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밥 먹고 도시여행

서울역사(현 문화역서울 284)

草霧 2013. 9. 5. 12:11

 

 

일제의 대륙 침략 발판으로 건축했지만 근현대에는 대한민국 발전의 주 무대이자 교통과 교류의 중심이었고, 지금은 복합 문화 공간으로 시민에게 다가가고 있는 서울역사. 건축 당시 돔 모양 지붕과 독특한 외관으로 온 장안이 떠들썩할 정도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글 이정은 사진 제공 문화역서울 284


서울역사의 원래 명칭은 경성역이었다. 1899년 인천-노량진을 운행하는 경인선이 개통하고, 1900년 한강철교가 개통하면서 남대문역까지 기차가 들어오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00년 염천교 아래 논 가운데 10평짜리 목조 막사를 짓고 ‘남대문 정거장’이라고 불렀다. 이 역사가 경성역의 시초로 1910년 경성역으로 개칭했다.
그 후 1905년 경부선, 1906년 경의선, 1914년 경원선이 차례로 개통함으로써 경성은 한국 철도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1920년 경성 인구가 30만 명으로 늘어나고 교통 요충지로서 경성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새 역사가 필요해졌다.
1922년, 도쿄 대학교 교수이던 쓰카모토 야스시의 설계로 경성역을 착공해 1925년 준공했다. 원래 이듬해인 1923년에 준공할 예정이었으나 일본 관동 대지진으로 연기되었다. 건축 규모는 총면적 26만9천95m2 대지면적 약 1만7천200m2, 지하 1층, 지상 2층의 초대형으로 ‘동양 제1역은 도쿄 역, 동양 제2역은 경성역’으로 이를 정도로 경성역은 일본 도쿄 역과 비견되는 큰 규모였다.
이렇게 대규모로 건축한 것은 경성역을 ‘한반도의 현관이며, 식민지 경영의 관문’ 역할을 하는 요충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성역의 설립 주체이던 남만주철도주식회사는 경성역이 일본-조선-만주를 잇는 국제적 수준의 역사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일본 도쿄-시모노세키는 국철, 시모노세키-부산은 관부연락선, 부산-베이징은 직통 열차로 연결하며, 이 열차를 하얼빈을 거쳐 시베리아 철도와 연결해 모스크바와 베를린까지 연결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일본 패망과 대한민국 광복으로 무산됐다.
복합 문화 공간 ‘문화역서울 284’로 변신
경성역은 돌과 벽돌로 지은 혼합 조적조 건물로, 돔 모양 지붕과 독특한 외관은 건축 당시 온 장안이 떠들썩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1층은 르네상스 궁중 건축양식을 따랐고, 건축자재는 주로 붉은 벽돌을 사용했으며, 1층 중앙 홀은 바닥을 화강암으로 깔고 상부 지붕에는 비잔틴풍 돔을 올렸다. 그 돔 측면의 반원형 아치 창에서 중앙 홀 내부로 자연광선을 끌어들여 홀 공간을 밝혔다. 건물 안 귀빈실의 마룻바닥은 모두 박달나무를 사용했으며, 2층에는 양식당을 설치했다.
경성역은 1946년 서울역으로 개명했고, 한국전쟁으로 역사의 일부가 파괴되었다가 다시 복구했다. 이후 경부선과 경의선 등 철도 주요 간선 열차의 시발역인 동시에 종착역으로 대한민국 교통과 교류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1960년대에 남부·서부 역사를 신설해 본 역사와 구분해 사용했다.
2004년 새로운 민자 역사를 신축하면서 폐쇄했다가 현재는 서울역사를 원형 복원한 후 ‘문화역서울 284’라는 이름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대안적이고 실험적 전시, 공연, 강연, 연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8월 30일부터 10월 11일까지 서울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인 ‘타이포잔치 2013’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