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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초 전성시대

草霧 2013. 7. 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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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초 전성시대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①

 

하재근(문화평론가) | 2013.07.02

 

별 생각 없이 TV를 보고, 노래를 듣는 것 같지만, 그럴싸한 해석을 달아 놓고 보면 대중문화 속에서는 사회의 현주소가 보이고 사람들의 인식이 보고, 심리가 보인다. 별 생각 없이 접하는 것 같은 대중문화에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별 별 생각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그걸 콕콕 짚어내는 하재근 문화평론가의 '컬쳐 톡'이 매주 수요일, 여러분을 찾는다.

[서울톡톡] TV 토크쇼에 재난이 닥쳤다. <무릎팍도사>, <화신>, <힐링캠프> 등 지상파에서 하는 토크쇼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일제히 하락했다. 심지어 국민MC라는 유재석의 <놀러와>는 시청률 부진 때문에 아예 폐지됐을 정도다. 대신에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초 전성시대가 열렸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인기는 처음에 <무한도전>에 의해 리얼버라이어티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그게 워낙 화제가 되다보니 다른 방송사에서도 그런 포맷을 이어받아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를 새롭게 편성했다. 이 흐름이 <천하무적 야구단>, <남자의 자격>, <오빠밴드> 등으로 이어지며 리얼버라이어티 전성기가 전개된다.

 

리얼버라이어티 시대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유재석과 강호동이었다. 그 이전에 스튜디오 토크에 강점을 보이던 MC들은 리얼버라이어티의 야생성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야외에서 펄펄 날았던 유재석과 강호동이 야생의 왕자로 떠올랐다. 그리하여 이 시대를 '유강천하'라 일컫는다. 뒤늦게 <남자의 자격>으로 리얼버라이어티 대열에 합류한 이경규는 이로 인해 연예대상을 거머쥐는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렇게 유강천하, 리얼버라이어티의 호시절이 계속 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 정도의 리얼리티에 곧 싫증이 났고 더욱 강한 리얼리티, 더욱 센 리얼리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에 부응해 나타난 것이 바로 <정글의 법칙>이다. <정글의 법칙>은 연예인들이 세계 오지를 찾아다니며 아주 힘들게 고생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연예인 같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다. 워낙 고생이 심하기 때문에 연예인으로서의 꾸밈보다 인간 본연의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시청자는 이렇게 강화된 리얼리티에 환호를 보냈다. 그러자 <1박2일>같은 기존의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리얼버라이어티와 함께 등장했던 유강천하도 결국 더욱 강해진 리얼리티의 도전으로 붕괴된다.

 

 

리얼리티가 끝없이 강화되다보니, 이젠 기존 인기 예능인이 아닌 사람들이 더 환영받는 분위기가 됐다. 그런 이유로 올 상반기 한국사회를 강타한 것이 <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 신드롬이다. <아빠 어디가?>는 7살, 8살인 아이들이 주역인 프로그램인데, 이 아이들은 너무 어리기 때문에 꾸밀 능력 자체가 없다. 행동 하나하나가 100% 리얼인 것이다. <진짜 사나이>는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하게 군생활에 임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두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현재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한국 최고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으로 군림하고 있다.

 

예능스타 하나 없이, 오로지 리얼리티만 있는 예능의 전성기. 이런 분위기에 따라 <인간의 조건>이나 <나 혼자 산다> 같은 리얼리티 관찰 예능프로그램도 속속 생기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토크쇼가 약세를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

 

시청자는 이제 연예인 신변잡기 토크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게 됐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 속에서 인간미와 우애가 느껴지고 예기치 않은 돌발웃음까지 터지는 생생한 상황. 인간의 진심이 전해지는 이야기. 그런 것에 재미와 위안을 느낀다. <아빠 어디가?>나 <진짜 사나이>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면 정말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온갖 일들로 들끓던 머릿속이 차분하게 정리된다. 시청자들은 여전히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미, 진심, 생생한 웃음을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에 하반기에도 리얼리티 전성시대는 계속될 것 같다.

 

리얼리티 전성시대는 코미디 퇴조기와 맞물린다. 사람들이 생생한 것, 날 것을 좋아한다는 건 꾸민 것을 싫어한다는 얘기가 된다. 코미디는 철저하게 대본으로 꾸며진 꽁트이기 때문에 리얼리티와 같은 생생함, 돌발성이 없다. 하지만 진정한 창조성은 바로 그런 꾸밈에서 나온다. 날 음식만 먹으면 음식문화가 발달할 수 없듯이, 날 것 리얼리티만 좋아하면 창조적인 예능문화도 발달하기 힘들 것이다. 리얼리티 초 전성시대의 그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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