 한 달 만에 공장에 불이 나서 공장과 손님이 맡긴
자동차, 외상으로 들여왔던 부속품이 모두 불에 탔다. 빚더미 위에 빚이 얹혀졌
다. 길은 외길 뿐이었다. 나는 이미 신용을 담보로 이미 삼천 원을 빌려쓴 오 영
감님에게 다시 찾아갔다.
단 한번도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준 적이 없으면서 단 한 번도 돈을 떼인 적
이 없는 것이 자랑인 그분은 나의 이야기를 듣자,“그래 내 평생에 사람 잘못보
아 돈 떼어먹혔다는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으니 다시 더 빌려주겠네”하면서 삼
천오백 원을 더 빌려주었다.’
신용 있는 사람은 말과 행동이 공손하고 일에 신중하고 남과 사귐에 성실하
며,오래된 약속도 지킨다. 돈이 사업성공의 비결이 아니라 신용이 성공의 비결이
다. 크게 성공한 사람은 첫째도 신용,둘째도 신용, 셋째도 신용을 좌우명으로 삼
았다. 신용을 지키는 사람은‘사업이 잘 되지 말라’고 정한수를 떠놓고 매일
빌어도 잘 될 수밖에 없다.
신용은 사업 성공의 초석이다.(Punctuality is the soul of business.)
알바니아 상인들은 자기들끼리 몇백만 달러 어치가 되는 보석을 영수증 하나 없
이 주고 받으며 장사를 한다고 한다.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신용이 체질화되
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거짓말을 하거나 보석을 떼어먹으면 그 날로 끝이다. 그
를 잡아서 감옥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죽음보다 더한 정신적인
죽음을 가해 완전히 매장해 버린다. 그들에게는 신용이 재산이고 생명인 셈이다.
예절의 근본
남과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은 신용을 얻게 된다. 수레와 말이 준비되어 있어
도 멍에가 없으면 마차가 굴러갈 수 없듯이 신의 없는 사회는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미생지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의 대표적 주자를 꼽으라면 단연코 중국 노나라 사람
미생이 으뜸일 것이다. 미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와 만나기로 한 다리 아래
에서 기다리다가 여자가 오지 않자, 홍수가 밀려와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피하
지 않고 기다리다 기둥을 끌어안은 채 익사했다고 한다.
귿은 신의, 또는 우직하여 융통성이 없는 경우를 일러 미생지신이라 하는 것
은 이와 같은 내력 때문이다. 미생은,‘군자는 덮어놓고 고집하지 않아야 한다’
고 말한 공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었는지는 모르나, 약속지키는 것의
소중함을 몸으로 실천한 사람이었다.
약속은 잘 하나 지키지는 못하는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서, 남의 마음
만 떠보고 헌신짝처럼 버릴 사람이다. 그래서 ‘위험에 처해 있을때 믿을 수 없
는 자를 믿는 것은, 앓는 이로 음식을 씹거나 부러진 다리로 걷는 것이나 같다
‘고 성경은 말한다.
논어에 ‘사람에게 신의가 없으면 쓸 데가 없고, 믿음이 끊어지면 맹세는 아
무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아무리 철석과 같은 맹세도 지켜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식언을 하지 않아야 한다. 식언은 한 번 나온 말을 다시 입으로 걷어들인다는
뜻으로 지키지 않을 약속의 말을 한다는 뜻이다. 말을 쉽게 하는 것은 책임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키고, 또 지킬 수 있는 말만 하자.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은 예절의 근본이다.(Punctuality is the paliteness of
princes) 특히 사소한 것 같지만 시간 약속을 잘 지키자. 시간 약속 하나 잘 지
키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큰 약속을 지키는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사소한
약속이라도 지키는 사람만이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성경 누가복음은‘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성실하고, 작은
일에 정직 하지 못한 사람은 큰 일에도 정직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장물아비와 도적
장물아비란 도적이 훔쳐낸 물건을 현금화시켜 주는 사람이다. 범죄수사에 노
련한 형사들이 내세우는 경험론적 수사 법칙 제1조는 ‘도적이 물건을 많이 훔
치더라도 장물아비가 없으면 도적질을 못 하게 된다’
도둑도 뒤에 장물아비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찮은 도둑도 그러하듯, 훌륭한 선수라면 당연히 뒷바라지 하고 지도해 줄 사
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없으면 큰 성과를 올리지 못한다.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말도 백락(伯樂)이라는 훌륭한 조
련사에게 조련을 받지 못하면 뛰어난 말이 되지 못한다‘고 하듯이 아무리 재능
있는 사람도 그것을 꿰뚫어보고 살려주는 사람을 못 만나면, 세상에 나타내지
못하고 썩어버린다.
공자 역시“팔아야지, 팔아야지, 팔고 말고,나는 좋은 값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라고 하며 자신의 값어치를 알아줄 사람을 찾아 다녔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상갓집 개’같이 여기저기 눈치를 보면서 돌아다녔다. 그는 “나를 써주는 사
람의 나라를 동주와 같은 유토피아를 만들겠다”고 하였으나 세상에 뜻을 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이 되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
다’라고 말하면서 안 될줄 알면서도 계속 정진을 했던 사람이다.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할 사람을 위해 몸을 단장하고,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사기는 전한다.
장물아비가 없으면 도적도 없다.(If there were no receivers, there would no
thieves)
바위를 뚫는 물방울
로마의 시인 오비드(Ovid, 43 B.C. ~ A.D. 17)는 “물은 약하고 바위는 아주
단단한데 약한 물이 바위를 뚫을 수 있구나!“라고 말했다. 천하에서 가장 부드
러운 것이 가장 단단한 것을 부린다는 사실에 대한 감탄이다.
노자는 크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 부드럽고 약한 물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하며,“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하였다.
물은 만물에 혜택을 주어 자라게 하면서 그 공로를 누구와 다투지 않고 자기
위치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흐르기’때문이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도 쉬지 않고 계속하면 이루
어진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 시도하여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 여러 번 시도하
여야 한다.
‘남이 한 번하여 능하더라도 나는 백 번하고, 남이 열 번하여 능하거든 나는
천 번해야 한다’고 중용은 전하고, 서양 속담에도 ‘여러 번 쏘는 자는 표적을
맞출 수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Cdnstant deopping wears away
a stone)
안전하려면
영어 표현에 이런 말이 있다.
‘나는 내 딸이 여러 명의 친구하고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한명의 남자친구와
나가는 것은 싫어해, 왜냐하면 여러 명과 같이 나가면 안전하기 때문이댜,’
단 둘이 가면 으슥한 곳으로 가‘엉뚱한 짓(?)’을 할 기회가 많은데 여러 명
이 가면 둘만 행동할 수 없으므로 더 안전하다는 말이다. 딸 둔 부모들의 생각
은 동서양이 다 똑같다.
돈 주안(Don Juan)
여자를 잘 ‘꼬시기’로 소문난 사람은 돈주안이다.
이 사람은 어떻게나 여자를 잘 구슬리는지 그가 한 번 ‘찍은’여자는 제아무
리 춘향과 같은 일편단심을 가진 열녀나 정숙한 정겨부인, 요조숙녀라도 ‘뱀
앞에 선 개구리’같이 ‘날 잡아잡슈’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 사람이 가진 ‘능력’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때문에 그
를 부정적 의미를 지닌‘난봉꾼’으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서양의 시나 소설의 주인공으로 많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추아받
는 인물입에 틀림없다. 모짜르트의 오페라(돈지오바니)에 주인공으로 나오고, 바
이런의 동면시 (돈 주안)도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한국의 난봉꾼으로는 해방 후의 인물, 박인수란 사람을 들 수 있다. 그
넌 6.25전쟁이 끝난 후 무질서한 사회풍조를 틈타 수십 명의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섭렵하였는데 그러다가 마침내 ‘혼인을 빙자한 간음행위’라는 죄명으로
법정에 섰다. 하지만 당시 판관은 ‘보호받을 값어치가 있는 정조만 법은 보호
한다‘고 하여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장가나 시집을 가려면 많은 상대자를 사귀어보고 그 중 하나르 ‘찍어야’한
다. 그래야 안전하다. 신랑감으로 절의 중과도 맞춰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물론, 정은 주지 않고 상대방의 정만‘게 껍질 속의 살’빼먹듯이 빼먹
는 파렴치한 짓을 하고 다니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러 사람이 하는 일은 안전하다(There is safety in numbers)
여러 사람이 하는 일은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한국 사람
들이 외국에 이민가서 시작하는 일은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 많이 하는 ‘세탁소
업’,‘구멍가게’,‘한국식당’등이다.
탐닉
즐거움도 끝까지 즐기려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그것이 극에
달하면 거기에는 권태와 절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그 한도를
조절하지 못하면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군자는 중용을 지키고 소인은 중용에 거슬리게 행동한다’고 한다. 군자는 자
신을 자제하고 소인은 자제하지 못하고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래서 ‘마음을 수
양하는 데는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고 맹자는 말하였
고‘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고 노자는 말하였다.
이렇게 자신을 이기는 방법은 욕심을 버리는 것으로, 그렇게 하면 마음이 넓
어지고 몸이 편안해진다.
‘자유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너무 빠져들면 해롭다’는
말대로 항상 자제하는 습성을 기르자. 꿀도 적당히 먹지 않으면 토해내게 되듯
이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보다 나쁘다고 논어는 말한다. 산 속에 있는 도
적을 잡아내기는 쉬워도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잘못을 잡아내기는 힘이든다고
한다. 자신을 이겨내는 생활을 해야 한다.
좋은 일이라도 너무 빠져들면 해롭다.(You can have too much of a good
thing.)
5. 지헤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돈
돈이면 개도 멍첨지이다.
공자와 같은 분도 돈을 많이 벌고 싶어했으나 벌지 못하자
“거친 밥을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워도 즐거움이 그 곳에 있으니.....”하
는 등의 변명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돈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좋아하느 것 두 가지를 꼽으라 하면 아마도 그건 돈
(money)과 섹스(sex)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이 두 가지를 가장 좋아하면서도 가장 ‘싫어하는 척’
해야 인격자로 대접을 받고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참 이상도 하다.
공자는 섹스를 좋아하는 것같이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한탄했
다. 그런 그가 지금 살아 있다면 돈 싫어하는 사람도 보지 못햇다고 솔직히 고
백할 것으로 믿는다.
공중변소에 세금을 매긴 황제
타이터스(Titus, 39-81 A.D.)는 선정을 베풀어 신민으로부터 추앙을 받았던 로
마 황제다. 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공중 변소세를 부과한 황제인데, 로마의 장
군이었던 그의 아버지 베스파시안으로부터 강한 질책을 받았다. 세금을 걷을 데
가 없어 변소에도 다 세금을 부과하냐고 말이다. 공중 변소세가 처음 실시되던
날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변소에서 거두어들인 동전을 갖고 타이터스 코 앞에 내밀면서
냄새가 나느냐고 물었다.
타이터스는 모른 처가며,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 베스파시안은 “이 돈은 소변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타이터스는 아버지 덕에‘돈에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Money has no smell)’
란 명언을 남기게 되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도와주는 방법도 여러 가지라는 것
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돈은 냄새가 나지 않으므로 깨끗한 돈과 더러운 돈으로 구분할 수가
없다.
부자청년(The rich young man)
한 청년이 예수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는 그에게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
라, 거짓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격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
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청년을 “그 계명을 다 지켰으니, 부족한 것이 있으면 말해주십시
오”라고 했다.
예수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면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고 말했다.
청년을 재산이 많았으므로 이 말을 듣자 풀이 죽어서 ‘베바지에 방귀새듯’
슬그머니 가버렸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 내가 다시
말하지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매우 쉽다.”
돈이 인생의 전부인가?
어떤 부자가 풍성한 수확을 하였다. 그는 곡식을 쌓아놓을 큰 창고를 짓고 그
곳에 많은 곡식을 쌓아올렸다. 부자는 지금부터 편히 쉬면서 걱정없이 먹고 마
셔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느님이 말했다.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가져가면 쌓여 있는 재산이 누구에
게 가겠느냐?’사람의 생명이 전적으로 재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재산을 우리의 생명보다 더 중하게 여기며 사는 부자 청년과 같은 사람들을 많
이 본다.
그런데 미국의 극작가인 유진 오닐(Eugine O'Neil, 1888 ~ 1953)은 노밸문학상
수상자(1936년)답게“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확신하나 항상 그 말이 맞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다. 가끔 돈이 인생의 전부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인생
자체를 연극으로 보는 극작가로서 당연한 말이다.
돈은 힘이다(Money is power)
'지식은 힘이다(Knowledge is power)'라고 한다. 하지만 지식이 힘이 아니라
‘돈이 힘이다(Money is power)’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다. 세계 정치와 힘의
본산인 백안관에서도 부정 거자금 모금이나, 지사 시절 토지거래에 부정이 있느
니 해서 돈 때문에 물의 를 빚은 것을 보아도 자명하다.
확실히 돈은 힘이다.‘형제와 자매는 한 배에서 나온 한 핏줄이니 모든 일을
서로 협력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하지만 가끔은 형제끼리 그것도 자기들
이 번 돈이 아닌 아버지 유산을 가지고 서로 많이 갖겠다고‘치고 받고’싸우게
하는 힘을 돈은 공급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두텁게 하고, 형과 아우가 화목하면 남편과 아내가 화
합하여 집안을 살찌게 하는데 ‘돈의 힘’이 쓰여져야지 그 반대 경우에 쓰여지
면 안 된다. 사람이 만들어낸 돈이 천륜을 해치는 힘을 발휘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돈은 악의 근원인가?
돈은 힘을 가졌건만, 이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
다.‘돈을 사랑하는 것은 온갖 악의 뿌리가 됩니다. 이것을 가지려고 열망하는
사람이 믿음을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고통을 받고 마음의 상처를 입습니다‘라
고 신약성경의 디모데 전서는 가르치고 있다. 돈 자체는 만악의 아니다. 돈 때문
에 나쁜 짓을 하거나 믿음을 버리는 행위가 그릇된 것이지 돈 자체는 아무런 잘
못이 없다는 말이다. 사실 돈이 아니라 게으른 것이 만악의 근원이다.
‘한 소쿠리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시고 팔베게를 하고 누워, 누추한 집에
살더라도 즐거움이 잇다’고 청빈을 몸소 실천한 공자도 사실을 돈을 만힝 벌려
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런데‘빨리 달린다 해서 경주에서 일등하는 것이 아니
고 지혜로운 사람이라 해서 언제나 생활비를 많이 내는 것도 아니며, 총명한
사람이라 해서 언제나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고 지혜의 왕 솔로몬이 성경
전도서에서 말하였듯이, 공자 역시 지혜로운 사람이어서 돈을 많이 벌지 못했고,
돈에 대한 열등의식를 갖고 있었다.
논어 술어편을 보면, 공자는 “부를 구해서 될 일 같으면 비록 말채찍을 잡는
일을 하라고 해도 할 것이다“라고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당시 봉건신분사회
체제에서 천한 직업이었던 마부 노릇을 하더라도 돈만 생기면 하겠다는 청부를
강조하였으니 그는 얼마나 솔직하고 인간적인 사람인가?
돈이 사람을 만드는가?
공자는 재력이 사람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졌다.
외설 시비로 말썽이 많았던 (차타레이 부인의 연인)의 저자 로렌스
(D.H.Lowrence. 1885~1930)는 1920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돈은 사람을 만
든다. 원숭이도 사람으로 둔갑시킬 정도다’라고 썼다.
무지렁이 같은 사람도 ‘한탕’하여 돈을 벌면 신분의 수직상승을 일으키고,
그 주위에는 온갖 시정잡배들이‘떡고물’을 주워먹으려고 구름같이 몰려든다.
그래서 돈만 의지하는 사람은 돈이 떨어지면 하나뿐인 생명이 죽는 것과 같은
‘수모’를 당하기 때문에
돈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더욱 더 숭배하는 배금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돈이 말해준다
돈이란 누구나 많이 갖고 싶어하지만 마음만 먹느다고 해서 돈을 벌 수는 없
다. 그래서 찰스 디킨스(C.Dickens.1812~1870)는 ‘돈이 돈을 낳는다’고 했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벼대듯이 ‘돈이 돈을 버는데’, 돈 없고 거기다 배운
것까지 없는 사람은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까?
디킨스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우리는 돈이 돈을 번다는 사실과 돈만 가지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디킨스는
돈 버는 실질적 방법은 얼버무리고, 돈을 쓰는 방법만 강조를 하였다.
그런대 누가 돈에 대해 고담준론을 하더라도 돈은 무지무지하게 편리한 것이
다. 돈만 가지면 이 세상에 없는‘중의 상투’도 구할 수 있고‘산 호랑이 눈썹
’까지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또 돈은 암말을 움직이게 한다고 하
였다. 일을 하려 하지 않고 주인의 눈치만 보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암말에게 돈
을 보여주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입에 거품을 품으면서 죽기 아니면 살
기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래서 ‘돈이 말해준다’은 말이 생겨났다. 돈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미
로서 말에 무게를 더해준다는 말이다. 그래서 빈털터리의 천 마디 말보다 돈 많
은 사람의 한 마디가 더 권위가 있고 무게가 있어 보인다.
돈은 만국 공용오
돈이란 세계에서 통용되는 공통언어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영향력
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돈의 유혹 앞에서는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에
넘어가듯 쉽게 넘어간다.
뇌물을 받거나 축제과정에 문제가 있어 공직을 사임하고 집에서 ‘애를 보거
나, 할 일이 없어 파리를 잡거나, 코를 후비고 있는 사람’‘큰집(법무부 직영
국립호텔)에서 강제로 수양 중인 사람’의 대부분은 바로 디 ‘돈’으로 인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사람들이다.
솔로몬 왕은“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자제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재물
은 사라지는 법이다.
독수리처럼 날개돋쳐 날아가 버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 지혜를 갖고 행동하지 않으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벌어놓은 돈은
모두 날아기 버리고‘집은 큰 집인데 작은 방 하나만 사용할 수 있는 곳’에서
어쩔 수 없이 도를 닦게 되는 신세가 되기도한다.
돌고 도는 돈
돈은 돌고 돈다. 돌고 도는 돈이니 언젠가 내 차례가 온다는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별 궁리를 해보자.
한가지 주의할 것은 하느님이 복을 주어야 부자가 되지, 죽어라고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신중한 계획을 세우고 성실하게 일
하면 부유하게 되고 조급하게 굴면 가난하게 된다는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이
자. 또 나쁜 짓을 하여 돈을 모으지 말자. 공자는 ‘의롭지 못한 부귀는 뜬 구름
과같다’고 하였고, 솔로몬은 ‘속여서 얻은 재산은 사라지는 안개요, 죽음의 덫
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재물을 보고서 구차스럽게 얻으려 하지 말고 옳은 방법으로 돈을
모으라’는 공자 말씀에 따라성실하게 행동하자.
어진 사람은 재물로서 몸을 일으키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몸으로 재물을 모
은다고 대학도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모은 돈을 쓰는 법
어느날 공자의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돈이 많고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
습니까?”하고 묻자, 공자는
“그것도 좋지만 돈이 많고도 예를 좋아함보다 좋지 못하다”라고 하였다.
공자는 돈이 많다는 것에 아무런 반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돈에 대하여 한보
사건과 같이‘뒤가 구려서’숨기는 부정적 측면으로 보지 않고, 떳떳이 번 돈은
사회의 발전에, 긍정적인 방향에 쓰라고 가르쳤다.
장자는 공자와 달리 가난 때문에 초년에 죽을 고생을 하였다. 그러나 무위자
연을 주장한 대철인답지 않게 노년에는 비단옷감을 생산하여 큰 돈을 벌었다.
그가 재산을 모은 이유는 꼭 써야 할 곳에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써야 할 곳으로 다음 사항을 들었다. 애써 사람답게 살려고 하는데 곤궁
함을 면치 못하는 사람, 전쟁으로 과부가 되거나, 고아가 된 사람, 아들 딸을 잃
어 무의무탁한 노인 등이다.
노자는 “재물이란 그것을 덜어낼수록 보태어지고, 그것을 보탤수록 줄어든다
”고 하여 고아, 과부와 가난한 자에게 돈을 쓰면 쓸수록 부태어지고 이런 데
인색하면 재산이 점점 줄어든다고 하였다.
하여간 ‘아낌 없이 돈을 써도 부유해지는 사람이 있고 지나치게 아껴도 여전
히 가난에 찌들은 사람이 있다’고 성경의 잠언은 기록하고 있다. 선한 일에 아
낌없이 돈을 쓰는 사람은 더욱 부유해질 것이며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게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너는 물질을 후하게 나누어 주어라. 언젠가는 그것이 너에게 되돌아올 것이
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이 땅 위에 무슨 재난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
돈과 인간관계
“부자는 자기 몸을 괴롭히면서 일을 하여 많은 재산을 모으지만 그 재산을
자기를 위하여 쓸 수가 없다”고 장자는 말하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죽기 아니
면 까무러치기로 돈을 벌어 그것으로 자기를 위하겠다는 생각은 그릇된 것이라
는 말이다.
KAL기 괌 추락사건을 보면, 수천억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 자기 부인과 아들,
며느리, 손녀, 딸, 외손자들과 같이 휴가 여행을 가다가 모두 죽은 일이 벌어졌
다. 그런데 그가 남긴 수천억의 재산은 혼자 남은 사위에게 돌아갔다. 이렇듯 큰
돈이 있어도 죽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돈을 사랑하는 자는 그 돈으로 만족을 얻지 못하고, 부유하기를 바라
는 자 역시 그 수입으로 만족을 얻지 못한다고 성경의 전도서는 전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다는 말이다.그런데 현실적으로 재산이 늘
어나면 늘어나는만큼 소비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또 늘어난 재산을 관리하다 보
면 걱정과 근심이 끊임없이 늘어난다. 그러므로 일정 이상의 재산이 불어나게
되면 소유주의 눈과 귀만 즐겁게 하는 것 외에 아무런 유익이 없다.
솔로몬은 우리에게 “노동자는 먹을 것이 많든 적든 단잠을 잘 수 있으나 부
자는 재산이 많으므로 이것 저것 생각하고 걱정을 하다 잠을 자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그는 이어서 ”나는 이 세상에서 헛된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자식
도 형제도 없이 혼자 살면서 억척스럽게 일하며 모은 자기 재산을 만족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는 즐거움을 마다하고 누구를 위해 그처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일
을 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결론
솔로몬은 이러한 모든 일들이 헛된 것이며 불행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가진 것이 없더라도 마음이 편한 것이 많은 것을 가지고 정신 없이 일하는 것보
다 낫다고 하였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자라고 한다. 욕심을 버리고 현실에 만족하는 삶이
어야 부유하고 행복하다는 말이다.
노자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면 그 자리가 위태롭고, 얻기를 탐하면 잃기가
쉽다. 심히 아끼면 썩기가 쉽고, 많이 지니면 반드시 크게 잃는다.”고 하였다.
그는 ‘만족할 줄 아는 풍족함이라야 언제나 풍족하다’고 하였다.
노자가 부자나 돈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렸든 간에, 돈이나 재물은 ‘그것을
얻기 전까지는 그것을 얻기 위해 걱정과 근심을 하고, 또 그것을 얻고 나면 이
미 얻은 것을 잃을까봐 걱정하고 근심한다’고 공자는 논어에서 밝혔다.
돈이 있으나 없으나 걱정과 근심은 똑같다는 말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걱정 근심하느니 보다 이미 얻어놓은 것을 잃을까봐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이 훨씬 더 좋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잘 먹고 죽은 시신은 때깔도 좋다’란 말은 그래서 생겨났나 보다.
멍첨지
영국의 계관시인 테니슨(1809~1892)은 돈과 초연한 것같이 “고요함 외에는
기쁨이 없다”고 말하였으면서도 다음과 같이 읊었다.
세상만사 금전에 좌우되나니, 돈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 하느니라.
Ever door is barr`d with gold, and opens but to golden keys.
그는 많은 사람들이 실패의 쓴 잔을 마시고 성공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고 하
였다. 그는 돈을 벌기가 대단히 어렵고 힘드는 일이라고 우리에게 경고하였다.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리지 못한다고, ‘칼국수’를 상식
하는 대통령이 말했듯이 아무리 지혜로운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도 돈만 주면 얼
마든지 불러다 쓸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 것같다.
공자와 같은 분도 돈을 많이 벌고 싶어했으나 벌지 못하자,
“거친 밥을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워도 즐거움이 그 곳에 있느니...”
하는 등의 변명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잔치는 즐기기 위한 것이며 포도주는 흥을 돋구기 위한 것이지만 돈은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솔로몬도 말했다. 돈에 침 뱉는 사람 없다. 돈이 싫은 사람
이 있으면 나 여기 있소 하고 나와보라!
돈이면 개도 멍첨지이다.(A golden key can open any door.)
금 열쇠는 어떤 문이라도 열 수 있다. 금 열쇠란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돈이
다. 세상에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이다.
나쁘게 번 돈
지혜의 왕 솔로몬은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재산은 아무런 유익함이 없으나
정직은 생명을 구한다’고 하였고 ‘의로운 자의 수입은 선한 일에 쓰이지만 악
인이 번 돈은 죄를 짓는데 쓰인다’고 하였다. 아울러 공자는 의롭지 못한 부귀
는 나에게 뜬 구름과 같다’고 하였다.
나쁜 짓이나 부정을 저질러 축재한 재산은 방탕한 일이나 향락에 쓰여지게 되
어 쉽게 없어진다. 그래서인지 사기꾼치고 잘사는 사람이 없다.
산 속에 그물을 쳐놓으면 교활한 여우는 걸리지 않고 아름답고 착한 꿩만 덫
에 걸려 퍼득인다. 나쁜 짓 하는 사람은 날뛰고 설치는데 올바른 행동을 하는
사람은 궁지에 몰려 있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모두 오래 가지 못하고‘큰 집’에서 수의를
입고 강제로 도를 닦게 된다.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필히 재앙이 따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남을 속여서 얻은 재물이 맛있는 음식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얼
마 안 가서 입 속의 모래알 같이 변할 것이다’라고 하였고 ‘속여서 얻은 재산
은 사라지는 안개와 같고 죽음의 덫이다’고 하였다.
부정하게 번 돈 때문에 두명의 전직 대통령을 비롯하여 현직 대통령의 아들까
지 감옥에 가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돈’은 없어져 버리고 몸만 죽음의
덫에 걸려 있는 셈이다.
모든 재물을 정당하게 자기 노력으로 얻어라. 그래야 그 재산이 오래 가는 법
이다. 어긋나게 들어온 재물은 어긋나게 나가게 마련이다.
악하게 번 돈은 악하게 쓰여진다. (What`s rot over the devil`s back is spent
under his belly.)
수입과 지출
사람은 누구나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말이 있듯이 천한 일이라도 열심히 벌어서 떳떳하게 살면 된
다.
성경의 잠언은, ‘지혜로운 사람은 앞날을 위해서 저축하나 미련한 사람은 닥
치는 대로 써버린다’고 전하고 있다. 돈을 힘들여서 번 사람은 돈을 무척 아껴
쓴다. 지갑을 꺼낼 때, 물건을 살 때에도 신중을 기하고 일시적인 기분으로 돈을
쓰지 않는다. 돈을 버는대로 쓰게 되면 국가나 가정 모두 적자에 허덕이고 날마
다 외상이요, 빚에 쪼들리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생활하여야 한다. 쓸 재
산이 없는 상태에서 호화생활을 유지하려면 부정한 방법을 저지를 수 밖에 없
다.
예기는 ‘집안 살림은 수입을 헤아려서 지출을 알맞게 해야 한다’고 밝힌다.
예는 사치하기보다 검소한 것이다. 분에 넘치는 생활은 예의에 벗어나는 허례라
는 것이다.
‘검약하는 사람은 잃는 것이 적다’고 논어는 전한다. 언행이 신중하고 물질
을 검약하면 실패없는 삶을 산다. 인생을 헛되게 살아야 할 필요가 없다.
수입의 한도에서 생활하라. (Keep no more cats than will catch mice.)
빚진 자의 마음
사랑의 빚을 지는 것 말고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말라. 이는 성경의 로마서
가 전하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만사 이처럼 되지 않기 때문에 성경에서 그렇게
하도록 권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남에게 돈을 빌려 쓰고 제날짜에 갚지 못하면 빚진 죄인이 된다. 채무자는 채
권자 앞에 서면 죽어가는 소리로 간청하지만 채권자는 거만하게 큰 소리로 대답
한다.
채권자는 채무자보다 더 좋은 기억력을 갖고 있다. 채권자는 받을 빛을 ‘기
름 먹은 종이’ 위에 써놓기 때문에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빚을 지게 되면 자기의 생계를 남에게 맡기는 것처럼 자유스러워질 수가 없
다. 오죽하면 빚이 없는 자는 가진 것이 없더라도 부자라고 하였을까. 외상이라
면 소도 잡아먹는 우리는 할부빚, 카드빚, 은행빚 등에 쪼들린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그러한 ‘빚’들의 ‘종’이 되어 있다.
남에게 돈을 빌리러 가는 것은 슬픔을 자초하는 행위이다. 빚을 지는 것은 ‘
언 발에 오줌 누기’와 같이 잠깐 동안은 따뜻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더욱 상태
를 악화시킨다.
마약과 같은 빚, 쓰면 쓸수록 중독이 되어 회생 불능이 된다. 빚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돈 빌리러 가는 자의 발걸음은 항상 무겁다. (He that goes a-borrowing,
goes a-sorrowing.)
얼마 전 우리를 경악시켰던 박초롱초롱빛나리 양 유괴 살인 사건의 용의자인
전모 여인도 범행도익가 카드빚 400만원을 갚기 위해서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빚을 쓰는 일은 파멸을 자초하는 일이다.
빚 갚을 날
마음은 기운을 거느리고, 기운은 몸을 거느린다고 맹자는 말했다. 몸의 모든
부분은 마음에 의지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세속에서는 그 마음은 돈 지갑에 의
지하고 있다고 말한다.‘돈이 없으면 마음이 허전하다’는 말이 그것이다. 날은
저물어 가는데 낯설고 물설은 타향 땅에 ‘땡전 한 닢’ 없이 서 있어 보라.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마음이 돈 지갑에 의지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체험할
것이다.
남에게 빚을 진 사람은 정한 기일 내에 갚지 못하면 죄인 취급을 받는다. 그
래서 ‘빚진 사람은 빌려준 사람의 종이 된다’고 성경은 말하였다.
그런데, 빚을 쓸 때는 언제 갚겠다는 기한을 정하지 말아야 한다. 갚겠다는 기
약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누가 선뜻 돈을 빌려주겠느냐마는, 갚을 돈이 준비되
기까지는 언제 갚겠다는 말은 될 수 있으면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왜냐하면
갚을 날짜를 정하고 그 날짜에 갚지 못하면, 빚은 빚대로 졸리고 거짓말쟁이도
되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졸릴 때 졸리더라도 거짓말쟁이는 되지 말라는
말이다.
솔로몬은 그래서 “네가 약속한 것을 이행하라. 약속하고 이행하지 않는 것보
다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약속한 것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지키고, 못 지킬 약속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그래도 빚쟁이들이 돈을 갚을 날짜를 정하라고 ‘피를 말리듯’이 조르면, ‘
참다운 신의는 약속이나 맹세같은 형식에 매이지 않는다‘는 예기의 말을 전해
주라. 아무리 지키려 해도 지킬 수 없는 것을 약속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빚 갚을 날을 정하지 말라.(Speak not of my debts unless you mean to pay
them.)
빚을 갚으면
서로 사랑의 빚을 지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말라고 성경은 말하
고 있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돈을 꾸거나 꿔주지 않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
다.
남에게 돈을 빌렸다가 정한 날짜에 갚지 못하면 ‘빚 쓴 죄인’이 되어 채권
자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한다. 그러다가 빚을 갚게 되면 앓던 이가 빠지듯, 꽉
막혀 있던 하수구가 뚫려 허드렛물이 쫙 빠져나가듯, 그 시원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과는 인생을 논할 값어치가 없다 하듯,
‘빚쟁이’에게 시달려 보지 못한 사람과 인생을 말해 봐야 구두 신고 가려운
발을 긁는 격이다. 도무지 시원하고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기 때문
이다.
채귀
몹시 조르는 빚쟁이를 채귀라고 한다. 이런 말을 채권자가 들으면 몹시 원통
해하고 분하게 여긴다.
집 사는 데 보태려고, 아이들 교육비로 쓰려고, 남편 보약 사주려고 한푼 두푼
모은 ‘깨소금’같고 ‘구렁이 알’같은내 돈, 금방 쓰고 돌려준다는 말만 믿고
빌려주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차일피일 미루기만 할 뿐 갚아주지 않는
다. 이러다 떼이는 건 아닐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심사는 헤아려 주지 못할망정, 빚 독촉 몇 번 했다고 ‘채귀’라니, 바늘
로 이마를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악질 유태인 ‘샤일록’같단 말인가?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채무자의 입장도 보자. ‘돈’을 집에 쌓아놓
고, 사람의 피를 말리는 채귀에게 시달리는 어리석은 짓을 할 사람이 있을까?
차라리 마른 나무를 짜내어 물을 얻는 것이 쉽지, 아무것 없는 가난한 사람을
독책하여 없는 것을 만들어 내라면 무엇을 내놓을 수 있단 말인가?
빚을 받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채무자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면서 그가 정신
을 차리게 하여, 빠른 시일내에 벌어 갚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하늘나라식 빚 청산
성경 마태복음에 나오는 하늘나라식 빚 계산 방식을 보자. 빚 계산이 시작되
자 만 달란트를 빚진 종이 왕 앞에 끌려왔다. 왕은 빈털터리인 종에게 아내와
자식을 팔아서라도 갚도록 명령했다.
종은 왕 앞에 엎드려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그러면 갚아드리겠습니다”며
울면서 간청했다. 종의 눈물어린 하소연에 마음이 엷어진 왕은 그를 동정하여
그의 빚을 모두 탕감하여 주었다.
뛸 듯이 기뻐한 종은 서둘러 이 소식을 마누라에게 알리려고 집으로 뛰어가다
가 자신에게 백 달란트를 빚진 이웃 마을의 다른 종을 만났다.
그는 대뜸 “요놈 잘 만났다. 그렇지 않아도 네 놈의 행방이 묘연하여 미칠
지경이었는데 잘 만났다. 내 돈 내놔라!”하고 악을 쓰면서 그의 멱살을 붙들고
늘어졌다.
종은 무릎을 꿇고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 그에게 조금만 기다려주면 갚겠다
고 했으나 그는 들은 체도 않고 그를 끌어다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옆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다른 종이 그가 하는 짓이 몹시 괘씸하여 왕에게 가서 이 사
실을 이실직고하였다.
화가 몹시 난 왕은 그 종을 다시 불러 “네 이놈, 나는 네가 눈물로 간청하기
에 너의 빚을 모두 면제해 주었다.그렇다면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겨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하고 호통쳤다. 왕은 그를
감옥에 집어넣으라고 명령하였다.
사랑의 빚
물질적인 빚을 진 자에게 그 빚을 ‘면제’를 해준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정신적인 빚, 즉 남을 미워하고 중상하고 모략한 빚은 얼마든지 면제해
줄 수 있는데도 우리는 그러한 일에 너무 인색하다.
이러한 ‘빚’청산은 ‘돈’이 드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
든지 가능하다. 진심으로 주위 사람을 용서하여 주고 또 용서를 받을 일이 있으
면 받아라! 그렇지 않으면 만 달란트 빚진 종과 같이 감옥에서 가슴을 치고 이
를 갈면서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빚을 갚으면 앓던 이가 빠진 것같이 시원하다. 빚을 진 사람은 노예와 같고
자유스러운 행동을 할 수가 없다‘
빚을 갚으면 앓던 이 빠진 것 같이 시원하다. (Out of debt, out of danger.)
6. 지혜의 샘
간결함은 지혜의 샘이다.
무지한 사람의 꿈은 틔우기 쉬워도 설익은 지식을 뽐내는 자의 꿈은 틔우기
힘들다. 무엇에 혹해 있는 사람을 설득하기란, ‘하루살이’애개 ‘내일’과 ‘
모래’를 설명하는 것처럼 어렵다. 종교를 모르는 사람보다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을 설득하기가 훨씬 힘든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유
무덤에 부채질
장자가 산책하던 중 상복차림의 여인이 무덤 옆에서 부지런히 무덤에 부채질
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호기심 많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그가 그 여인 옆에 가서 물었다.
“무덤 속에 계신 분이 누구십니까?”
“제 남편입니다.”
“남편이 화병으로 돌아가셔서 그 화를 식혀 드리려고 부채질을 하시는지요?
”
“아녜요. 남편은 술에 취해 물을 건너다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래서 남편 몸의 물기를 바짝 말려 하늘나라에 보내시려고 부채로 부치고
계시는군요?”
“아녜요, 제가 부채를 부치고 있는 것은 남편의 시체가 아니고 무덤의 흙입
니다.”
“아니, 무덤에다 부쳐요,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남편이 죽기 전 나에게 자신의 무덤 흙이 마르기 전에는 절대로 다른 사내
에게 시집가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빨리 무덤의 흙을 말리기 위
하여 이렇게 부지런히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첩
중국 노나라 사람 하나가 멀리 장사를 나갔다. 그 사이 그의 아내는 딴 남자
와 눈과 배를 맞추었다. 남편이 돌아올 날이 가까이 오자 간통한 남자가 걱정을
태산같이 하면서 안절부절하였다. 여자가 말했다.
“근심할 것 없습니다. 남편이 돌아오면 독약 탄 술을 먹여 영원히 잠재워 버
리고, 우리 서로 마음놓고 삽시다.”
며칠이 지나자 남편이 집에 돌아왔다. 아내는 첩을 시켜 독약을 넣은 술을 갖
다주게 하였다.
첩은 술에 독약이 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고 싶었으나, 말하면 그
아내가 죽을 것이고 하지 않으면 남편이 죽을 것이므로, 둘 다 살리는 방법을
썼다. 거짓 쓰러지는 척 하면서 술잔을 뒤엎어 버린 것이다. 화가 난 남편은 첩
을 채찍으로 여러번 때렸다고 한다.
무덤에 부채질하고 술잔을 뒤엎는 등 해괴망칙하게 보이는 행동에도 반드시
그 까닭이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남이 이상한 행동을 하면 그 행동을
비웃지 말고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여야 한다. 그러고 보면
반드시 곡절이 있게 마련이다.
자기를 살려준 현명한 첩을 채찍질하는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이 이 세상에 너
무 많다.
처녀가 아기를 가져도 할 말이 있다. (There is reason in the roasting eggs.)
간결함의 지혜
촌철살인이란 말이 있다. 촌이란 성인 남자 손가락 하나의 폭을 말한다. 촌철
이란 한 치도 못되는 칼날을 말하며, 살인은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 아니라 속된
마음의 생각을 없애준다는 뜻이다. 간단하고 짧은 말로 문제의 핵심을 찔러 사
람을 감동시킬 때 쓰는 어구이다.
‘말이란 뜻을 전달할 따름이다’라고 논어는 말한다. 말과 문장은 뜻을 나타
내는 수단이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 상대에게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하면 충분하
다. 공연히 말을 붙이거나 늘어놓으면 진실성이 없어진다. ‘말은 전체의 뜻을
뚜렷이 하면서 간결해야 한다’라고 서경은 말하므로 함부로 늘어놓지 말아야
한다.
또 주역에 이르기를 ‘글은 하고자 하는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말은 가지
고 있는 뜻을 나타내지 못한다’고 하므로, 말이나 글은 아무리 늘어놓아 봐야
뜻하는 바를 모두 표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간단하고 짧게 하는 습관을 기르자. 간단한 말은 웅변
과도 같다고 하지 않는가? 셰익스피어의 명작 <햄릿>에서 노신 포로니어스가
왕과 왕비에게 햄릿의 정신상태를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간단하고 짧은 말이 사람을 감동시킨다고 하므로,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아
뢰옵기 황송하오나 그는 미쳤습니다.”
짧고 재치 있는 대화를 보자.
말이 많기로 유명한 이발사가 손님에게 물었다.
‘머리를 어떻게 깍아 드릴까요?’
‘가능하다면 조용히 입을 다물고 깍아주세요.’
간결함은 지혜의 핵심이다.(Brevity is the soul wit.)
여기서 'the soul of wit'는 ‘essence of wisdom'의 뜻으로서 wit는 유머를
뜻하지 않고 의사전달의 측면에서 재치나 기지를 뜻한다. 짧고 간결해야 재치를
더하게 된다는 말이다.
불에 놀란 아이
어떤 일에 크게 낭패를 보거나 혼이 난 경우 그에 대한 경험은 쉽게 머리 속
을 떠나지 않는다. 불에 데인 어린아이는 또 데일까 무서워 불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고 하고, 개에게 한번 물리고 나면 개를 겁내기 마련인 이치와 같다.
<삼국지>의 제갈공명은 출사표를 올리고 위나라와의 결전을 위해 싸움터에
나갔다. 그는 위나라의 사마중달을 계략을 써서 여러번 속였고 이에 중달은 점
차 공명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하지만 제갈공명과 같은 기재도 천수는 어떻게
할 수 없었던지 의도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54세의 나이로 병에 걸려 죽었다.
제갈공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마중달은 그것 역시 제갈공명의 계책으로
알고 군대를 거두어 갑자기후퇴하였다.
백성들이 이 사실을 알고 ‘죽은 제갈공명이 산 중달을 도망치게 하였다’고
하며 중달의 겁 많음을 비웃었다.
하지만 사마중달은 쓴 웃음을 지으면서, “살아 있는 사람의 책략이라면 쉽게
간파할 수 있으련만, 죽은 사람의 책략인데 어떻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인가?”라
고 말했다 한다.
땡볕에 더위 먹은 소는 달빛만 봐도 헐떡거린다고 하며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은 빈말이 아닌 게 틀림 없다.
불에 놀란 아이 부지깽이만 보아도 놀란다. (A burnt child dreads fire.)
최선을 다하는 일
세상에는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일이 많다. 이렇게 속수
무책의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사람들은 여러 가지 주위 여건에 대하여 불
평 불만을 토로한다.
우리로서 어찌할 수 없는 능력 밖의 일이면 이를 인정하고 참아내야 한다. 사
막의 건조한 기후 조건, 열대지방의 무더운 날씨 등 정해진 상황에서 도저히 개
선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평보다 오히려 용기를 갖고 이를 극복해 내라는 말이
다. 특히 천재지변 등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하늘에 대한 원망만 늘어놓고
앉아 있지 말고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여기서부터 새로운 수습방향을 찾아봐
야 한다.
장자는 물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이를 길게 이어주면 물오리가 괴로워 할 것이
요. 학의 다리가 길다고 이를 잘라주면 학이 슬퍼할 것이라고 하였다. 사막은 사
막대로, 열대 지방은 열대지방대로, 긴 다리는 긴다리대로, 짧은 다리는 짧은 다
리대로 다 쓰여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어 있는 독이 있어야 술을 빚어 채워넣을 수 있듯이 무엇을 만들어 내려면
공간은 늘 비어 있거나 가난해야 한다. 공간이 비어 있다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채워질 것이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쓸 데 없는 희망’을 버림으로써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다. 모
든 사람이 목재로 쓰겠다고 심어놓은 나무를 잘라낼 때 혼자라도 새로운 나무를
심는다는 각오로 대처해 가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자.(What can`t be cured must endured.)
시체와 독수리 떼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여들 듯, 비린 생선에 쉬파리가 모여들 듯, 돈
과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모이게 마련인가 보다.
중국 조나라 사람 염파는 군인으로서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자 고향 사
람과 친척은 물론이고, 줄을 잡아 입신양명하려는 사람들이 그의 집에 문전성시
를 이루었다.
그런데 얼마 후 그는 자리에 복직되었다. 다시 그의 집에 선물꾸러미가 쌓이
고 안부조차 묻지 않았던 사람들이 몰려와서 갖은 아첨을 하기 시작했다.
염파는 이들의 행동에 화가 나서 이들에게 물러가라고 고함을 쳤다.
그 때 노인 한 사람이 나서더니,
“그대는 생각이 어찌 그렇게 어리석소. 그대에게 세도가 있을 때 우리가 좇
고 세도가 없었으면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는가? 그대가
세도가 있을 때 우리가 찾아보지 않으면 그대는 더욱 역정을 낼 것이오!”라고
말하였다.
복숭아와 살구나무는 좋은 꽃과 열매를 맺으므로 구태여 사람을 청하지 않아
도 사람들이 절로 모여들기 때문에, 그 밑에는 자연히 길이 생겨난다.
그러나 깊은 물이 얕아지면 오던 물고기도 오지 않는다. 참으로 용렬하고 헛
된 일이건만 사람들은 반성할 줄 모른다.
시체가 있는 곳에 까마귀가 몰려드는 것을 어찌 나무랄 수 있는가? 그러므로
개가 꼴 보기 싫으면 개 먹을 뼈다귀 없는 낙지를 사듯, 까마귀가 싫으면 시체
를 그 곳에 놓지 않으면 된다. 그런 부류의 사람이 싫으면 그런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된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 떼가 모이게 마련이다. (Where the carcass is, there
shall the eagles be gathered together.)
나쁜 일
화불단행,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또다른 어려운 일이 뒤따른다는 말이다. 어려
운 일이 닥쳐 허둥대다 보면 다른 위험에 적절히 대비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
다. 그래서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듯, 어려
운 일이 닥칠수록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영국 시인 헤릭(1591~1674)은 <슬픔이 계속되는 인생>이라는 시에서,
‘한가지 걱정이 지났다 하면,또 다른 걱정이 다가와 있고, 고통과 비애는 파
도가 치듯이 계속되는구나’하고 읊었고, 영국의 계관시인 메이스필도
(1878~1967)는 헤릭보다 좀 더 현대적인 어투로, ‘개떡같이 힘든 일이 계속되는
것이 인생이다‘라고 하여, 사는 것 자체가 항상 고난의 연속임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노자는 도덕경에서 ‘아무리 강한 회오리 바람이라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강한 소나기라도 하루종일 오는 법이 없다. 누가 이러한 자연현상을 일
어나게 하는가? 그것은 천지이다. 천지조차 그런 것을 오래 가게 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아무리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
겹쳐오더라도 참고 견디다 보면 해결된다는 말이다.
눈 위에 다시 서리가 내리듯이 재앙은 겹쳐서 오게 마련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어려움을 쉽게 이겨나갈 수 있다.
나쁜 일은 겹쳐서 일어난다. (Misfortunes never come singly.)
아름다움을 보는 눈
아름다움이란 사람이 감성과 이성의 조화를 통하여 사물을 보았을 때 느끼는
기쁨과 만족을 말한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이란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노자는 ‘세상 사람이 아름
다움이라 알고 있는 아름다움은 참다운 아름다움이 아니다’라고 하여 보는 이
의 주관성을 인정하였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없다. 장자는 달과 꽃이 부끄러워 하고 물고
기가 자신의 자태를 감추고 기러기가 넋을 잃고 떨어질만한 미와 총명을 겸비한
여자를 구했던 사람이다. 그는 그러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람으로 서시를 들고
있는데 ‘서시가 가슴을 부여잡고 있다’는 한 이야기를 보기로 하자. 서시는
가슴앓이 병을 앓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언제나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찌푸
리고 있었다. 이것이 서시가 지닌 매력의 키 포인트였다. 어느날 같은 마을에 사
는 추녀가 서시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서시와 같이 가슴에 손을 대고 눈을 찌
푸리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움’을 과시하였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그 꼴이 보기 싫어 문을 잠그고 집에서 나오지 않았고
어떤 사람들은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그녀는 서시의 ‘찌푸린 아름
다움’을 알기는 하였으나 무엇이 서시를 ‘아름답게’ 하였는지를 몰랐던 것이
다.
아름다움이란 보는 사람의 견해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의 눈은 외부세계를 반
영시켜 주지만 우리의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판단할 때 들어난 겉모습만 보고서 판단하지 말고 속마음까지 들여다 보아야 한
다.
아름다움이란 보는 눈에 따라 달라진다. (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
아름답고 추함은 상대적인 개념일 수 밖에 없어서, 보는 관점에 따라 추함이
아름다움이 될 수 있고 아름다움이 추함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배수의 진
중병에는 극약 처방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극히 위독한 병은 아찔하게 현기증
이 날 정도로 강한 약을 쓰지 않으면 효험을 낼 수가 없다고 서경은 말한다.
현대 의학에서 난치병으로 남아 있는 암의 경우, 치료제는 아주 강한 독성을
갖고 있다. 암의 치료가 어려운 것은 치료약이 암세포만 선별적으로 골라 죽이
지 못하고 주위의 정상세포까지 파괴하는 부작용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이러한 부작용을 뻔히 알면서도 암에 걸린 사람에게 성패가 반반인 극단적인
치료법을 쓰고 있다.
생사가 달린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는 극단적인 처리 방안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대처방안은 위기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신의 배수지진
한나라 왕 유방은 한신에게 명하여 강국인 조나라를 치게 하였다. 조나라는
20만 대군을 좁은 협곡길이 있는 정형이라는 지역에 집결시켰다.
한신은 조나라 군사보다 턱없이 적은 수인 1만의 군대로 정형의 입구에서 강
을 등지고 진을 쳤다.이러자 조나라 군대는 이것을 보고 병법도 모르는 자라고
크게 비웃었다. 한신의 군대는 조나라 군사가 있는 성 앞까지 와서 싸우다가 패
배를 가장하여 도망하여 강을 등지고 있는 군대와 합병하였다.
조나라 대군이 추격에 나서자, 한신은 성 주위 산간에 매복시켰던 2,000의 경
기병으로 하여금 성을 점령하게 하였고, 나머지 8,000 여 군사는 강을 등지고 죽
기 아니면 살기로 싸워 조나라 대군을 섬멸하였다.
손자병법
한신은 손자병법에 ‘사지에 몰아넣으면 살고 망지에 두면 멸망하지 않는다’
는 말이 있다고 하면서,“오합지졸과 같은 군사들을 생지에 내놓으면 모두 살기
위해 도망을 가나, 이들을 사지에 두면 살기 위해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운다.
그렇기 때문에 큰 힘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면 반드시
용기가 넘친다. 죽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죽음에 처하기가 어렵기 때
문이다“고 하였다.
예수는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지만, 이 세상의 자
기 목숨 버리기를 무서워하지 않으면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였다.
적을 치기 위해 강을 건넌 후, 타고 온 배를 불사르는 결사의 각오로 어려운
일을 대하면 꼭 해결되기 마련이다.
위기가 닥치면 배수진이 필요하다. (Desperate diseases must have desperate
remedies.)
수녀와 신랑감
지천으로 굴러 다니는 개똥도 약에 쓰려고 찾으면 구할 수 없다고 한다. 여느
때 흔하던 것도 필요해서 찾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중이
되니 고기가 흔하다’고 하듯이 먹어도 될 때는 없다가 못 먹을 때가 되니 흔해
지는 게 그렇다.
노처녀로 있을 때 마땅한 신랑감을 못 구해 안달했다가 막상 수녀가 되니 일
등 신랑감이 줄을 서는 예라고나 할까. ‘버스 지난 후에 손 들고’,‘사또 행차
뒤에 나팔 불기’이다. 같은 뜻으로 서양에서는 ‘하느님은 이빨이 없는 사람에
게만 호두를 주신다’고 한다.
우리의 인생을 뒤돌아 보면, 필요한 것은 귀하고 우리가 사용할 수 없거나 필
요 없는 것은 흘러 넘치는 일이 자주 목격된다. 사막에서는 물이 귀하고 홍수가
난 곳에서는 물이 흘러 넘치듯이.
사후약방문이라고, 죽고 난 후 처방이 나오면 아무 쓸모가 없다.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이를 열심히 활용해야 한다.
혹,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크게 낙담할 필요는 없다. 삶이란 원래 풍요 속에
서도 없고, 없는 가운데서도 있기 마련이니까.
수녀가 되고 나니 신랑감이 흔하다. (The gods send nuts to those who have
no teeth.)
윗물과 아랫물
시장에서 물고기를 고를 때는 머리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물고기는
썩을 때 항상 머리부터 썩기시작한다. 그래서 고기의 신선도를 알려면 눈동자와
아가미를 들춰보는 게 제일 빠른 방법이다.
국가나 회사 그리고 가정을 막론하고 지도자가 부패하거나 나쁜 짓을 하면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썩게마련이다. 지도층 인사가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고 법
도에 맞게 처신하면 아랫사람들은 자연히 따라간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맹자는 “자기의 길을 굽히고 부정을 일삼는 사람이 남의 잘못을 고쳐주었다
는 예는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논어에서도 ‘자신을 바로잡지 못하면서 어찌
남을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하고 말한다. 그래서 군자는 하류에 있기를 싫어
한다고 하였다. 강의 하류는 더러운 물의 집산지이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올바르면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고 한 예기의 구절이나 ‘근원이 흐
리면 그 흐름이 맑지 않다’고 한 묵자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The fish always stinks from the head
downward.)
외투를 벗기는 따뜻함
식초보다 꿀에 개미나 날파리들이 더 많이 모여들 듯이, 명령조의 말보다는
부드러운 말이 더 큰 효과를 낸다. 온순한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격한 말은
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할 때에 곧되 온화하게, 너그럽되 엄하게, 굳세되 사납지 않게, 오
만하지 않게 대해야 한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존경할 것이다’라고 서경은 전
한다.
말이 순한데 따르지 않으면 좋지 못하고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들어 보지 않
고 자기 주장부터 내세우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춘추는 가르치고 있다.
강한 것이 해로울 때가 있고 유약한 것이 좋을 때가 있다. 강한 바람보다 따
뜻한 햇볕이 외투를 벗기듯, 말은 부드럽게 하는 것이 좋다.
얼마 전 패스트푸드 식당 화장실에서 어깨를 부딪쳐 서로 시비를 겨루다 18세
의 재미교포 학생이 22세의 대학생을 칼로 찔러 죽인 일이 있었다. 어깨가 부딪
쳤더라도 부드럽게 ‘죄송합니다’ 한마디만 했더라면 한 사람은 ‘살인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숟가락을 놓고’ 하늘나라로 가지 않
았을 것이다.
물론 못된 사람 중에는 이렇게 생명의 나무처럼 부드러운 말을 하는 데도 기
어오르는 사람이 있다. 악인은 칼로 찌르는 것 같은 뼈아픈 말을 함부로 지껄여
대나 지혜로운 자의 말은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 준다고 성경은 말한다. 부드러
움이 강함을 이길 수 있다. 악한 말은 부드럽게 맞받아 주자.
강한 바람보다 따뜻한 햇볕이 외투를 벗긴다.(Honey catches more files than
vinegar.)
모르는 게 약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연인과 잘 조리된 스테이크를 먹을 때는 음식의 맛
과 향만을 즐기면 그만이다.
소가 죽을 때 소리지르는 장면이나 도살장에서 소 껍질이 벗겨지고 고기가 잘
리는 모습을 연상하여 입맛을 떨어뜨릴 이유가 없다. 미녀 선발 대회에서는 예
쁜 아가씨들의 아름다움만 감상하면 되지. ‘저 아가씨는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를 생각하여 즐거운 기분을 잡칠 필요가 없는 거와 같
다.
모르는 게 약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남자는 여자가 첫사랑이었으나 여자는 과거에 사랑했
다 헤어진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좋아했고 마침내 결혼 생활을
시작하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행복감에 젖은 남편이 슬며시 아내에게 ‘ 과거’가
있느냐고 물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아내는 처음에는 과거가 없다고 단호
히 말했다. 하지만 행복에 겨운 나무꾼이 선녀에게 옷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듯,
장난 섞인 남편의 거듭된 질문에 여자는 결국 지난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말았다.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과거라도 용납할 것 같던 남편은 말을 듣고 난 후부터
번민하기 시작했다.
잠자리에서 돌아눕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머리’로는 아내를 이해할 수 있
었지만, ‘가슴’은 그녀의 과거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시험
남자나 여자나 모두 상대방의 진심을 시험해 보고 싶어한다.하지만 시험을 하
지 말아야 한다. 모르는 게 약이고, 시험해 보고자 하는 생각 자체가 옹졸한 욕
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해 주십시
오.’라는 예수의 주기도문을 머리 속에 떠올려야 한다.
사람은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행복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알았다 해서 행복에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질투는 꼭 현재의 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두고 미래에 대한 짐
작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질투와 파탄을 일으키는 과거의 일, 알고서 걱정과 근
심으로 보내는 것보다 모르고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노자는 이 점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견해를 표시했다.
‘사람들이 학문에 대하여 열심히 배우려고 하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걱정,
근심이 생겨난다. 학문이란 것을 배우지 않으면 이 세상에 걱정거리가 없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 (Where ignorance is bliss, it is folly to be wise.)
원효대사는 중국에 도를 닦으러 가다가 그만둔 일이 있다. 중국에 가던 도중
칠흑같이 캄캄한 밤에 굴속에 들어가서 잠을 자다 목이 말라 옆에 있던 ‘바가
지’의 물을 먹고 갈증을 풀었다. 아침에 깨어나 보니 간밤에 시원하게 마신 바
가지의 물은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 그는 ‘모르는 것이 약이다’는 사실을
크게 깨달은 후 그 곳에서 성불하였다고 한다.
충고 받아들이기
아무리 좋은 지적이나 충고를 해 주더라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
현들은 ‘그냥 내버려 두라’고 답하고 있다. 공자는 “충고해서 잘 이끌어 주
되 듣지 않으면 그만 둘 수 밖에 없다”고 하였고 장자는 “항상 무엇엔가 혹해
있는 사람은 평생을 가도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논어는 말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에 입각하기 때문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착각을 맹신하기
때문이다. 유사종교나 사교에 빠진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착각’을 진리로 맹
신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맹수는 항복시킬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항복시키기 어렵고, 깊은 골짜기는
메울 수 있으나 사람의 마음의 꿈은 만족시키기 힘들다고 주역은 말하고 있다.
그래서 무지한 사람은 열매 맺을 수 있어도 설익은 지식을 뽐내는 자는 꿈을 이
루기가 힘이 든다고 하였다.
말을 물가까지 끌고 갈 수 있으나 강제로 물을 먹일 수 없다. (You can take
a horse to the water, but you can't make him drink.)
방심
그리스 신화를 보자.
제이슨의 배인 아르고호의 조타수 앤키어스는 자기 종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예언을 들었다.
“주인님은 주인님이 일구어 낸 포도원에서 생산된 첫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죽을 것입니다.”
그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는 집어치우라고 말하며,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벌을 내리겠노라고 종을 꾸짖었다.
얼마의 세월이 지난 후 앤키어스는 포도원에서 생산된 첫 포도주를 앞에 놓고
종을 불러 그의 예언이 터무니 없는 엉터리라며 조소를 보냈다.
그러나 그 종은 “틀림없이 되는 쉬운 일, 즉 컵을 입에 대고 마시는 것과 같
은 일에도 실수가 있게 마련입니다.“고 말했다.
바로 그 때 다른 종이 급히 뛰어와서 앤키어스에게 포도원 멧돼지 한 마리가
들어와 엉망진창을 만들고있다고 보고했다. 앤키어스는 마시려던 포도주 잔을
내려놓고 급히 나가서 멧돼지를 붙잡으려 했으나, 날뛰는 멧돼지에 받쳐 목숨을
잃었다. 종의 예언과 같이 첫 포도주를 마시지도 못하고 죽은 것이다.
세상만사 손에 확실히 붙들기 전에는 절대로 장담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
된 밥에 재가 뿌려지듯이 많은 일들이 될 듯 될 듯 하다가 실패로 끝이 났다‘
고 신학자인 에라스무스도 말했다. 손을 뒤집는 쉬운 일에도 실수가 있게 마련
이기 때문이다.
방심은 금물이다.(There's many a slip between cup and lip.)
컵을 입에 갖다대는 간단한 일도 빗나갈 수 있듯이, 틀림없이 된다고 장담하
던 일도 실패로 끝날 때가 많다.
시작과 끝
일의 시작은 신중하여야 한다. 신중하라는 말은 머뭇거리며 시간을 보내라는
뜻이 아니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많은 준비를 하라는 말이다. 건축이나 토목 공
사의 경우를 보자. 도면, 자재, 그리고 인력이 준비된 상태라면 일은 70% 이상
마친 것이나 같다고 한다.
주역에서는 ‘군자는 일을 시작할 때 심사숙고하여 사리 판단을 한 후에 시작
한다’고 하였다. ‘그림을 그리려면 흰 바탕을 잘 만든 후에 시작한다‘는 논
어의 말과 같이 시작 전에 잘 준비해야 유종의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다.
아울러 기초를 든든히 해야 결과적으로 이익을 본다.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
해 기초를 단단히 하지 않고 졸속 시공을 하면, 개통하자마자 보수공사에 들어
가게 되어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성수대교, 삼풍 백화점, 당산 철교 등의 예에
서 보듯이 처음부터 기초를 튼튼히 하고 적절한 자재를 쓰고 충분한 시간을 갖
고 건설했더라면 그러한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 것이다.
범을 잡으러 가려면 튼튼한 밧줄을 준비하여야 한다. 썩은 새끼줄로 범을 잡
으려다가는 오히려 범에게 잡아 먹힐 염려가 있다. 시작 전에 준비를 튼튼히 하
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좋은 방법이다.
시작이 좋으면 끝이 좋다. (Agood begining makes a good ending.)
우리 사회는 실패를 교훈으로 삼고 자산화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가 주는 교훈을 망각하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준비를 단단히 한 후 일을
시작하는 지혜를 갖자.
폭력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는 무식하고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예수를 체
포하려는 유태인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쳐서 잘라버렸다.
이 때 예수는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아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게 된
다.”며 그를 타일렀다.
베드로는 결점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폭력을 쓰면 폭력으로 망한다’는 예수
의 가르침을 받고 회개하고 폭력을 사랑으로 대하기 시작한 사람이다.
유태인들은 예수를 붙잡아 빌라도 로마 총독 앞에 세웠다. 빌라도 총독은 그
에게 사형을 언도하였다.
로마 병사들은 예수를 사형장으로 끌고 가면서 예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
으로 치면서 “그리스도야, 너를 때리는 사람이 누구냐? 알아 맞춰보아라“고
조롱하였다. 하지만 예수는 ”내가 아버지에게 청하기만 하면 12개 여단의 군사
보다 더 많은 찬사를 보내줄 수 있으나 성경에 쓰여진 말씀을 위해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악한 자가 폭력을 쓴다고 해서 똑같이 폭력으로 대적하지 말라고 경고하
고 “누가 너의 왼 뺨을 치거든 오른 뺨도 돌려 대어라. 너를 고소하여 속옷을
빼앗고자 하면 겉옷까지 벗어주어라. 또 누가 오리를 가라고 하면 십리를 가라
“고 하여 폭력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유태인들은 겉옷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비싼 옷을 걸치나 속옷은 값이 싼
옷을 입는다. 그래서 싼 속옷을 누가 달라 하면 비싼 겉옷까지 벗어주라는 말이
다.
노자는 ‘보원이덕’이라고 하였다. 원수 갚기를 덕으로 하라는 말이다. 그러
나 공자는 이직보원 즉, 원수에게는 원한으로 갚을 수 없으니 올바른 도리를 보
여주라고 하였다. 덕으로 갚으라는 노자보다 좀 더강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폭력을 쓰면 폭력으로 망한다. 폭력을 사랑으로 대하자. 개가 뒷다리를 물었다
해서 나도 개와 똑같이 개의 뒷다리를 물 수는 없지 않는가!
폭력을 쓰는 자는 폭력으로 망한다. (He who lives by the sward dies by the
sword.)
목 마른 사람과 샘
이슬람교의 창시자 모하메트(570~632)는 메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6세 때 부모
를 여의고 사막의 베두인 상인들과 함께 살면서 장삿꾼으로 탁월한 능력을 보였
다. 그는 15세 연상의 돈 많은 과부 여인 카디자와 결혼하였다. 40세가 되던 해
인 610년, 그는 알라 신의 계시를 받았다.
여기서 우선 이 모하메트의 신인 알라에 대해 알아보자. 알라는 아브라함-이
삭-모세-다윗-예수로 이어지는 여호아 하느님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
브라함-이스마엘의 하느님이다.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은 본처 사라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었다. 본처 사
라가 이삭을 낳기 전 사라의 하녀 하갈은 아브라함의 첩이었고 그와 동침하여
서자인 이스마엘을 낳았다. 믿음의 조상도 여자는 좋아했던 모양이다.
사라 역시 폐경기가 지난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하나 낳게 해달라고
여호와 하느님께 간구하여 이삭을 낳았다.
어느 날 사라가 보니 이집트 여인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적자인 이삭에게
‘알밤’을 주면서 자기가 먼저 났으니 이 집의 장자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사라는 이 사실을 아브라함에게 일러바쳤고, 본처와 시앗간의 싸움에 진저리를
느낀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약간의 음식과 물통 하나만 주어 사막으
로 쫓아냈다.
이렇게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은 사막에서 고생고생하면서 살았다. 이후에
이스마엘이 이집트 여자와 결혼하여 낳은 자식들이 12부족을 이루었으며 이들이
믿는 하느님의 이름이 바로 ‘알라’이다. 그래서 여호와와 알라는 같은 신이라
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회교
모하메트는 알라 신의 계시를 받아 메카의 주민에게 ‘마지막 날’을 준비하
라고 설득하고 다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메카의 쿠라이쉬 족의 박
해를 받아 그는 메디나로 도망쳐야 했다. 모하메트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도피한
일을 ‘히자이러’ 또는 ‘헤지라’라고 하는데, 서기 622년의 일이다.
이슬람교에서는 이 해를 원년으로 삼는다.
모하메트는 메디나를 거점으로 사막의 모든 족속을 향해 지하드를 벌였다. 한
손에 코란, 다른 손에 칼을 들고 사막 부족들을 정복하였고 서기 629년에는 메
카로 다시 가서 회교 전파의 기틀을 잡았다.
이슬람은 유일 절대신인 알라에게 복종을 의미한다. 이슬람교는 인간 세상의
모든 악은 인간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온갖 ‘오만’에서 온다고 생각하고 있
다. 그래서 알라신에 대한 복종만이 선이고 불복종은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목마른 자가 샘터로 간다
모하메트가 처음 이슬람교를 포교할 당시의 일이다.
메카에 살던 아랍 사람들은 모하메트에게 메카 근방에 있는 소파산을 성지 메
카로 옮기는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그가 정말로 하느님(알라)의 계시를 받
았다면 자신들 앞에서 기적을 행할 수 있으리라는 거였다.
“소파 산이여, 옮겨 오라!”
하지만 자신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산이 옮겨 오지 않자 그는 또 이렇게 말했
다.
“하느님은 참으로 자비로우신 분이로구나. 만약 소파산이 나의 말대로 옮겨
져서 메카로 왔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그 산에 파묻혀 죽었을 것이다. 이러한 하
느님의 은혜를 감사드리기 위해 내가 직접 소파산으로 가야겠다.”
목이 마른 사람은 샘터에 가야 한다. 샘이 목이 마른 사람에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쉬운 사람이 일을 서두르게 마련이다.
목이 마른 사람이 샘을 판다. (If the mountain will not come to Mohamet.
Mohamet must go to the mountain.)
훌륭한 사람과 심복
인간의 모든 죄를 혼자 뒤집어 쓰고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를 보자, 가장 믿었기 때문에 재정문제를 담당하게 했던 ‘유다’에게
배신을 당했다. 유다는 예수의 인간적인 약점을 가까운 곳에서 보고 그를 배신
하지 않았을까? 그뿐만 아니라 공자 역시 “허물을 적게 하려고 애를 쓰지만 잘
되지 않는 것 같다”고 하며 가까이 있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잘못에 대한 변명
성 발언을 하였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가까이 가서 보면 인간적인 약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
래서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존경받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세계적인 철학
자들의 대부분이 악처들에게 시달린 이유도 아마 ‘밖에 나가 행동하는 짓과 집
에서 행동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존경을 받지 못한 것일 게다.
맹자는 “부부 사이에 분별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남편을 우러러 보면
서 한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 역시 부인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심복으로부터 존경을 받으려면 자신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아울러 이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다 듣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들이 하는 말을 다 듣다가는 심복이 저주하는 소리마저 듣게 될는지 모르기 때
문이다.
심복에게 존경받는 사람은 없다.(No man is hero to his valet.)
‘바렛(Valet)’은 남자 종으로서 주인 곁에서 의복이나 신변 잡사를 다루면서
일거수 일투족을 훤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들은 주인의 인간적 약점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 그래서 주인은 그 앞에서 위신을 세우기 힘이 든다.
예언자와 고향
예수가 다른 곳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고 고향에 돌아 왔다. 하지만 마을 사람
들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믿지 않고 그를 배척하였다. 사람들은 예수의 아
버지가 목수인 조셉이고, 어머니가 마리아이며 남동생으로 야고보, 요셉, 시몬
그리고 유다가 있으며, 여동생들이 그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물론, 예수가
아버지 밑에서 목수 일을 하면서 자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고향 사
람들은 그를 거짓말쟁이로 본 것이다.
예수는 이에 “예언자들은 고향이나 가족들에게는 존경받지 못한다”고 하면
서, 자신도 자기에 대한 믿음을 주지 않는 고향 사람들 앞에서는 기적을 행하지
못하고 그 곳을 떠나야 했다.
이런 경우는 예수만이 아니다.
공자 역시 고향에 있을 때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 같았다고 한다. 공자는
사리를 따지고 대의명분을 밝히는 데는 누구보다도 달변이었으나 고향에 있을
때는 말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공자의 전기 자료인 공자세가에 의하면, 공자는 아버지가 천민 안씨녀와 야합
하여 세상에 태어난 사생아였다고 한다.
공자가 자신의 사생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고향 사람 앞에서는 말이 없
었던 것으로 봐서 그 역시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했던 것 같다.
예수와 공자의 경우로 미루어, 사람은 자신을 잘 아는 친척이나 친구에게 능
력을 인정받거나 존경받는 것이 무척 어렵다.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야 더 존
경한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도 거리감을 두어야 서로 존경하게 된다. 가장 친밀한
사이이기에 자칫 말과 행동이 예절에 소홀해지기 때문이다.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 (Aprophet is respected everywhere
except in his home
town) 그러나 한국에서 대통령을 하려면 지역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대통
령 후보들은 ‘예언자’같은 훌륭한 사람이 아니므로, ‘고향’에 가야만 존경
을 받고 몰표를 받는다. 타향에서는 업신여김을 받고 표를 잘 얻지 못한다.
두 주인 섬기기
옛말에 해가 두개가 아니듯이 백성에게도 두 임금이 없다고 하였고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였다. ‘두 주인에게 동시에 충성할 수 없다’는 말
은 현대 자동차와 대우 자동차에서 반나절씩 일하면서 두군데에 똑같은 분량의
충성심을 발휘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수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한편은 미워하고 다른
편은 사랑을 하든가 아니면 한편에게 충성을 다 하고 다른 편은 무시하게 될 것
이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하여 둘 중의 하나를 택하
라고 하였다.
그래서 춘추는 ‘신하에게 두 마음이 없는 것은 하늘이 정한 것’이라고 전하
였고 ‘의에 두가지 신의를 말할 수 없고 믿음에 두가지 명령을 받을 수 없다’
고 하였다.
문은 열거나 닫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고, 초 한자루로 양쪽 두 군데서
동시에 불을 켤 수 없다. 꼭 두 주인을 섬겨야 하는 경우라면 한 사람은 진정으
로, 다른 한 사람은 거짓으로 섬길 수 밖에 없다.
새 부인의 제사
한 노인이 과부였던 여자를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얼마의 세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노인은 부인이 정성들여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았다.
영감이 물었다.
“ 누구 제사를 지내는 건가?”
남편의 물음에 부인은 “오래 전에 죽은 남편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하
고 대답했다. 그러자 노인은“무엇이라고, 이 방자한 년아! 내가 너에게 잘해주
고 있는데 아직도 옛 서방이 그리워서 제사까지 지내, 고얀지고!“라며 노여워했
다.
새 부인이 말했다.
“영감님이 저보다 먼저 돌아가시면 이와 똑같이 제사를 드릴 것입니다. 영감
님도 돌아가신 후 저에게 제삿밥을 얻어드시려면 너무 심한 말씀일랑 하지 마세
요.”
누구나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No man can serve two masters.)
필요와 발명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빠져나갈 궁리를 하다 보면 해결책이 나온다. 하늘
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역경을 극복한 사례를 보자.
빈대의 노력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일화를 들어 보자.
그는 젊었을 때 막일을 하면서 인천 노동자 합숙소에서 유숙하였다고 한다.
당시 연일 계속된 중노동으로 인해 잠을 자면 누가 떠메고 가도 모를 정도로 몸
이 고단하였는데, 정작 자신을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빈대였다고 한다. 빈대 때
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불면의 밤을 지새우던 그는 빈대들의 공격을 피해 밥 상 위에 올라가서 자는
꾀를 내었다. 하지만 잠시 뜸한가 했더니 빈대들이 이내 밥상다리를 타고 올라
왔다고 한다.
그는 다시 머리를 써서 밥상의 네 다리를 물 담은 큰 양재기 속에 담가 놓고
잤다고 한다. 빈대가 밥상다리를 타려다가 양재기에 담긴 물에 빠져 죽게 하자
는 묘안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쾌재를 부르며 편한 잠을 잔 것은 이틀뿐이었다고 한다. 불을
켜고 도대체 어떻게 양재기 물을 건너왔나 살펴보았더니 빈대들도 방법을 바꾸
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빈대들이 벽을 타고 천정으로 올라간 다음 누워있는 사
람을 향하여 다이빙하여 떨어졌던 것이다.
빈대도 물이 담긴 양재기를 뛰어넘는 법을 알기 위해 그토록 전심전력 연구하
여 제 뜻을 이룬다. 하물며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쉽게 포기해서야 되
겠는가? 연구를 거듭하면 해결책이 나온다.
핸리 포드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어머니가 위독해지자 그
는 서둘러 말을 타고 의사를 부르러 갔다. 말 엉덩이에 채찍 자국이 날 정도로
급히 뛰어가 의사를 모셔왔으나, 이미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난 후였다.
포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빨리 의사를 데려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
각하고, 말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기계를 제작하기 위해 전심전력하였다. 그래
서 개발해낸 것이 빨리 달리고 값이 싼 자동차였다고 한다.
필요란 ‘어려운 환경’을 말한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기 위하여 노력하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다.
‘무슨 일이나 구하려고 노력하면 얻어진다’고 맹자가 말하듯이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Necessity is the mother of invention.)
여기서 어머니는 무엇을 일으키는 기폭제, 또는 산실이란 뜻으로 모태와 비슷
하다.
소문난 잔치
김용옥, 세계적 명문 옥스포드대, 동경대, 하버드대에서 수학, 고려대학교 철학
교수를 지내다 다시 원광대학교 한의대에 학생으로 입학하였고, 졸업 이후 현재
한의원을 개원하여 운영중인 동양철학자이다.
화려하고 특이한 이력으로 세간에 화재를 뿌린 그는 <대화>라는 책에서 다음
과 같이 말했다.
“내가 70년대 세계 최고 명문대학을 누비며 나의 생각을 확인한 결론은 무엇
이었던가? 이에 대한 답으로 나의 입버릇이 허용하는 솔직한 표현을 옮기기 위
하여 독자들에게 실례를 하여야겠다.
“내가 70년대 세계 최고 명문대학을 누비며 나의 생각을 확인한 결론은 무엇
이었던가? 이에 대한 답으로 나의 입버릇이 허용하는 솔직한 표현을 옮기기 위
하여 독자들에게 실례를 하여야겠다.
‘아무것도 아니더라!’
나는 옛날에 헤겔, 칸트가 굉장한 사람인 줄 알았다. 플라톤, 공자가 나의 생
각과 격리된 저 피안에 우뚝 서 있는 엄청난 진리인 줄 알았다.
그리고 옥스포드대, 동경대, 하버드대가 정말 진리가 깨알같이 쏟아져 나오는
별천지인 줄 알았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 개천가에서 한
밤중 쳐다보았던 밤 하늘을 수놓고 있는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어쩌다가 나는 70년대 우주여행을 한 것이다. 그 위대한 사람을 다 만
나보고, 그 엄청난 별세계의 캠퍼스를 다녀 본 것이다.
그 결론은 무엇이었던가?
나는 무엇을 확인했던가?
‘아무것도 아니더라!’
칸트도, 헤겔도, 공자도, 하버드도, 캠브리지도, 동경대도 아무것도 아니더라.
나는 속아온 것이다. 나는 ‘무엇이 된다’고 생각하여 온 사람들에게 속아온
것이다. 아니 내가 속은게 아니라 우리의 역사가 우리의 민족이 속아 온 것이다.
나는 무엇도 아닌 ‘사람들’의 권위에 속아왔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를 깨닫는
데 꼬박 20년이 걸렸다. 나의 사상적 국제화 과정은 ‘아무것도 아니다’의 깨
달음의 과정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의 아무것도 아님을 확인하기 위해 정말
죽어라고 공부를 해야했다.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자신있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
이가. ‘깡’이란 오직 실력과 노력에서 나온다. 실력과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
면 ‘깡’으로 살다가 ‘헛물’만 켜고 죽는다. 솔로몬은 그의 인생론에서 다음
과 같이 말했다.
헛되고 헛되도다
정말 헛되구나
이 세상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구나!
세상을 살면서 ‘헛된 세상이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
력하면서 살아야만 한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Much cry and little word.)
양털을 자르는 데 양이 너무 큰 소리로 울어대서 많은 양의 털이 깎여졌나 했
는데 결과는 조금밖에 깎지 못했다는 말이다. ‘태산 명동 서일필’이라고나 할
까.
스캔들
‘미스 코리아’에 당선되었던 아가씨가 그 타이틀을 박탈당한 일이 있다. 과
거에 결혼을 한 번 한 적이 있는 이혼녀였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는 실질적으로
결혼을 했더라도 호적에 오르지 않으면 그 결혼은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몸
과 마음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호적에 오르면 정식 부부가 된다. 여자나
남자가 결혼하는 것은 ‘죽 떠먹은 자리’와 같이 흔적이 나지 않기 때문에 호
적으로만 판정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줌마’는 몸과 마음으로 결혼하여 호적까지 올리고, 이혼한 후
다시 ‘신장개업’하고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내듯 진짜 처녀들을 물리치
고 미스 코리아에 당선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자 그녀는 미스 코리아에 당선되었을 때보다 더 많이 알
려졌고, 이를 바탕으로 연예계에 데뷰까지 하였다. 부정적인 스캔들이라도 당사
자에게 크게 손해 날 것이 없던 경우다.
낯 뜨거운 유명인사
얼마 전 미국에서 이른바 성기 절단 사건의 피해자로 졸지에 ‘낯 뜨거운 유
명인사’가 된 존 보비트(당시 나이 26세)는 땡전 한푼 없는 백수 건달로서 하
는 일이라고는 밥 먹고 마누라 패는 일 뿐이었다고한다. 마누라이며 가해자인
에쿠아도르 여성인 로리나 보비트(당시 24세)는 그가 백수 건달 노릇만 하면서
구타와 성적인 학대를 밥 먹듯이 하므로 할 수 없이 ‘거시기’를 자를 수밖에
없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녀는 남편의 성기를 절단한 죄로 재판을 받았고, 이 사실이 신문에 공개되
자 피해자이자 그녀 남편보비트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한 케이블 TV
회사는 그에게 소송비용으로 약 3억원을 벌어 주었다고 한다.
그는 그 돈으로 약 3,600만 원짜리 자동차를 사러 다녀 세인의 빈축도 샀지만
땡전 한 닢 없던 사람이몇 억까지 벌었고 ‘거시기’ 역시 정밀 봉합수술로 다
시 접합을 시켜 다른 여자에게 그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하니, 정말 꿩
먹고 알 먹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인기로 먹고 사는 연예인의 경우에, 부정적인 홍보 내용이라도 매스컴에 소개
되면 손해볼 것 없는 것으로여긴다고 한다. 비싼 돈 들이지 않고 신문이나 방송
에 대서특필되니, 인기관리 측면에서 큰 이익을 본다. 폭풍우가 지나면 정적이
오듯, 잠시만 지나면 대중들은 ‘스캔들’은 잊어버리고 오직 긍정적인 측면의
이름만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다.
매스컴 타서 손해 볼 것 없다. (Any publicity is good publicity.)
정치인 특히 대선후보들이 매스컴을 통해 서로 흠집내기를 하는 싸움질도 어
느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오직 긍정적인 측면의 기억만 남는다. 그러므로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 말고 진흙밭 속의 개싸움같이 물고 뜯으면서 맞받아치는 것이 아
주 좋다. 그럴수록 비싼 돈 들이지 않고 방송이나 신문에 대서특필되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재별기업가인 마쓰시타의 이야기다.
그가 처음 기업을 시작했을 때 가진 것이라고는 세가지뿐이었다고 한다. 돈이
없다, 공부를 못 했다,
신체가 허약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결코 성공의 조건이 될 수 없었
다.
하지만 그는 가난했기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한 정
신력을 길렀다. 아울러 그는 초등학교 4학년 중퇴가 그가 가진 학력이었기에 ‘
모든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심전력으로 무엇이나 배웠다. 또한
자신의 허약체질 때문에 ‘자신이 모든 일을 한꺼번에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남에게 과감하게 권한을 이양하여 다른 사람의 능력을 최대로 활용하였다.
그렇게 해서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고, 마침내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일으
켜 세웠다.
궁하면 통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듯이,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헤쳐나갈 방법이 생기고, 죽어라 하고 어려운 일이 겹쳐오더라도 사람은 살아가
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무슨 일이나 궁극에 도달하면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가 생기면 통하는 길이 생기고, 통하면 오래오래 계속된다고 주역은
전하고 있다.
세상만사는 변화하고 유전하고 반복하고 순환하는 것이 역의 이치다.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이 없다.
이는 하늘과 땅이 서로 교제하기 때문이다‘고 주역에서 이르듯이 세상일은 한
번 성하면 쇠하고, 넘어지면 일어나게 되어 있다. 하늘과 땅의 이치가 이러할진
데 인간의 흥망성쇠쯤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므로 ‘궁할 때 궁함을 즐기고 통할 때는 통함을 즐겨야 한다’는 장자의
지혜를 본받아야 한다. 아울러 하느님은 우리를 어려운 환경 중에 시험하고 이
를 우리가 이겨내면 우리를 순금같이 깨끗이 만든다고 성경은 말한다.
‘가난한 자라고 해서 항상 멸시당하는 것이 아니며, 가난한 자의 희망이 영
원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고 성경 시편은 말하고 있다.
군자의 도리
궁하다고 실망하지 말고 통한다고 자만하지 말라.
그런데 공자는 ‘군자는 어려움을 꿋꿋이 지켜 이겨내지만 소인은 어려움에
처하면 마구 나쁜 짓’을 한다고 하였다. 그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인간의 도에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기 수양을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가난 때문에 배운 게 없
기 때문에 ‘막가파’가 되고 ‘지존파’가 되고 살인자가 되었다고
변명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그러한 최악의 상태이기 때문에 큰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궁함을 이겨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
.
궁하면 통한다. (When things are at the worst they begin to mend.)
영광과 굴욕의 차이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의 혼란기를 틈타 쿠테타를 일으켜 1804년에 프랑스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무리한 전쟁 수행으로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하고
1812년에는 러시아를 침공하였으나, 혹독한 추위로 40만의 대군을 잃어버리는
참패를 당한 후, 황제 자리에서 쫓겨나 1813년 엘바섬에 귀양을 갔다.
우리는 아주 높은 자리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릴 것 같이 당당하고 승승장구하
던 사람이 갑작스러운 사태로 급전직하여 ‘꽁지 빠진 새’같이 되어 사람들로
부터 웃음거리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래서 채근담에서는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더라도 교만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한 자리는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는 부드럽고, 너그럽게 대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여야 한다고 하
였다.
나무 인형과 흙 인형
흙으로 만든 인형과 나무로 만든 인형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무 인형이 말했다. “비가 오면 자네는 낭패겠구먼.” 이 말을 듣고 흙으로
만든 인형이 말했다. “나는 원래 흙으로 만든 인형이니 무너지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비가 많이 오면 자네는 어디까지 떠내려 갈 지 알 수 없구먼.”
영광의 자리란 이들 인형의 운명과 같다. 비가 오면 흔적도 없이 없어지는 흙
인형이거나, 세상 어느 곳까지 정처없이 떠내려가는 나무 인형과 같다.
황제에서 하루 아침에 몰락하여 섬으로 유배되는 나폴레옹처럼, 대장에서 이
등병으로 급전직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영광의 자리에 낮고 튼튼한 돌담
을 쌓아라. 그러면 무너져 내릴 염려가 없다.
영광과 굴욕의 자리는 백지 한 장 차이다. (From the sublime to the
ridiculous is only a step.)
현명한 사람
가섭과 베드로
석가모니의 수제자 가섭은 눈치 빠르기가 ‘도갓집 강아지’같이 빠른 사람이
었다. 그는 석가가 설법 도중에 연못속의 연꽃을 가르키자 그것만으로도 석가의
뜻을 알아듣는 이심전심 제일인자였다.
석가의 수제자가 가섭이라면 예수의 수제자는 베드로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베드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크고 또렷또렷한 소리로 정담을 말하여, 예수로부터 “너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라고 크게 칭찬을 받았고,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너의 반석 위에
내 교회을 세우겠다“고 하여 후계자로 지명받는 영광까지 받았다.
그렇게 예수로부터 칭찬을 받은 그였지만, 실제로는 석가모니의 수제자인 가
섭과 달리 무식하고 시쳇말로 ‘감’을 잘 잡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꾸중 듣는 베드로
예수가 예수살렙으로 올라가 유태인 대제사장, 장로 그리고 율법학자들에 의
해‘사형을 당했다가 3일만에다시 살아날 것이다’는 ‘기독교의 핵심 사항’을
비장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밝히자 베드로는 “주님, 주님이 그런 고통을 받는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라고 ‘아첨성’ 발언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예수로부터 “이 사탄같은 놈아! 썩 물러가거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놈이
로구나. 네가 하느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 일만 생각하고 있구나“라고‘악
마 같은 놈’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예수의 기도
베드로는 예수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신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이
세상에 온 뜻마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아둔한 사람이었다.
예수가 죽기 얼마 전 그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인류의 죄를 대신 없애
주기 위하여 죽을 준비의 기도를 하러 겟세마네에 갔다.
예수는 몹시 괴로워하면서 그들에게 “지금 내가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
경이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말하고 조금 떨어진 곳
에 가서 피땀을 흘리면서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이 고난의 잔(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는 끔찍하고 무
시무시한 일)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렇게 젊은 나이
로 세상의 재미도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억울하고 겁이 납니다.) 그러나 제 뜻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 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예수가 피땀어린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베드로를 포함한 세 제자
는 세상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깊은 잠에 덜어져 코를 골고 있었다. 예수는
베드로를 깨워 “너희가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정신차려
기도하라.”고 주의를 준 후에 다시 기도하러 갔다.
“아버지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떠나갈 수 없다면 아버지 뜻대
로 하십시오”라고 기도를 드린 후에 다시 와보니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은 이
번에도 모두 잠에 곯아 떨어져 코를 골고 있었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너희가 아직도 자고 있느냐? 내가 죄인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일어나거라. 가자. 나를 팔아 넘길 사람이 가까이 왔다.”라며 인류를 위
한 ‘죽음의 순간’이 왔다고 말했으나, 잠결의 베드로는 이 말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잠만 ‘퍼잘’ 정도로 아둔한 사람이었다.
배신
베드로는 예수가 죽음을 예상하고 예수의 제자 중 하나가 그를 배신할 것이다
고 말을 하자 그는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린다고 해도 저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큰소리로 맹세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탄로날 거짓말
까지 스스럼 없이 말했던 사람이다.
그는 “내가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 하지 않
겠습니다.”고 또 큰소리로 장담을 하였다. 그러나 예수가 붙잡히던 날 밤 예수
의 제자들은 모두 도망쳐 버렸다. 성경에 한 청년이 베홑이불만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 잡히자 몸에 두른 옷을 팽개치고 알몸으로 달아났다고 하였는데 이
청년이 아마 베드로였을 것이다.
베드로는 그 날 밤 예수와 같이 붙잡혀 갈 것이 두려워, 늦은 저녁부터 닭이
울기 직전까지의 그 짧은 시간에 세 번씩이나 철저하게 “나는 예수라는 작자를
모릅니다. 만약 내가 그를 안다면 하늘로부터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라고 예수
를 안다는 사실을 부인하였다.
회개
베드로는 미련하였고 거기다 비겁하기까지 하였다. 석가의 수제자인 가섭에
비하여 그 영리함이나 용감함을 따라가지 못 할 사람이었지만 ‘바로 오늘 저녁
닭이 울기 전 네가 세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것이다‘는 예수의 말이 실현되는
순간 그에게 커다란 깨달음이 왔고, 밖으로 나가 가슴을 치면서 한 없이 울므로
서 회개의 순간을 맞았다.
이렇게 비겁하고 아둔한 베드로였지만 그는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
총과 칼로서도 정복하지 못 할 로마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정복했다.
기독교의 경우 누구나 성령 안에서 거듭 태어나면 ‘옛날의 나’와 ‘거듭 태
어난 나’는 다른 사람이다. 여기에 바로 그리스도교의 위대성이 있다고 본다.
필자의 영어 이름이 베드로이다. 물론 ‘깨어나기 전’의 아둔하고 비겁한 베
드로를 말한다.
현명한 사람은 한마디 말이면 알게 된다.(A word to the wise is enough.)
현명한 사람은 자기 중심을 잃지 않고 오직 사리에 맞게 행동하기 때문에 조
그만 힌트만 주어도 상대방의 말의 뜻을 잘 알아듣는다. 그래서 세상일에 통달
한 사람은 보는 바가 모두 한가지라고 하였다. 이 말은 라틴어인 ‘Verbum sat
sapienti'에서 기원하였고 이를 줄여 ’Verb sep'이라고 한다. 누가 설명을 길게
하면 ‘Verb sap.'이라고 말하라. ’그 뜻을 알아 들었다.‘는 말이 된다.
7. 고전으로 되새기는 우리 인생관
지난 것에 미련을 두지 마라
맹자는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 돌아간다”고 하였다. 자신이 뿌린 씨에
따라 그 열매를 수확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행하여 얻어지는 것이 없으면 자
기 자신을 반성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걱정 근심
‘고양이는 아홉개의 생명을 갖고 있다’고 한다. 고양이는 여간해서 죽지 않
는다는 서양의 속신이다. 구사일생이란 말과 비슷하다.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이스라엘과 극적으로 평화조약에 서명하여 팔레스타인
자치국을 세운 아라파트는‘아홉개의 생명을 가진 고양이’로 불려지고 있다.
반대 세력의 몇 번에 걸친 암살 기도와 비행기 사고 가운데에서도 불사조와 같
이 거뜬히 살아났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다른 동물에 비해 위험 상황을 잘 피하고 민첩하게 행동한다. 하지
만 이렇게 아홉개의 생명을 가진 고양이도 걱정과 근심을 하면 죽는다고 한다.
걱정 근심은 그럴 정도로 무서운 독성을 갖고 있다.
일조지환
맹자는 ‘성인은 언제나 자기자신의 수양 부족을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을 어
떻게 갈고 닦을 것인가 하는 평생 동안의 걱정은 있어도, 생활 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환난과 고난에 따른 한 때의 작은 걱정에는 마음을 쓰지 않는다’고
하였다. 평생동안 갈고 닦아야 할 종신지우는 할지언정. 여간해서 죽지 않는 고
양이도 죽일 수 있는 정도의 독성을 가진 일조지환. 즉, 생활 속의 작은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였다.
‘군자는 마음이 안정되어 너그럽고 소인은 항상 걱정 근심이 많아 마음이 초
조하다’는 말이나 ‘군자는 근심도 하지 않고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말은 논
어에 나오는 여러 가르침의 배경을 이루는 사고방식이다.
시성 이태백은 <추포가>에서 ‘흰 머리칼이 삼천 길이니 근심 때문에 얻은
것이다’라고 읊조렸다. 천재가 생각하는 근심의 깊이를 필자 같은 범인이 어찌
알 수 있으랴마는, 한국 40대 남성의 사망률이 세계 최고를 기록한다는 보도를
보면 착잡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들은 ‘일이 많아 일 때문에 과로로 죽는
것이 아니고 걱정 때문에 죽는다‘고 볼 수 있다.
일조지환의 걱정과 근심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가 그 주범이다.‘원수’같은
스트레스가 아홉개의 생명을 가진 고양이도 죽이는데, 하나밖에 없고 우주보다
더 소중한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것이야 손바닥 뒤집는 것같이 쉬운 일이 아니
겠는가?
스트레스 해소방법
세익스피어는 <태산명동에 쥐털 하나>라는 희극에서 ‘걱정 근심을 죽이기
위해서는 유쾌하고 즐거운 마음만 가지면 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즐거운
마음만 가지면 걱정, 근심도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는 말이다.
영국 시인 조지 위더는 “걱정 근심을 내버려라.걱정 근심은 사람을 죽이니,세
상을 즐겁게 살아보자꾸나”
라고 읊었다. 걱정이란 사람의 마음을 누르고 있는 짐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 벗어버리면 얼마나 편안하고 시원한가? 그의 충고에
따라서 걱정과 근심을 내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저 하루하루 ‘밥 삭이는 기
계’ 역할을 열심히 해보자. ‘마음의 즐거움은 좋은 약이 되어도 근심 걱정은
뼈마저도 마르게 한다’는 성경의 구절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걱정과 근심은 몸에 해롭다 (Care killed the cat.)
예술과 인생
의사로 첫 출발을 하려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해야 한다. 히포크라테스는 그
리스 외과 의사로서 히포크라틱 의학의 창시자이다. 그는 의술을 ‘사람의 병을
고치는 기술’이라고 했다. 즉 의술은 배우기 어렵고 오래 걸리는데 사람의 생
명은 너무 짧다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하였다.
여기서 아트란 통상 말하는 예술 작품(회화, 사진, 조각 등)을 뜻하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각종 기술을 뜻한다.
<켄버리 이야기>의 저자, 영국의 초서 역시 히포크라테스와 같은 의미로 아
트란 말을 사용하였다.
‘인생은 짧고 기술을 배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예술 작품의 생명성을 뜻한다. 예술가의 작품은 예술가의 수명
보다 오래 간다는 말이다.
중국 송대 성리학자로 이기설을 대성한 주자 역시 히포크라테스나 초서가 말
한 내용과 비슷하게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학문은 배우기가 힘들다고 하였다.
배우기가 어렵고 세월은 빨리 지나가나니 일초의 시간도 아껴서 열심히 노하
여라.
연못가의 풀들은 봄 꿈을 꾸고 있는데
뜰 아래 오동나무에서 가을 낙엽소리가 나는구나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Art is long and life is short.)
벼락치기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죽음을 면하려면 앞서 포탄이 떨어진 곳에 뛰어
가 엎드리면 된다. 한 번 떨어진 곳에는 포탄이 다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벼락도 포탄과 마찬가지로 한 번 내리친 곳에는 다시 치지 않는다.
미국 중서부의 한 마을에는 벼락을 무려 다섯번이나 맞고도 끄떡없이 잘 살고
있는 사나이가 있다. 그는 벼락을 맞아 모자나 머리칼을 홀랑 태워먹은 적이 있
으며, 한 번은 벼락이 주머니의 동전을 박살냈으나 몸만은 멀쩡하게 비켜갔다고
한다. 벼락이 주머니의 동전을 박살냈으나, 몸만은 멀쩡하게 비켜갔다고 한다.
벼락이 두려워진 그는 마침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그
는 허리띠 버클과 구두에 한번씩 두차례나 벼락을 더 맞았으나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고 한다.
명줄이 질기기가 고래 힘줄 같은 사나이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나타
나면 모두 피해 버린다. 왜냐하면 벼락이 워낙 그 사나이를 좋아하다 보니 그
사나이 옆에 있다가 ‘날벼락’ 맞을까 두려워서란다.
이렇게 ‘벼락은 같은 곳에 두 번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까지 바꿀 위
대한 인물(?)은 몇백 년에 하나 나타날까 말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벼락을
두 번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벼락’을 한 번 맞으면 대부분 바로 하늘나라로
가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숟가락을 놓게 되기 때문이다.
인생에 실패한 사람들은 ‘포탄이 떨어진 곳’에 다시 가서 새로운 인생을 시
작해야 한다. 넘어진 사람은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하듯이 옛날의 실패를 거울삼
아야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래야만 어려움을 다시 당하지 않는다.
벼락은 같은 곳에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 (Lighting never strikes the same
place twice.)
미련
그리스 철인 소포클레스는 “현재가 아닌 것은 지나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거의 일을 자꾸 되뇌면서 괴로워하기보다 지나버린 것은 지나버렸으므로 모
든 것을 잊고 밝은 마음을 갖고 새 출발을 하는 것이 좋다. 과거의 일을 현재로
다시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곧은 낚시로 낚시질을 하며 때가 오기를 기다린 것으로 유명한 강태공을 보
자.
그는 어려울 때 자신을 버리고 도망갔던 부인이 찾아와서 다시 결합하자 했을
때, 한 번 헤어진 사람은 재결합할 수 없다고 이렇게 매정하게 말했다.
“ 한 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므로 과거의 실수를 거울삼아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옳은 길로 나가는 사람은 받아주지만 과거에 연연하면 용서하지 못한
다고 공자는 말했다. 아울러 세익스피어는 <맥베스>에서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루지 못했던 일에 대하여 미련을 두지 말라. 한 번 지나간 것은 다시 돌
이킬 수 없다.”
지나간 것에 미련을 두지 말자. (What's done cannot be undine.)
한 번 지나가 버린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나간 세월을 그리워하며
‘그 때가 좋았지’하면서 미련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기쁨과 슬픔
로마 시인 호레이스는 ‘즐거움이 있는 사람과는 즐거움을 나누고, 슬픔이 있
는 사람과는 슬픔을 나누어야 한다‘고 했다. 신약 로마서에도 이와 똑같은 말
로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다.
그러나 좋은 일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 기쁨을 나누어 가지려고 하지만 슬픔은
같이 나누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혼자서 슬퍼하게 되기 마련이다.
<마지막 잎새> 의 작가 오 헨리는 ‘네게 좋은 일이 있으면 같이 기쁨을 나
누려는 자가 많지만 너에게 슬픔이 있으면 그들은 너의 슬픔에 회심의 미소를
띄울 것이다‘라고 얄팍한 세상 인심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지혜의 글을 쓴 솔로몬은 “마음의 고통과 즐거움은 진정한 의미에서
보면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다“고 하여 인생은 혼자 가는 길이라고 말하였다.
미국의 여류시인 엘라 윌콕스는 <혼자라는 것, 즉 고독>이라는 시에서 다음
과 같이 읊었다.
“기쁜 일은 여러 사람이 나누어 가지려 하지만, 슬픈 일은 혼자서 삭여야 하
느니 쓴 바다와 같은 이 세상 힘이 들고 고통의 연속이라도, 고통은 고통에 맡
기고 즐거운 세상 살아보자꾸나.“
누가 나의 속사정을 알아줄까? 누가 나의 가려운 곳을 찾아내어 긁어줄 수 있
을까? 나 자신뿐이 아닐까?
기쁜 일은 여러 사람이 나누려고 하지만 슬픔은 혼자 슬퍼하기 마련이다.
(Laugh and the world laughs with you, weep and weep alone.)
남녀의 노화
남자는 정신적으로 나이를 먹는 데 비하여 여자는 육체적으로 먹는다고 한다.
남자는 생각이, 여자는 주름살이 나이를 결정한다는 말이다. 달리 말해 남자는
나이가 많아도 마음만 젊게 가지면 젊어지나 여자는 마음을 젊게 갖더라도 주름
살이 걸림돌이 된다.
이러한 현상은 남자에게 그 원인이 있다. 남자는 여자의 아름다움을 외모만으
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자는 “세상 사람이 모두 아름다움이라고 알고
있는 아름다움은 참 아름다움이 아니다.”고 하였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피부 표
면에 나타나는 아름다움만을 구한다.
조강지처는 이 세상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주
름이 진 늙은 아내를 이유없이 학대하면서 젊은 여자를 찾아나서는 사람이 있
다. 젊은 여자에게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늙은이같이 멍청한 사람은 없다.
이런 사람 중에는 대머리가 많다.
젊은 여자는 영감을 젊어보이게 하려고 그의 흰머리를 뽑아주고, 늙은 아내는
그 영감을 늙어보이게하여 젊은 여자가 떨어져 나가게 하려고 검은 머리를 뽑아
주기 때문에 삽시간에 대머리가 되어 버리고 만다.
남자는 마음으로 늙고 여자는 표정으로 늙는다. (A man is as old as he
feels, and a woman as old as she looks.)
자업자득
재액이나 환란, 행복이나 행운이 찾아드는 문은 따로 있지 않다. 모두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결과이다.
불가의 윤회사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화복은 자업자득이다. 그러므로 그 결과
로 생기는 일은 감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파렴치한도 많다.‘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한다고 하듯 말이다.
맹자는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 돌아간다”며 자신이 뿌린 씨에 따라 그
열매를 수확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행하여 얻어지는 것이 없으면 자기 자신을
반성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불에서 불티가 솟아오르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의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고 성
경은 말한다.
인생은 자신이 뿌린 씨를 자신이 거두어가는 과정이므로 악의 씨보다는 선의
씨를 뿌리는 것이 좋다.
자업자득 (As you make your bed, so you must lie upon it.)
잡자리를 잘 준비하지 못했으면 밤새 불편하더라도 참아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신이 저지른 일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기회
가축에게 먹일 풀은 햇볕이 날 때 말려서 저장해야 한다. 내일 내일 미루다
때를 놓쳐 비가 오기 시작하면 풀을 말릴 수 없어 사료를 만들 수 없다.
학문도 마찬가지이다.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주자는 중국 제일의 철학자
로서 송 나라의 성리학과 이기설을 대성한 사람이다. 그의 권학문을 보자.
“오늘 배우지 않아도 내일이 있다고 게을리 하지 말아라. 올해 배우지 않아
도 내년이 있다고 게을리 하지 말아라. 세월은 살과 같이 지나가고, 나를 기다려
주지 않나니 아아 늙었구나 이 누구의 잘못인고“
주자와 같이 훌륭한 사람도 기회를 놓쳐서 더 많은 학문을 쌓지 못했다고 스
스로 탄식하고 있다.
기회는 ‘나 여기 있소’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숨어서 오기도 하고, 전혀 다
른 얼굴로 오기도 하며, 얼음산의 한 모퉁이로 작은 부분만 내밀기도 한다. 또
화를 가장하여 나타나기도 한다. ‘지혜가 있다한들 시세를 타느니만 못하다’
하듯이 똑똑한 사람이라도 기회를 놓치면 이루는 일이 없다.
노력을 하다가 기회가 오면 전심전력을 다 해 끝까지 열심히 일을 하여야 한
다.우유부단하거나 몸을 도사리면 형세는 점점 기울어진다.
한 번 지나간 세월은 다시 오지 않듯이, 같은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쇠는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 두드려야지, 기회를 잃고 식은 다음에 두드리면 깨지기
쉽다.
기회를 놓치지 말라.(Make hay while the sun shines.)
합칠수록 좋은 것
두 나그네가 추운 겨울날 눈 길을 걷고 있었다. 한 사람이 지쳐 쓰러졌다. 그
러자 다른 사람이 지친 사람을 등에 업었다. 입힌 사람이 말했다.
“나를 놔두고 혼자 가세요. 가시거든 구조대를 불러 주세요.”
등에 업은 사람이 말했다.
“당신을 등에 업고 있으니 내 등이 따뜻해집니다. 또 힘이 들기는 하나 마찰
이 돼서인지 땀도 납니다. 당신을 업는 것은 나 역시 사는 길입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일으켜 줄 수 있으나, 혼자
있다 넘어지면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 한 사람으로서 당해낼 수 없는 공격도
두 사람이면 능히 막아낼 수 있고, 삼겹줄은 끊어지지 않는다.
지혜는 합쳐질수록 그 진가를 발휘한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마음이 합해지면
단단한 쇄붙이도 끊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생긴다’, ‘두 마음이 같이 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고 주역은 이르고 있다.
추운 방에 두 사람이 누우면 따뜻해진다. 36도 짜리 난로 하나보다 두 개가
훨씬 따뜻하다는 것은 정한 이치 아닌가?
지혜는 합쳐질수록 좋다.(Two heads are better than one.)
진인사 대천명
올리버 크롬웰은 영국의 청교도 혁명에서 두각을 나타낸 정치가였다. 그는 의
회의원으로 있다가 시민전쟁에 참전하였는데, 철기대와 신모범군을 편성해서 국
왕군을 격파하여 군인으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내전이 재발하자 막강한 군대의 힘을 이용하여 찰스 1세를 처형하였고, 영국
의 모든 실권을 가진 ‘로드 프로텍터’ 의 지위에 올라 철권을 휘둘렀다.
그는 왕위에 오르라는 빗발치는 신민의 요청을 거절하고 공화제를 시행하였
다. 영국 역사상 어떤 지도자도 감히 해낼 수 없는 어려운 일을 과감히 해냈다.
영국 해외진출의 기초는 그에 의해 닦여졌을 정도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말년에 범한 그의 과격한 행동은 ‘국민의 반발
’을 사기도 하였다. 그는 죽으면서 아들인 리차드 크롬웰에게 권력을 넘겨 주
었으나, 이들은 그 자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아버지 올리버 크롬웰이 죽은 다음
해인 1659년에 쫓겨났다. 그가 죽은 지 1년만에 왕정이 부활되고 만 것이다.
크롬웰이 시민전쟁에서 군대를 데리고 강을 건너면서 한 말이 있다.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했으니, 하느님의 뜻에 따르라.”
그의 말은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했으니, 하느님의 뜻에 따르라.”
그의 말은 ‘사람으로서 할 일을 모두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는 말
과 같다.
‘하늘은 오직 지성을 다 하는 사람에게 조화를 이루게 한다’는 말이 중용에
있고, ‘사람은 계획을 세우지만, 그 결과는 하느님에게 달려 있다‘고 성경은
전한다.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이 되고 안되고는 하늘에 달려 있다’고
논어도 전한다. 최선을 다 한후에 기다리는 것은 동서양이 똑같다.
진인사 대천명 (Put your trust in God. and keep your powder dry.)
파우더는 화약을 말한다.옛날에는 화약제조기술의 미숙으로 화약이 건조된 상
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싸우기 위해서는 항상 화약을 말려 놓고 대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8. 지혜로 보는 생과 사
젊은이도 죽지만 늙은이도 꼭 죽는다.
노자의 생각을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킨 장자의 사생관을 보자.
“산다는 것이 곧 죽는다는 것이고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이다.”고 하면서,
“삶은 죽음의 동반자이고, 죽음은 삶의 시작인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살고 죽는 것까지도 하나로 보고있다.
욕을 먹는 이가 오래 사는 이유
욕을 많이 먹고, 남에게 못된 짓 많이 한 사람은 오래오래 산다고 한다. 서양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을 숙청하여 죽이고 전쟁하여 죽이고 굶어죽게 한 김일성은 백두산의
호랑이 뼈다귀 술, 백두산 산삼 그리고 금강산에서 인삼을 먹여 기른 사슴뿔만
계속 대먹다가 하늘이 내려준 수명을다하고 편안히 누워서 하늘나라로 가버렸
다.
그런데 춘추는 ‘나쁜 자는 제 명을 다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결토 하늘이 준 수명을 다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김일성은 하
늘이 준 수명이 150세였는데 그 반인 75세로 죽었으므로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한
것이란 말인가?
어느 말이 맞는지 알기 위해서 우리는 사마천의 사기백이열전의 고사를 볼 필
요가있다.
하늘은 공평무사한가?
노자는 ‘하늘의 길일ㄴ 항상 공평무사하여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고 하였
다.
공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안연은 학문에 정진하고 착한 성품을 갖고 있어.‘
부처님 가운데 토막’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에 그는 가난하여 항상 쌀 뒤
주가 비어 있어 술을 만들고 남은 지게미나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다가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났다. 영양실조 때문에 생긴 병으로 제 명에 죽지 못한 것
이다.
사마천은 묻는다.
‘하늘은 착한 사람에게 보답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착한 안연에게 하늘이 보답
한 것인가?”
한편 중국에서 전설적으로 유명한 도적으로, 도척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는 날
마다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기분이 좋지 않으면 죽은 사람의 간을 꺼내어 회를
쳐 먹는 등 포악무도하였고, 다른 사람들의 재물을 빼앗아 떵떵거리며 잘 살다
가 하늘이 준 수명을 다하고 편히 와석종신(집에서 편히 누워서 죽음)하였다.
이에 사마천은 또 묻는다.
‘도적이 어떤 선행을 하였기에 그렇게 잘 먹고 잘 살다 천수까지 누리고 죽었
는가? 내 생각이 몹시 헷갈린다. 소위 하늘의 도리라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사마천은 한 나라 장수 이능의 죄를 묻자는 어전회의에서 모든 사람의 의견에
반대하여 자신만이 이의 충성심을 변호하다 궁형이라 하는 벌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성기를 제거당하는 치욕을 당한 것을 빗대어 ‘하늘은 정말 무사공평한
가“라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사마처는 이에 대한 해답을, 공자의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에서 찾고 있다.
이 말은 선을 생각하는 사람과 이를 생각하는 사람은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
에 같은 잣대로 제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개와 고양이의 행동을
똑같은 잣대로 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한다고 하지만, 사슴만 보면서 잘 먹
고 오래 사는 사람과 사슴과 산을 같이 보면서 선과 도를 행하면서 굶지라고 어
렵게 사는 사람의 입장을 어떻게 다른가?
장자는 ‘무엇에 혹해 있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다.’고 하였다. 혹해서 잘 사는 사람과 혹하지 않고, 선행을 하면서 찌들어 죽
어가는 사람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안연도 죽었고 도척도 죽었다. 하지만......
청렴결백을 자랑하던 안연도 죽었고 흉한 일의 대명사인 도척도 죽었다. 하지
만 사람의 삶은 불평등의 연속이다.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
다’는 말은 인간의 생명이나 권리 부문을 제외하고는 적용시킬 수 없는 말이
다. 왜냐하면 사람은 생김새부터가 다르고, 부모, 타고난 자질, 자라온 환경, 태어
난 시기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불평등하다. 어떤 사람은 착한 일만 죽도록 하다가 굶어 죽고, 어떤 사
람은 나쁜 짓만 하면서 잘 살고 잘 먹다 편안히 하늘 나라로 가듯이 사람은 불
평등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고, 불평등하게 죽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불편등한 것이 바로 ‘천명’이란 말이다. 맹자는 사람의 길흉 화복 수
명이 모두 천명에 속한다고 말하면서, 이 천명에 모두 따라야 한다고 우리를 윽
박지르고 있다.
그는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되는 것이 하늘의 뜻이요, 부르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닥쳐오는 것이 하늘의 명이다’고 하므로서 이 세상 모든 일
이 천명에 의해 움직인다고 하였다.
솔로몬이 본 헛된 인생
솔로몬의 인생론인 성경 전도서에 따르면, ‘나는 나의 헛된 세상살이에서 모
든 것을 보았다. 의로운 사람도 젊어서 죽는 사람도 있고 악한 자도 오래 사는
자가 있다.’고 하여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음을 실토하는 장면
이 나온다. 사마천과 같은 견해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블합리하고 불평등한 인간의 삶에 대하여’는 사마천과 달이 모
든 것을 하느님이 정햐여 준다는 천정론을 펴고 있다. 솔로몬은‘나는 신중하게
모든 것을 살펴보고 의로운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이나 그들이 하는 일이 모두
하느님손에 달려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하였다.
솔로몬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의롭거나 지혜로운 사람이 되지 말고, 지나치게
악인이 되거나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때가 되기도 전에 죽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양극단을 피하
는 것이 빨리 죽지 않는 방법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불공평한 인생
솔로몬은 불공정한 세상살이에 대해 여러 말을 하였다.
‘신성한 법정에서도 악이 있고 정의가 실현되어야 하는 곳에 악이 있다’,‘
하느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부귀를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함을 주어 굶어죽
게 한다’,‘의로운 사람이 악인의 벌을 받고 악인이 의로운 사람의 상을 받는
다’는 말들이 그것들이다.
솔로몬은 이토록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까닭을 정말 알 수 없었나 보
다. 그래서 그는 인간을 불공평하게 차별대우하는 창조자 하느님께 왜 그런 행
동을 하느냐고 따지기보다 공자나 맹자와 같은 숙명론에 귀결시키고 있다. 그는
전도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존하는 모든 것은 오래 전에 운명이 결정되어 있으므로 사람이 어떻게 될
것도 정해진 것이며, 사람보다 강한 하느님과 다투어봐야 맨주먹으로 바위치기
와 같이 자신만 손해이다. 선한 자나 깨끗한 자, 더러운 자 모두가 같은 운명이
므로 선한 자가 악한 자보다 더 낳다고 볼 수 없다. 그림자처럼 덧없이 지나가
는 짧은 인생에서 사람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누가 알겠는가?’
결론
인간은 불공평하지만 이것이 바로 인가의 공동운명이다. 왜 나를 낳았냐고 우
리 부모에게 대들어봐야 아무 소용없듯이 왜 우리를 불공평하게 창조했느냐고
창조주에게 따져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명령의 준말인 천명으로 알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자는 오래오래 생각한 후에,‘살거 즉음은 명에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느니라’고 하였다.
욕을 많이 얻어 먹은 사람이 오래 산다.
나쁜 놈이 오래살든 훌륭한 사람이 빨리 죽든, 우리는 하늘이 준 짧은 일생 동
안 먹고 마시며 자기 일에 만족을 느끼는 일이 제일 좋은 일이며, 이것이 바로
인간의 운명인 것임을 알아두자.
운명
사람의 생사회복을 주관하는 이는 하느님이다. 우리는 이를 운명이라고 한다.
죽어야 할 운명이면 발목까지 차는 물에 빠져 익사 할 수 있고 살아야 할 운명
이면 망망대해 에 빠져도 살아남게 되어 있다. 미얀마의 랭군 아웅산 장군 묘역
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사건이나, 괌도 칼기 추락사건을 보자.‘명줄’이 고래‘
힘줄’같이 질긴 사람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죄없이 ‘도매금’으로
죽었다.
왜 어떤 사람은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외석종신하고 어떤 사람은 비명에 가는
일이 벌어지는 걸까?
솔로몬은‘의로운 사람도 젊어서 죽는 사람이 있고, 악한 사람도 오래오래 사
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하느님은 모든 것을 자기 목적에 맞도록 만들었으므로
악인들은 재앙의 날을 위해 존재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악인이 오래 산다고
즐거워 할 필요가 없다. 바로 그것이 운명이기 때문이다.
아웅산 수지 여사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 여사는 미얀마(옛 이름 버마)의 민
족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이다. 그녀는 15세에 영국에 유학, 옥스퍼드 대학을 졸
업하고 영국인 교수와 결혼하여 두 명의 자녀를 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녀
는 1988년 4월 노모 간병차 귀국할 때까지 고국의 정치상황에 큰 관심이 없었
다.
하지만 그녀는 귀국 후 조국 미얀마가 억압과 궁핍의 처절한 상황에 처해 있
음을 보고 반독재운동에 앞장서기로 작정하였다.
그녀는 총선에 입후보하여 전체 의석의 70%를 얻어 압승하였으나, 랭군의 도
살자로 불리우는 네윈의 군사독재 정권은 그녀에게갖은 박해를 주었다. 현재 그
녀는 가택 연금 상테에 있다. 그녀는 이러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미얀마의 민주
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미얀마는 아시아 최빈국의 하나이다. 이러한 나라에서 반독재와 민주화를 위
해 고군분투하는 작은 몹집의 여자가 노벨 평호상을 받은 사실은, 인간의 조엄
성을 존중하는 쟈유민주주의가 확대되는 일이요, 반독재 운동에 새로운 지평을
넓힌 일이라고 여겨진다.
한국인 입장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 나라에는 아웅산 수지보다 훨씬
다양하고 화려한 경력의 골수‘야당’반독재 투쟁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시 수상 가능성이 그녀보다 훨씬 컸을 터인데, 그
는‘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한다’고 하듯이‘되지도 못할 대통령 하려
는’욕심에 눈이 어두워 천재일우의 기회를 잃어 버렸다. 그성은 그 자신의 불
행이려니와 한국인 모두의 불행이었다고 본다.
노벨 평화상을 받을 수 있는 자격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려는 사람은 낮아지고,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고 성
경은 말한다. 교만하면패망하고 거만하면 넘어지는 게 세상 이치이다.
‘군자는 죽은 뒤에 이름이 칭송되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하므로 ‘나라에 어
려운 일이 있거나,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울 상황이라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절
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논어는 가르치고 있다. 노벨상을 수상하려면 위
와 같은 기본적인 여건을 갖춘 시람으로서 자신을 낮추고, 위태로운 상황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켜야 한다.
남아프라카의 만델라 대통령을 보자. 그는‘무장투쟁을 포기하겠다’는 한 마
디만 맹세하면 감옥에서 내보내준다는 백인 정권의 감언이설을 뿌리치고 27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는 이러한 신념 때문에‘무장투쟁을 하겠다’는 폭
력적 주장을 했는데도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백인 정권
을 평화적으로 무너뜨려 마침내 오늘의 남아프라카 공화국이 있게 했다.
운명은 재천
총알이 비오듯 쏟아지는 전쟁터에서도 총알에‘눈’이 있는지 꼭 죽을 사람만
찾아 가는 것으로 봐서 살고 죽는 것은 운명인 것 같다.
공자는 사랑하던 제자 안연이 젊은 나이로 스승보다 먼저 죽자, 하늘이 나를
망쳐버렸구나‘라고 한탄하면서 ‘살소 죽음은 명에 있다’고 말했다.
솔로몬 역시‘현존하는 모든 것은 그 운명이 오래 전에 결정 되어 있으며 사람
의 운명이 어떻다는 것도 이미 다 알려진 일이다”고 하여 인간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으므로 어찌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내일 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천명을 깨달아 근심하지 않
으며 이를 즐기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못한 마음을 가진 사람
역시 그것이 바로 그의‘운명’이니 어찌하겠는가! 운명은 재천이다.
시간에 대하여
하늘과 땅은 만물의 숙소이고 시간은 영원히 쉬지 않고 지나가 는 나그네와
같은 것. 인간의 생애는 꿈과 같이 덧없이 짧은 것이니 이 세상에서 환락을 누
린다 한들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
중국 시성 이태백이 읊은 시이다. 이태백은 봄날 밤에 형제 친척들과 복숭아꽃,
오얏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연회를 하면서 짧고 근심많은 우리 인생을 위와 같은
한탄조의 시로 노래하였다.
세월을 화살과 같이 흘러간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참고 견딘 욥은,“하느님은 우리에게 사는
날과 달수를 미리 정하고 아무도 그 이상을 살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하며 시
간이 마냥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에게 경고하였다.
품팔이꾼의 생활처럼 걱정 근심이 태산같은 우리 인생이지만, ‘내 날이 화살
과 같이 빠르게 지나가니,
즐거운 것을 볼 수 없구나. 그 빠르기가 날쌔게 나가는 배와 같고, 먹이를 보고
덮치는 독수리와 같구나‘라는 성경 욥기의 구절과 같이,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때’가 언제인가?
그런데 우리는 그‘때’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솔로몬은“앞으로 일어날 일
을 아무도 모른는데. 어느 누가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일을 말해 줄 수 있는가?
”라고 하였다.
간밤에 봄비 내려 강변가지 물이 불어나니 커다란 배 한 척이 터럭과 같이 가
벼워 지금껏 미노라 공연히 애만 썼네 오늘은 강물 위에 두둥실 잘 가고 있네
강변 모래 바닥에 있는 배를 밀어보라. 끄덕도 않던 배이건만, 봄비로 물이 넉
넉해지면 밀지 않아도 저절로 간다.
인간 모든 일에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장자는“태어나는 것도 때에 따라 오
는 것이요, 삶을 잃는 것도 운명에 순응하여 가는 과정인 것이다”고 하였다. “
하늘의 뜻에 따르는 사람은 생존하고 그렇지 아니하는 사람은 망한다”는 맹자
의 말과 같이 천하호걸이라도 때를 못 맞추면 발목 잡힌 버마재비같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하늘을 원망해도 소용없는 일! 그러기에 사람
은 때를 잘 만나야 하나니
초상집의 개
초상이 난 집은 너무 슬픈 나머지 개에게 밥 주는 것도 잊어 버린다. 그래서
개는 먹지 못해 마르면서 주인 눈치만 살핀다.
공자는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정치를 펴고 싶었지만 ‘때’를 못 만나 여러 나
라를 돌아다녔다.
그가 정나라에 갔을때, 제자들은 공자와 길이 어긋나서 그를 찾아 헤매었다.
한 제자가 지나가는 노인에게 스승의 행방을 수소문하였다. 그 노인은 “말을
들으니 동문에 계시는 분이 그분 같네그려”라고 하면서, “생긴 것은 성인과
같이 잘 생겼으나 몸이 피로해 보이고 초라한 모습이 초상집 개와 같이 비쩍 말
라 있더라”라고 말했다.
제자들이 급히 가보니 공자가 그 곳에 있었다. 제자가 노인이 한 말을 전하자
공자는 껄껄 웃으며,“성인과 같이 생겼다는 말은 과찬으로 맞지 않는 말이지만,
초상집 개와 같이 초라하다는 말은 맞다”고 하였다.
아무리 성인이라도 때를 못 만나면 초상집 개같이 비쩍 말라서 이리저리 눈치
만 보면서 보내게 된다.
그래서 공자의 이러한 모습을 생각하여“지혜가 있다 한들 시세(때)를 타는 것
만 못하느니라”고 하였다.
중용에도‘군자는 때에 알맞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아울러 영국 사람들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던 셰익스피어는“좋을 때 인생을 즐겨라, 모든일에는
때가 있나니”라며 때를 놓치지 말라고 하였다.
세월은 치료약
그리스 철인 미낸더는‘세월은 모든 필요악의 치료제’라고 하였다.
필요악이란 우리가 에 세상을 살면서 겪어야 할 고통을 뜻한다. 소가 없으면
외양간은 깨끗할지 모르나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없다. 그러므로 가을의 풍성
한 곡식을 얻기 위해서는 외양간을 깨끗이 치우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이것
이 바로 필요악이다.
그런데 이런 세월이 아니면 고칠 수 없는 병이 있다. 바로 사랑 때문에 생겨
난 병이다. 몸에 난 상처는 약을 바르면 되지만 마음의 상처는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 없고 오직 세월만이 최고의 약이다. 세월은 육체적 아픔도 치료하여 주
지만 정신적 아픔에도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다. 그레서 영국 명정치가였던 디즈
레일리도
“세월은 훌륭한 정신과 의사다”라고 하였다.
“우리가 결혼하면 당신의 뛰어난 머리와 나의 뛰어나 몸매를 가진 2세가 태
어날 거예요”라면서 구혼한 세계적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에게,“내 못생긴 얼
굴에 당신의 우둔한 머리가 결합된 2세가 태어나면 안 되오”라며 거절한 버나
드 쇼도 “세월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훌륭한 치료제다”고 말했다.
다시 오지 않는 때
현재와 같은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공자는 냇가에 흐르는 물을 보고
“가는 것은 이와 같은가,
밤낮으로 쉬지 않고 가는구나“라며 인생의 흐름을 읊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애는‘시간이 말하여 주기’ 때문이다.
영국 작가 러드야드 키플링은“그것은 나의 능력에 벗어난 일이오,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시간을 따라서 천천히 한 발 한 발 것을 수 밖에 없소”라고 했다.
우리는 그의 말처럼 걷기 싫어도 한 걸음 한 걸음 세월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놀라운 일을 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힘들고 어려운 문제가 겹쳐서 오더라도 시간이 그 해결책을 가져다주기 때문이
다.
도연명은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시간은 쉬지 않고 지나가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원기 왕성한 나이는 다시 오지 않고, 하루에 두 번 새벽은 오지 않는다. 때에
따라 열심히 노력을 하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시간은 돈이다. 한 시각은 천금과 같이 중요하다. 지금 이 시간은 한 번 지나
가면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소동파는 <춘야>란 작품에서 ‘봄날의 한 시각은 천금과도 같다’고 하였다.
하느님이 정한 때
‘무엇이나 다 정한 때가 있나니, 하늘아래 벌어지는 모든 일은 하느님이 정한
다’고 성셩은 전하고 있다.
‘하느님은 그가 원하는 바에 따라, 날 때와 죽을 때 심을 때와 거둘 때, 죽을
때와 치료할 때, 부술 때와 다시 세울 때, 울 때와 웃을 때, 슬퍼할 때와 춤출
때, 사랑할 때와 사랑하지 않을 때, 키스를 할 때와 키스를 하지 않을 때, 찾을
때와 잃을 때, 간직할 때와 버릴 때, 찢을 때와 꿰맬 때, 침묵을 지킬 때와 말할
때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전쟁할 때와 평화로울 때를 정한다‘고 히였다. 우리
의 모든 때를 하느님이 정해준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우리에게 닥칠 일을 한치도 내다볼 수 없게 우리를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하느님이 하는이렝 때해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다. 하느
남은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므로 그에게 맞서서 싸울 수도 없고 법정에 세워
따질 수도 없다. 어찌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느님의 섭리를 알 수 있을 것인
가?
우리는 창조주가 준 이 시간을 갖고 창조주의 뜻에 따라 좋은 일을 행하면서
기쁘게 살아야 한다. 또 먹고 마시며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기쁘게 살아야 한
다. 또 먹고 마시며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만족을 느끼며 열심히 살 수밖에 없
다. 인생을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기억하자. 인생은 짧고 시간을
빠리 지나간다는 점을.
운명과 순종
1960년대 초에‘케 세라 세라’란 노래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춘
궁기가 되면 보랏고개라 하여 못 먹어서 살 가죽이 들뜨고 누렇게 되는 부황난
사람도 많았다. 아울러 도시의 대학에서는 ‘군정 연장 반대’‘한일 회담 반대
’등 데모가 쉴 사이 없이 벌어졌었다.
없는 집에서 다트면 깨어질 것은 하나 남은 쪽박이라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
으로나 뒤숭숭한 상황이었다.
노래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뒤에 두고 유행되었다.
‘케 세라 세라’는 이탈리아어로, 영어로 번역하면 ‘What will be, will be'
가 된다. 우리말로는 ’될 대로 되라’. 다시 맣래 피할 수 없는 운명 또는 정해
진 운명이면 그성에 순종하라는 뜻이다. 모만 곳을 발로 차지 말라는 말이 있듯,
운명을 소용돌이쳐 흘러내리는 큰 강이라고 본다면 그 흘러내리는 격류를 거슬
러 올라가지 말고 흐름에 따라 내려가라는 말이다.
이 노래는 체면과 무기력을 선동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현명한 처신을 노래한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솔로몬은 ‘현존한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은 오래 전에 이미 그 일이다’고 하
였고, 맹자는‘하늘의 뜻에 따르는 사람은 생존하고 거스르는 사람은 멸망한다
’고 하며 운명에 순응하라고 하였다. 그는 부르지
않았는데도 절로 찾아오는 것은 하늘의 명이라고 하여 운명은 하늘의 뜻이라고
하였다.
고통은 피하는 것보다 익숙해지는 것이 낫다. 운명도 피하는 것보다 감싸안는
것이 낫지 않을까?
등용문
용문은 중국 황하 상류에 있는 급류로, 잉어가 일단 이 곳을 올라가면 순식간
에 환골탈태하여 용이 되어 승천한다는 전설이 있다. 물살이 너무 급해 수천, 수
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청운의 큰 뜻을 품고 이 곳을 오르려 하나 오르지 못하고
그 아래에서 맴돌기만 한다고 한다.
이태백도 <여한 형주서>에서 ‘한 번 용문에 오르면 그 성가가 10배에 이른
다’고 하였다.
신한국당 대선 후보 9명을 구룡이라고 했는데, 등용문의 전설에 따지자면 정확
하지 못한 표현이다.
대선 후보로 당선되는 한 사람만 소룡이 되고 나머지는 물고기로 남아야 한
다. 또 소룡 여럿이 모여 누가 크고 높이 뛰나 시합하여 판정받는 대선에 참가
하여 대룡 한 마리가 탄생한다.
운명을 한 번 거슬러 올라가 보라. 용문을 뛰어넘어 용이 죌지 누가 알겠는
가? 그것이 바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말이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순종하
여라.
죽음
우리는 태어날 때는 순서대로 태어나지만 즉을 때는 순서를 지키 수 없게 되
어 있다. 성경에 따르면 사람의 삶과 죽음은 모두 하느님이 결정한다고 한다.‘
하느님은 사람이 태어날 때 인생으 사는 날과 달수를 미리 정하고 아무도 그 이
상을 더 살지 못하도록 수명의 한계를 정해 놓았다’고 하였다.
공자의 생사관
공자가 나이 70이 넘었을때 외아들 백어가 50세도 되지 않아 갑자기 죽었다.
슬픔이 가시기 전에 공자가 후계자로 지명까지 했던 안연이 32세의 나이로 요절
을 했다.
공자는‘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구나......’하고 탄식을 했다. 얼마 안 있어
제자 자로마저 죽었다. 고령의 자신에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닥쳐오는 슬픔을
삭이면서, 그는 삶과 죽음은 명에 있고 부귀를 누리는 것도 하늘에 달렸다고 하
여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천명이지 어떻게 해볼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그의 제자인 자로가 죽음에 대하여 묻자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쩨 죽음
을 알 수 있느냐”고 대답하여 죽음에 대하여 알 수 없다고 솔직히 대답하였다.
논어에 새가 죽을 때는 그 울음소리가 구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말이 착
해진다고 죽음에 대한 간접적인 이해를 표시하였다. 공자는 전생이나 내세같은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
솔로몬과 욥의 생사관
솔로몬은 죽음의 불공평함에 대하여 말하면서 의로운 사람도 젊어서 죽는 사
람이 있고 악한 사람도 오래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하여, 사람들에게 너무 지나치
게 의롭거나 지나치게 악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왜냐하면 이러한
지나치게 선하거나 악한 사람은 때가 되기 전에 죽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
면서 그는 우리에게 “때가 되기 전에 죽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
고 있다.
솔로몬은 우리에게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어리석은 자는
눈 앞의 즐거움만 생각한다고 하였다.
인간이 겪는 모든 괴로움을 다 겪은 욥의 성경에서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
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꽃처럼 잠시 피었다가 시들어지고 빠르게 지나
가는 그림자 같아서 이 세상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고 하였다.
노정의 생사관
노자는 양면성을 극력 배격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아름다움으
참 아름다움이 아니라 추함일 뿐이요. 착함이라고 알고 있는 착함은 착함이 아
니라 악함일 뿐’이라고 하였다. 그는 미추와 선악은 보는 관점에 따라 추함이
아름다움으로, 악함이 도리어 선함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노자의 생각을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킨 장자의 사생관을 보자. “산다는 것이
곧 죽는다는 것이고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이다”고 하였다. 살고 죽는 것을 하
나로 보고 있다.
‘사람의 삶이란 오직 기운의 모임’이라고 생각한 그는 산다는 것이 곧 죽는
다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이곧 사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생은 죽음의
동반자이다. 죽음은 생의 시작이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생사 어느 편이 근본
인지 누가 아랴”라고 지적하면서 “기가 모이면 삶이 되고 기가 흩어지면죽음
이다”라고 정의하였다.
장자는“생사가 서로 동반하는 것을 안다면 무엇을 근심할 까닭이 있겠는가?
”라고 우리에게 반문하였다.
그의 생사관을 필자 나름대로 비약시켜 보면 인간에게는 결정적이고 근원적인
부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인간의 출생과 사망
인간은 영문도 모른 채 이 세상에 던져졌고 출생조건에 따라 이 곳의 부잣집
미남, 저 곳의 가난한 집 추남 등등으로 정해진 운명을 살지 않으면 안된다. 그
리고 각자의 생애를 살고 도착하는 종착연은 어떤 예외도 허용될 수 없는 죽음
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젊으나 늙으나 간에 모면할 수 없는 필연적인
죽음이라면 우리는 모두 사형수이다. 사형수는 극단적으로 자유와 대립한다. 그
러므로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에 얽매인 부자유한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자유란 죽음밖에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최대의자유란 허무뿐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에게 남는 것
은 허무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그의 인생론인 전도서에서 ‘헛
되고 헛되도다. 정말로 헛되도다. 아무 것도 소중한 것이 없구나.’하고 노래했
다.
삶과 죽음의 접근 방법
부자유한 존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창세 이래 여러 가지 방법이 시도되었으
나 그 중 가장 구체적인 것이 종교적 접근 방법이다. 불교의 문자에 ‘언어도단,
심행처멸’이란 말이 있다. 언어로서 표현하지 못하는 곳까지 마음이 간다는 뜻
이 암시되어 있는 말인데, 유한하고 부자유한 존재이며 하느님의 피조물인
우리들은 언어도까지는 갈 수 있어도 하느님의 심행처까지는 갈 수도 알 수도
없고 기해야 상상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젊어서도 죽는 사람이 있지만 늙으면
꼭 죽는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죽으야 할 인생이므로 항상 인생을 즐겁게 살아
야 한다. 사람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언젠가는 죽음의 날이 있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근심과 고통을 제거하여라. 젊음도 덧 없이 지나가고 만다. 젊은이들이
여! 그러므로 아직 젊다는 것을 기뻐하고 하고싶은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열
심히 하라. 그리고 늙은이들은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앞으로 들어갈 무덤에는 할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이나 지혜도 필
요없이 누워서 계속 잠만 자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도 죽지만 늙은이는 꼭 죽는다.(Young men may die, but old men
must die.)
주머니가 없는 옷
성경의 욥기를 보면 욥은 우즈 땅에 살고 있었다. 그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양 7,000 마리, 낙타 3,000 마리, 소 1,000 마리와 많은 종들을 거느리는
동방 제일 가는 부자였다. 그는 수부귀다남의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으나
하느님이 괜히 사탄의 말만 듣고 그의 신앙심을 ‘테스트’하게 함으로써
정말 아무런 죄도 없이 하루아침에 모든 자식들이 갑자기 죽고 모든 재산을 잃
어버리는 날벼락을 맞았다. 그는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져온 것이 없으니 죽을 때도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하리라. 주신 자도 하느님
이요, 가져간 자도 하느님이니, 오직 하느님이 찬양받길 원하노라”고 하여
자포자기하거나 자신에게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준 하느님을 원망하
지 않았다.
정말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은 분이지만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
는 태도를 보인 분이다.
욥과 마찬가지로 솔로몬은 “사람은 태어날 때 벌거숭이로 나왔으니 아무리
수고하여 얻은 것이라도 세상을 떠나갈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빈 손으로 왔다 빈 손으로 가는 우리 인생이지만 우리는 어두움
과 슬픔, 번민과 분노, 질병 그리고 욕심까지 곁들여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라도 더 챙기려고 죽을 힘까지 쓴다.
여우 한마리가 포도원 앞에서 어떻게 하든 그 안에 들어가 포도를 따먹고 싶
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울타리가 너무 높아 좀처럼 들어갈 수가 없었다.
여우는 3일간 단식을 한 후 살이 빠지자 간신히 울타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그 곳에 들어가서 마음껏 먹고 놀다가 포도원을 나오려고 하니
이번에는 배가부르고 살이 쪄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3일간 단식
하여 살이 빠지자 간신히 빠져 나왔다.
여우가 말했다.
“제기랄! 결국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똑같이 되었구나!”
우리의 인생도 이 여우와 같은 운명이다. 벌거벗은 채로 태어나 죽을 때는 썩
어 없어질 수의 하나 걸치고 빈 손으로 관 속에 들어간다.
사람이 평생동안 땡볕 아래서 고생하여 얻는 것이 무엇인가?
하늘나라 갈 때 입는 옷에는 주머니가 없다.(Shrouds have no pockets.)
수의는 시체를 염할 때 쓰는 옷감을 말한다. 수의에 주머니가 없다는 말은 공
수래 공수거, 즉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난다는 말이다.
산 개와 죽은 정승
초나라 왕이 장자에게 사신을 보내 초나라 국무총리가 되어 달라고 했다. 장
자가 말했다. “초나라에는 신기한 거북이 있다고 들었네. 그 거북이 죽어 비단
으로 싸서 옥으로 만든 상자에 모셔 놓았다는데, 자네 생각엔 죽은 채로 귀하게
싸여 있는 게 좋은가, 살아서 진흙 속을 기어다니는 것이 낫겠는가?“
사신이 대답했다.
“ 그야 살아서 진흙 속에 기어다니는 것이 낫지요.”
장자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죽어 있는 것보다 살아서 진흙 속을 기어
다니고 싶기 때문에 그 벼슬을 거절하네”했다.
현명한 왕 솔로몬의 인생론을 담아 놓은 구약성경의 전도서에도 이와 같은 뜻
에서, '그래도 살아 있는 자가 희망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는 개가 죽어있는 사
자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로렌스는 <사라져 버린 여인>에서. ‘사자 알란이 총에 맞아 죽자 사자가 가
지고 있던 소유물이 전부 개의 차지가 되었다. 그 녀석은 알란이 죽자 그의 연
인이었던 암사자 캐더린도 차지하였다.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는 것을 실
감케 했다’고 하였다.
쇼팬하우어
염세주의자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보다 악이 많고 쾌락보다 고통이 많아 살
아갈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대표적 인물이 쇼팬하우어(1788~1860)이다. 그는 염세철학의 대가답게 신경질
이 심하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다.
그는 곁에서 열심히 자신을 위해 맡은 바 소임을 다하던 하녀를 사소한 잘못
이 있다고 계단 아래로 차던져 병신을 만들기도 하고, 자살을 권하는 책을 많이
발간하여 많은 청소년들을 하늘나라로 보내게 하고는, 자기는 그 책을 팔아 얻
은 인세 수입을 가지고 편안히 살면서, 자살은 커녕 72세의 천수를 누렸다,
아무리 대철학자일지언정 그도 인간이기에, 말과 행동에 차이가 있겠지만, 남
더러는 죽으라 하고 자기는 거기서 얻은 수익으로 노년에는 피리까지 불면서 산
것은 일생일대의 잘못이다. 아니, 어쩌면 그의 잘못이라기보다 ‘산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는 말을 믿지 못하고 쇼팬하우어 책을 읽고 자살한 사람의
실수가 더 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여간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을 것을 알지만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는 성경의 말처럼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말하고 싶으면 살아 있어야 한다.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A live dog is better than a dead lion.)
‘괘테는 살아 있는 것을 찬양하라! 불꽃에 산화하기 갈망하는 그것을...’라고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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